수도원과 포도밭, 환대의 지방 라 리오하
If I search among my memories for those whose taste is lasting, if I write the balance sheet of the moments that truly counted, I surely find those that no fortune could have bought me.
내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순간들을 찾아보고 진정으로 중요한 순간들의 대차비교표를 만들어보면, 어떤 재산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 Antoine de Saint-Exupéry 『Wind, Sand and Stars (인간의 대지: 바람과 모래와 별들)』
라 리오하(La Rioja)의 포도밭과 교황청이 지정했던 사면의 언덕, 로그로뇨(Logroño)로의 길은 감사와 용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되새기게 한 길입니다. 어리고 미숙한 저는 낯선 길에 유독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오래 전, 길을 떠난 순례자들은 흑사병과 기근, 거친 병마와 위기를 신앙과 함께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도원이 베푸는 빵과 와인, 쓰러진 동행을 일으켜 세우는 손, 열병에 신음하는 이를 위한 기도와 간호가 신의 자비처럼 이 길 위의 생명을 이어주었다고 합니다.
내게 겨울의 순례는, 그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흔적으로 남아 여운을 간직하게 해준 계절이었습니다.
사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내가 여기에 어린 왕자를 되새기는 까닭은 그를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다. - 어린 왕자 (Antoine de Saint-Exupéry)
아레의 수도원에서 혼자 쓸쓸히 밤을 보내고, 햇살 따스한 팜플로나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로 저 혼자 만이 순례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대도시 근교이기에 길이 깔끔하게 정비 되어있었고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이 보기 좋았습니다.
아레에서 출발해 오후 2시가 넘은 늦은 시간임에도 내 체력과 젊음을 믿고 바로 25km는 떨어진 푸엔테 라 레이나를 향했습니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는 어제 팜플로나에 머물렀을 분들이 이미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늦게 도착해 알베르게가 영업을 마쳐도 안에서 문을 열어줄 사람은 있을 것이라 믿고 출발을 감행했습니다.
거대했던 팜플로나는 어느새 저 멀리 자그마한 점이 되었고 주변에는 평야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몇 시간을 걷는 동안 사람 한 명 보지 못하고 비슷한 풍경만 보여 영겁과 고독의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풍경은 어느새 눈에 들어오지 않고 힘들다는 생각만 가득해졌습니다. 푸엔테 라 레이나까진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물이 또 바닥나버려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의 순례길은 길 위에서 사람 한 명 마주치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혼자 걷는 것은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합니다.
도시를 지나 평야를 넘어 도착한 마을. 알베르게라고 쓰여있는 간판은 여럿 있었지만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가게를 찾아다녔는데 영업 중인 가게도 단 한 곳이 없었습니다.
셔터로 폐쇄된 알베르게 안쪽에 철로 잠긴 자판기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곳을 놓치면 한참 동안이나 마을을 볼 수 없기에 물 한 통이 너무 간절했습니다.
틈 사이로 손가락을 비집어 버튼을 눌러보니 다행히 가동은 되는 자판기였습니다. 여기서 물을 구하지 못했다면 혼자 외딴 산을 넘다 쓰러졌을 지도 모릅니다.
사리키에기 마을을 지나면 ‘Perdón’이라는 이름의 고개를 넘게 됩니다.
용서의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곳은 중세의 순례자들에게 신의 용서를 상징하는 곳이었고, 험난한 고개를 넘었다는 것만으로도 교황청으로부터 죄의 사면이 허락되었다 전해지는 땅입니다.
문제는 정작 이 언덕을 넘던 순간에 이곳이 그 용서의 언덕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한참 뒤에서야 제가 이 날 넘었던 고개가 바로 그 용서의 언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만약 이 순간에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았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떠올렸을까. 누군가를 용서했을까.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팜플로나에서 너무 늦게 출발한 탓에 해가 지는 무렵에서야 고개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해는 이미 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고 남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과 위로 흐르는 바람, 고요한 언덕. 정상엔 순례자의 철제 조각상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늦은 시간과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던 탓인지 이 철제 인물들의 실루엣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습니다.
따스하고 화창한 낮의 풍경만 보다가 해가 져물어가는 황혼의 모습에 가슴이 일렁입니다. 용서의 언덕을 해 지는 시간에 마주한 순례객은 흔치 않을 겁니다. 격정을 끝내고 아름답게 져물어가는 황혼의 모습은 이 언덕의 용서라는 의미와도 사뭇 닮아 보입니다.
용서의 언덕은 가장 많은 중세의 순례자들이 목숨을 읽기도 했던 곳이라 합니다. 고개를 내려오는 길은 수비리 이상의 매우 험한 돌밭이었습니다. 해는 거의 지고 있었는데 저는 여전히 정상에 홀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길을 안내하는 표식과 지도의 GPS 동선이 서로 엇갈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방향이 맞지 않는 듯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길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그 사이 하늘은 빠르게 어두워졌고 겨울 산중의 길은 점점 앞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발아래는 돌투성이였고 마음이 급속도로 다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길을 걷는 내내 한참이나 사람 한 명을 보지 못했기에 겨울 산맥에서의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순례자를 인도하는 표식도 잘 보이지 않아 지금 맞는 길을 걷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마저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방황 끝에 손전등을 든 현지 주민을 만났습니다. 그를 따라 겨우 우테르가란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다시 어둠 속으로 떠나는 걸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을 바깥은 불빛 하나 없이 칠흑 같았고 바닥나 버린 핸드폰 배터리와 지친 몸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이 마을에 머무르기 위해 숙소를 찾아다니며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어디에도 반응은 없었습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 너머 불빛조차 없었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감과 함께 마을 한 편의 벤치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초조함과 피로가 뒤엉킨 상태로 다시 어둠을 헤매던 중 마침 한 아저씨가 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 다가갔습니다. 늦은 밤이라 갈 곳이 없고 혹시 이 마을에 알베르게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이 전해졌는지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한 밤 골목을 따라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마을 주민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윽고 젊은 청년 한 명이 저를 데리러 와 함께 다른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청년이 전화를 걸자 안경을 쓴 남자가 안에서 나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살았단 안도감이 감쌌습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주민들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안 쪽 자판기에서 콜라 하나를 꺼내 마셨는데 아마 인생에서 그런 맛을 다시 느껴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곳은 겨울철인 지금은 운영 중인 곳이 아니었습니다.
문을 열어준 안경 쓴 청년은 원래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교사로, 일주일에 두 번 이곳에 숙박하며 마을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저를 숙소로 데려온 남자는 어둑한 식당으로 부르더니 이 늦은 시간에 직접 저녁 식사도 차려줬습니다. 저는 꼬박 10시간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한 끼 식사가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마웠습니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짠 편이었지만 그 어떤 만찬보다도 더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이 따뜻한 식사를 차려준 청년의 이름은 크리스토퍼로 베네수엘라에서 작년에 이민을 왔다고 합니다. 먼 타지에서 온 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해 주고 친근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하룻밤의 일이지만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멀리 떨어진 낯선 나라 아주 작은 마을에서의 깊은 밤 우연처럼 간절한 도움과 따뜻한 밥 한 끼는 어떤 여행에서도 겪어볼 수 없는 기억이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경치로 인해서 잊혀진 쾌락의 기쁨을 느꼈다. 이러한 기쁨은 아마도 마음 착한 사람의 삶의 최선의 부분에, 그의 작고 이름 없고 기억되지 않는 사랑과 친절의 행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준다고 나는 믿는다. - 틴턴 수도원을 거슬러 수마일 지점에서 (William Wordsworth)
다음 날 아침, 선생님과 함께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 뒤 크리스토퍼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문을 나서 걷기 시작하자마자 어제의 후유증이 몸 곳곳에서 밀려왔습니다. 용서의 언덕을 넘는 데 겪었던 험난한 돌길의 여파인지, 발가락은 찢어져있었고 허벅지와 발목에는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순례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정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 무거운 배낭, 그리고 몸 곳곳에서 밀려오는 통증은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럼에도 계속 걸을 수 있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이 길 위에서 마주하는 찬란한 풍경들일 겁니다.
때론 숨이 차오르는 언덕 위, 때론 외딴 평야 한가운데 그 순간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빛과 색, 바람이 풍경 속에 녹아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어쩌면 길을 견디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위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테르가를 지나서 무사히 무루자발에 도착했습니다. 문득 어제 야밤에 떠나지 않고 마을에 머물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깨닫습니다.
오바노스 초입에 조개 표식을 놓쳐 헤매던 중, 멀리서 아주머니 두 분이 손을 흔들며 방향을 알려주셨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인종 차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막상 경험한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따뜻하고 호의적이었습니다. 낯선 이에게 거리낌 없이 도움을 건넨 이들 앞에 얼마나 근거 없는 걱정이었는지 깨닫습니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크고 번화한 마을이었습니다. 은행, 스포츠 용품점, 마트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골목길에 갖추어져 있었고 정글모와 두건을 구입했습니다.
골목에 있는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순례길에는 드물게 은행이 있는 마을이라 현금을 인출하려 했지만 ATM기가 돈을 삼켜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 안으로 들어갔지만 직원이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상황은 더욱 난감해졌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먼 나라의 은행에서 클레임을 걸고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다음 마을로 이동하기가 곤란해졌습니다. 해가 지면 길을 걷는 것도 쉴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바로 어제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하루를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레에 홀로 남은 후엔 앞으로 다른 순례자는 계속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알베르게에서 오랜만에 다른 순례객들을 마주쳤습니다.
안쪽에는 외국인 아저씨 일행 두 분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수염이 덥수룩하고 안경을 낀 아저씨가 다가와 악수를 건넸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하며 이름은 크리스티안과 호안이었습니다. 잠시 후 대니얼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인도 도착했습니다.
침대가 옆자리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리를 전공하고 있으며,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순례를 왔다고 합니다. 친절한 인상이 좋았던 친구입니다.
크리스티안, 호안, 대니얼, 저 총 네 명이 방에 머물렀습니다. 크리스티안에게 비랄의 근황도 전해들었습니다. 비랄은 크리스티안이 생장에 있을 때도 짐이 도착하지 않아 한참이나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른 방엔 한 중국인 가족도 머물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 중년 여성, 여자아이 둘, 남자아이 하나로 구성된 가족입니다. 크리스티안은 그렇게 험한 순례길에 어린아이가 함께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불가에 앉아요, 얘야. 따뜻하게 하세요.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러자 크래칫 가족 모두가 난로 주위로 둘러앉았는데 밥 크래칫이 말하길 원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반원이었습니다. 두 개의 텀블러와 손잡이 없는 커스터드 컵. 그러나 이 잔들은 황금 잔만큼이나 주전자의 뜨거운 것을 잘 담았습니다. - 크리스마스 캐롤 (Charles Dickens)
푸엔테 라 레이나를 흐르는 아르가 강은 석양이 드리운 연홍빛 물결 위로 푸른 하늘이 비쳐 황홀한 색채를 빚어냅니다. 강가에 늘어선 건물들은 붉은 기와와 돌담이 어우러져 고풍스럽고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다음 마을로 향하는 길목은 안개에 잠겨 있었습니다. 언덕을 넘은 뒤 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크리스티안을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더 걷다보니 호안과도 마주쳤습니다.
마녜루에 도착해 미리 준비해 둔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겨울 순례길에 미리 준비를 해 두는 습관이 익숙해집니다. 쉬고 있는 사이 호안과 크리스티안이 저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제 다른 방에서 지냈던 중국인 가족도 다시 마주쳤습니다. 이렇게 먼 길인데도 어린아이들이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게 걷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산티아고까지 676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직도 이렇게나 많이 남았구나. 정말 이 길이 끝나는 날이 오긴 할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강아지가 반겨주던 시라우키를 지나 비야투에르타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을 간단히 먹어 허기가 졌는데 지도에 영업 중인 레스토랑들이 여럿 표시되어 있어 이곳에서 식사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찾은 레스토랑에는 손님이 저 혼자였고 오너가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한 달 전 이민을 와 이 마을에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순례자를 손님으로 받는 건 처음이라 합니다. 크리스토퍼도 그렇고, 스페인의 외딴 마을엔 이민자들이 자주 정착하는 듯 합니다.
에스테야는 중세 시대부터 별들의 도시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과 유서 깊은 교회들이 많으며 순례자들에게는 문화적·종교적 쉼터 역할을 해왔습니다.
규모가 있는 마을이라 다양한 상점, 슈퍼마켓, 약국, 은행 등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크리스마스에도 영업 중인 알베르게가 드물게 하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체된 거리를 만회하기 위해 에스테야와 인접한 아예기도 지나 더 걷고, 이틀 뒤에 대도시 로그로뇨에 도착해 크리스마스를 보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아스케타라는 작은 마을에 겨울에도 영업 중인 알베르게가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전화로 예약을 마쳤습니다.
아예기에서 조금 더 걸으면 이라체 수도원을 지납니다. 이곳은 순례자를 위한 포도주 수도꼭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수도원 벽면에 설치된 두 개의 수도꼭지 중 하나에서는 물이 다른 하나에서는 와인이 흘러나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던 날, 아스케타는 순례길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던 밤 중 하나입니다.
마을이라기보단 집 몇 채가 모인 골목 같았고 레스토랑이나 마켓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베르게 문을 두드리자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주인 할머니의 이름은 엘레나로 순례자들을 위해 집을 통째로 숙소로 개방하고 저녁과 아침을 직접 요리하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족처럼 맞이해 줍니다.
이름을 물으신 뒤에는 계속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정겨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곳은 엘레나 할머니와 손자들이 거주하는 집의 일부를 순례자에게 개방한 곳입니다.
저는 2층 가운데의 가장 넓은 거실에 여유롭게 머물렀습니다. 침대에 누워 쉬던 중, 문 쪽 방에 또 다른 순례자 아주머니가 한 분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이름은 자넷으로 미국 플로리다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홀로 먼 순례길을 온 저를 대견해하고 항상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주셨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엘레나가 식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자넷 외에 1층에 숙박하는 율리엔이란 영국분도 계셨는데, 순례길을 다섯 번 완주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엔 산티아고에서 출발해 역방향으로 가는 중이셨습니다.
셋이 함께 주방의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스페인의 집밥 같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식사 전엔 스페인 전통에 따라 셋이 와인 잔을 들고 건배를 나눴습니다.
엘레나는 제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장을 볼 때 일부러 쌀을 사 오셔서 저녁 식사에 따로 밥을 지어 주셨습니다. 자넷이 피곤하다며 먼저 방으로 들어가신 뒤에는 기분 좋게 취한 율리엔과 둘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을마다 어떤 알베르게가 좋은지 물어보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무려 한 시간 넘게 각지의 정보를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피곤해 들어가고 싶었지만 차마 중간에 멈춰달라는 말을 못했습니다.
스페인 할머니의 가정집에서 미국, 영국, 한국에서 온 순례자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처럼 웃고 이야기하며 식사 하던 순간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은 어떤 낯선 하루를 만나게 될까 설렘을 품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때로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도 좋은 일이니, 크리스마스만큼 좋을 때는 없다. 그 위대한 창시자께서 친히 어린아이셨을 때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던가. - 크리스마스 캐롤 (Charles Dickens)
아침 식사를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며 엘레나에게 근처에 ATM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저는 현금이 거의 바닥나있던 터라, 걱정도 들고 굉장히 난처했습니다.
그때 자넷이 다가왔습니다. 지갑에서 7만 원이나 되는 현금을 꺼내시더니, 겨우 어제 처음 만난 저게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건넸습니다.
어제 대화 중, 이제 연휴 기간이라 중간에 영업 중인 숙소를 찾지 못하면 50km 가까운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떠나기 전 엘레나는 저를 따로 불러 배낭에 온갖 먹을 것과 음료를 가득 챙겨주셨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주저 말고 연락하라며 명함도 건네주셨습니다.
어젯밤의 따스하고 가정적인 분위기 위에 더해진 이 세심한 배려가 고되고 외로웠던 순례길에서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수많은 친절과 감사가 오간 날들 중, 아스케타의 하루는 단연 오래도록 가슴에 남은 순간입니다.
순례를 떠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너무나 많은 도움과 배려를 받았습니다. 아침 하늘을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자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 날은 숙소를 찾기 위해 로그로뇨까지 배낭을 메고 마라톤 수준의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이를 버틸 수 있었던 건, 분명 그분들의 마음 덕분이었을 겁니다.
로스 아르코스 입구에는 흑염소, 닭, 오리를 키우는 목장이 있습니다. 동물을 돌보던 어린 소녀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흑염소를 가까이서 구경하는데 갑자기 제 얼굴에 기침을 뿜어댔습니다.
로스 아르코스의 목장을 지나 마을 초입으로 들어서자 야외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였기 때문인지 마당에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 음식과 와인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길을 지나자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소리에 곁에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제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49km 극한의 여정을 지나 도착했을 땐 정말 온몸이 부서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라 숙박 할 수 있을 만한 곳은 대도시인 이곳 로그로뇨 뿐이었고, 순례길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걸은 날입니다.
아침부터 이어진 긴 걷기 끝에 의식도 몽롱지고 발가락은 살가죽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힘들다는 생각만 너무 강해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성당에서 기부제로 운영한다는 알베르게였습니다.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았던 저는 불편하더라도 성당이나 공립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더 선호하곤 했습니다.
문 앞에 도착해 전화를 걸어보니 일주일 동안 운영을 중단 중이라는 안내가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시에서 운영한다는 공립 알베르게는 열려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문을 연 로그로뇨의 공립 알베르게에 다른 순례자는 없었습니다. 100인실이 넘는 대도시의 알베르게를 크리스마스이브에 저 혼자 쓰게 되었습니다.
알베르게 관리인들은 이른 퇴근을 알리고 크리스마스엔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혹시 내일도 머물 수 있는지 묻자 무려 건물 열쇠를 직접 쥐여줬습니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상점조차 대부분 문을 닫는 날입니다. 저는 서둘러 마트에 장을 봐두러 갔고 거리엔 어른들고 산타 모자를 쓰고 화기애애 걸어 다녔습니다.
샤워기에선 어째선지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난방은 다행히 들어왔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보내는 밤이었기에 마음음 매우 쓸쓸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크리스마스를 소중히 여기고 일 년 내내 그 정신을 지키려 노력할 것입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것입니다. 이 세 시대의 정신이 내 안에서 함께할 것입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 크리스마스 캐롤 (Charles Dickens)
홀로 깨어난 크리스마스의 아침. 혹시나 하고 오래 전 헤어졌던 라스 씨와 앤 씨에게 연락을 드려봤습니다.
마침 두 분도 로그로뇨에 계셨고 새로 만났다는 한국인 한 분과 함께 아파트를 빌려 숙박 중이셨습니다. 거기로 옮겨도 괜찮을지 여쭙고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온갖 풍파와 계속 홀로 보낸 밤을 지나온 터라 크리스마스에 오랜만에 재회한 얼굴들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숙박비를 드리고 싶었지만 나이가 어리고 여태 가난한 티를 많이 내서인지 두 분께서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에 와인 한 병을 사기로 했습니다.
함께 계셨던 다른 한국인은 29살 여성 지 씨로, 팜플로나에서 다리를 다쳐 순례길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귀국하기에는 아쉬워 스페인 자유여행으로 계획을 바꾸고 내일 세비야로 떠날 예정이라 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 날을 기점으로 누나와 형으로 호칭을 바꾸었습니다. 라 리오하의 와인 도시 로그로뇨에서 라스 형, 앤 누나와 함께 하루 종일 각자의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점심은 로그로뇨 명물 양송이 꼬치 메손 델 참피뇽을 먹었습니다. 제 식사는 지 누나가 사줬습니다. 나이가 어려선지 여정 중 친절을 베푸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로그로뇨를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간의 피로 때문에 하루 종일 푹 쉬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마트에서 산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요리해 먹었습니다. 라스 형은 독일 교환학생 경험이 있어서인지 유럽식 주방에 익숙했고, 웅이처럼 늘 우리에게 밥을 해줬습니다.
라 리오하의 특산 와인과 함께, 이국에서 실컷 웃으며 보냈던 크리스마스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돈을 많이 벌고, 남들 앞에 고개 세우고, 인정받으며 사는 것. 나의 자아가 흐릿하여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스스로 정하지 못했기에 사회가 좋다 말하는 기준을 따라가며 그것을 목표라 여긴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는 보잘것이 없다 생각해 항상 그 배경이라도 얻고 싶었던 나약함이지만, 내가 끝내 안고 가는 게 결국 그런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식탁의 온기, 조건 없던 도움과 감사함. 저는 그런 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가 어떤 순간을 담는지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걸 따라갑니다. 이번 길에선 받은 것들이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삶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바라는 삶의 해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선물해준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