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순례기: 한겨울 782km 천주교의 산티아고 1

겨울의 시련을 넘어, 바스크 문화의 나바라

by 재현


2022년 12월, 1학년이었던 저는 한겨울에 홀로 유럽의 천주교 길인 782km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를 “함께 여행하는 순례자들”이라 표현합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은 같은 길 위에서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쌓아갑니다.


The boy felt jealous of the freedom of the wind, and saw that he could have the same freedom. There was nothing to hold him back except himself.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나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

- Paulo Coelho, 『The Alchemist (연금술사)』


겨울이 오면, 길은 더 가혹해지고 아주 드문 순례자들만이 발걸음을 옮깁니다. 대부분의 숙소와 식당도 문을 열지 않습니다. 많은 걸 몰랐던 어린 내게, 홀로 걷는 긴 겨울의 순례는 혹독하고 외로운 시련이었습니다.





Saint Jean Pied de Port (2022.12.16)


우리는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꿈은 영혼의 양식이요, 음식이 육신의 양식이듯. ..내 팔이 충분히 자라나, 내가 태어난 대지를 넉넉히 감싸 안을 수 있을 때까지 - 순례자 (Paulo Coelho)


프랑스의 갑작스러운 철도 파업으로 기차를 탈 수 없게 되어 파리에서부터 약 16시간 동안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탄 끝에 늦은 밤 피레네로 도착했습니다.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야 했지만 밤이 어두워 한참을 헤맸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순례자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오래 버스를 타는 동안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은 녹초가 되었고, 낯선 마을에 잠을 잘만한 곳은 있을지부터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근처 할아버지 한 분이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운 좋게 영업이 이미 끝난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순례자 여권을 비롯해 겨울철 알베르게들의 운영 정보, 거리와 고도 변화가 담긴 지리 자료 등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씩 건네주셨습니다.


사무실 한쪽엔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개껍데기들이 놓여있었습니다. 기부금을 내고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관리인 할아버지는 오늘 밤 제가 머물 알베르게를 안내해주셨습니다. 알베르게란 교회와 마을 사람들이 순례자를 돌보기 위해 마련해온 공간을 의미합니다.



할아버지를 따라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한국인 남성 한 분이 맞아주셨습니다. 새벽부터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식당과 마트가 모두 닫았을 수 있다며 빵과 방울토마토를 나눠주셨습니다.


도미토리에는 외국인 한 명이 더 누워 있었습니다. 이 날 생장 전체를 통틀어 투숙객은 단 둘 뿐이었습니다. 겨울의 순례길은 하루종일 다른 순례자를 한 명도 보지 못하는 날도 있을만큼 매우 고요하고 한적합니다.



밖을 나서던 길에 멀리 새로운 순례자가 보였지만, 빨리 식당을 찾아야 했기에 인사를 나누진 못했습니다. 시내에 영업 중인 식당이 하나 있었고 메뉴판엔 순례자 메뉴가 눈에 띄었습니다. 순례자 여권으로만 주문할 수 있는 이 코스 요리가 제 첫 순례 식단이 되었습니다.


겨울은 극심한 비수기라,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나 성당 숙소,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식당들 외에는 거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지의 일상과 풍경을 가까이 경험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습니다. 정겹게 이야기 나누는 생장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을 때 이미 다른 순례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조용히 문을 열어주며 반겨주고 그렇게 첫 하루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낯설고도 설렜던 제 겨울 순례의 시작이었습니다.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2022.12.17)


모든 사람이 당한 시험은 다 당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0:13


늦은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인사를 나눴던 라스 씨와 저보다 늦게 도착했던 다른 순례자는 이미 떠난 뒤였고 외국인 순례자 한 명만 남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씻고 나오니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름은 비랄, 캐나다 밴쿠버에서 온 31살의 순례자이며 이번이 그의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합니다. 성격이 매우 친근했는데 토스트기나 커피포트 같은 알베르게의 작은 기기 사용법도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 주고 직접 커피를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비랄은 그저께 생장에 도착했지만 공항에서 짐이 도착하지 않아 짐이 올 때까지 이곳에 머물 것이라 합니다. 작고 아늑한 알베르게에 다른 순례객과 함께했던 첫 아침은 순례 시작을 알리는 또 다른 신호 같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비랄이 저를 도미토리 쪽으로 불렀습니다. 그가 열어둔 창문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생장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특별한 건축물과 눈에 띄는 랜드마크는 없지만 동화 같은 풍경에 감탄이 나왔습니다. 비랄은 순례를 하며 이런 새롭고 멋진 광경을 매일 보게 될 거라고 합니다.



생장은 순례의 시작점에 걸맞은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길거리에서 순례자 사무실 할아버지와 알베르게 관리인 분을 다시 마주쳤고, 그 분들께 앞으로 여정의 응원을 들으며 순례의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스페인 특유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홀로 순례를 시작하는 발걸음에,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산뜻함과 자유로움에 온몸이 벅차올랐습니다.



Arnéguy (0km ~ 4.5km)



걷다보니 길 한복판에 커다란 마트가 나타났습니다. 마트 점원 분은 계산을 하며 미소와 함께 부엔 카미노! (Buen Camino!)라고 인사해 주셨습니다.


좋은 여정이 되기를 이라는 뜻의 이 응원 같은 인사는 피로를 덜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 되곤 합니다.



순례길은 이 아르네기 마을처럼 여러 크고 작은 마을들이 이어져있습니다. 대부분의 마을들에는 모두 알베르게가 있지만, 지금처럼 한겨울 비수기에는 극소수를 제외하곤 문을 열지 않습니다.



Varcalos (4.5km ~ 11.4km)



발카로스에 도착하니, 동네 주민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바가 하나 있었습니다. 학교도 상점도 없는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떤 일상을 살아갈까. 문득 세상은 넓고 환경은 그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마을을 지나면 시냇물을 넘어 피레네 산맥을 넘는 본격적인 고난의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산 길은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이었고 강풍이 미친 듯이 몰아쳤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건 미칠듯한 갈증입니다. 아르네기 이후로는 어떤 마트나 자판기도 보이지 않아 물을 보충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몇 안되는 물로 30km에 가까운 구간을 걸어야했기에 지나가는 차를 붙들어 물을 구걸하거나 시냇물이라도 마시고 싶었던 절박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말 너무 힘들었는데, 앞서 떠난 순례자들과 이 곳을 지난 모든 이들도 이를 견뎠을 것이라 생각하며 버텨냈습니다.



Lglesia de San Salvador de Ibañeta

(11.4km ~ 21.0km)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오르막을 한참 오르니 드디어 정상에 성당 하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산의 꼭대기엔 작은 성당이 하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 성당을 본 순간 더 이상의 오르막은 없겠다는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물을 조금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몸은 탈진 직전이었고 갈증이 특히 극심했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석양 아래의 풍경은 그 모든 고생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Roncesvalles (21.0km ~ 28.0km)



마침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는 상상과 달리 아주 작은 중세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마을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유지인 만큼 어느 정도 규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언덕과 숲에 둘러싸인 커다란 성당만이 눈에 띄었습니다.



론세스바예스의 공립 알베르게는 중세 시대부터 순례자들을 위한 환대를 이어온 역사적인 장소라고 합니다. 이 알베르게는 13세기에 지어진 론세스바예스 성 마리아 교회의 일부로 오랜 세월 동안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례자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왔습니다.


숙박비는 10유로, 저녁 식사와 다음 날 아침 식권까지 함께 구매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냐 묻자 두 명이 더 있다고 합니다. 비랄을 제외하고 어제 생장에서 함께 머물렀던 두 분도 이곳까지 무사히 도착한 듯합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홀에서 라스 씨를 만났습니다. 도미토리 쪽으로 짐을 옮기려는데 화장실 앞 거울에서 머리를 빗고 있는 여성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녀 역시 한국인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를 혼자 여행하다 순례길로 왔고, 한국에서는 싱어송라이터를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전 날 밤 식당으로 가던 중 스쳐 지나간 그 순례객으로 이름은 앤 씨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옆 식당으로 향했고 테이블 위엔 우리를 위한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라스 씨와 앤 씨는 모두 이십대 후반으로, 식사를 하며 두 분의 오랜 여러 여행담을 듣는 게 즐거웠습니다.



Roncesvalles - Zubiri (2022.12.18)


언덕은 음악 소리로 가득 차 있어요. 천 년 동안 불러온 노래들로 말이죠. 언덕은 내 마음을 음악 소리로 채워줘요. 내 마음은 들리는 모든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해요. - 사운드 오브 뮤직 (1965)



론세스바예스의 아침 식사는 커피 한 잔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앤 씨가 스페인에선 카페 콘 레체가 유명하다고 해 저도 같은 메뉴로 주문해 보았습니다.


스페인식 밀크 커피인 카페 콘레체는 카페라테와 비슷했으며 부드럽고 달달한 풍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론세스바예스의 아침 풍경은 굉장히 색달랐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보랏빛 구름에 뼈대만 있는 나무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짧은 파장의 푸른빛과 보랏빛이 더 멀리 퍼지기 때문에 저온 다습한 산악 지형의 공기 입자들과 만나면서 이처럼 보랏빛 구름이 생긴다고 합니다.



순례길을 걸으며 지나는 마을마다,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과 풍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고 한적한 마을부터 웅장한 대도시, 거대한 산맥과 고요한 성지에 이르기까지 관광이 아니라 마치 모험과 여정을 떠나고는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Auritz (28km ~ 30.8km)



아우리츠라는 산골 마을 너머로 해가 뜨고 있었습니다. 일출의 빛이 지붕과 돌담을 붉게 물들이고 마치 서양화 속 한 장면 같았습니다. 순례길에선 항상 음악을 들으며 걸었는데 풍경이 그 감성을 더 극대화해줍니다.


햇살은 유독 따뜻했고 공기는 맑았으며 사방은 초록빛으로 가득했습니다. 날씨와 풍경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하루였고 그 풍경 속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탄이 절로 나왔던 것 같습니다.



지나는 길가에는 커다란 축사와 말 목장, 양 떼들이 있습니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제게 소와 말을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는 일은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Espinal (30.8km ~ 35.5km)



점심시간 즈음 도착한 마을입니다. 시에스타 탓인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텅 빈 마을처럼 고요했습니다.


허기가 져서 식당을 찾아 다녔지만 문을 연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겨울철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래스토랑도 대부분 문을 닫는 것 같습니다.



Viscarett (35.5km ~ 38.7km)



다음 마을인 비스카렛도 문을 연 식당은 없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제외하곤 걷는 내내 한 끼도 먹지 못한 셈입니다. 마을을 나서려는 때 라스 씨와 앤 씨를 만났습니다. 두 분도 영업 중인 곳은 찾을 수 없었다 합니다.



이 곳을 지나면 수비리까지 매우 험난하고 포장되지 않은 산길이 이어집니다. 내리막 구간이 유독 험했는데 경사가 가파른 데다 온통 돌로 뒤덮여 있어 걷는 내내 무릎과 발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Zubiri (38.7km ~ 49.5km)



허기지고 지친 몸과 고통스런 다리를 이끌고 수비리에 들어서자 양 떼들이 튀어나와 반기듯 달려왔습니다.


수비리는 바스크어로 다리의 마을을 의미합니다. 다리 중앙 기둥 아래에는 성 키테리아의 유해가 묻혀 있는데 광견병에 걸린 동물을 이 기둥 주위로 세 번 돌게 하면 병이 낫는다는 오랜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마을엔 하나의 알베르게만이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이전의 공립 알베르게들과는 달리 사립으로 운영되는 숙소로 예쁜 별장에 온 듯한 감성이었습니다. 호스트는 주기적으로 장작을 들고 와 벽난로를 갈아주었습니다.


이날 밤도 라스 씨, 앤 씨, 그리고 저까지 세 명뿐이었습니다. 고작 15유로로 별장 전체를 전세 낸 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주방 한쪽엔 순례자들이 남긴 방명록이 놓여 있었습니다. 각자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엇갈리고, 때로는 다시 만나고, 흔적을 보거나 근황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마을 한구석에 있던 낡은 동네 식당에서 사슴 고기와 붉은 콩을 주문했습니다. 난생 처음 먹는 사슴 고기였지만 소고기와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저녁은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사다 쌀밥과 함께 구워 먹었습니다. 세 명이 실컷 먹고도 10유로가 들지 않을 정도로 물가가 매우 저렴했습니다.



Zubiri - Arre (2022.12.19)


자선과 지혜가 있는 곳엔 두려움도 무지도 없다. -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권고 (Saint Francis)


겨울 순례는 두꺼운 침낭과 외투 등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 무거운 배낭이 걸을 때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손빨래를 해 건조대에 널어두었지만 바지를 제외하곤 거의 마르지 않았습니다. 젖은 옷가지를 배낭 밖에 묶은 채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축축한 옷자락이 생각보다 무거웠습니다.



시골 풍경만 보다가 공사판 같은 곳을 지나다 보니 도시로 향해가고 있다는 실감이 듭니다. 하늘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Urdaniz (49.5km ~ 54.2km)



마을 어귀에서 짐을 내려놓고 우비를 꺼냈습니다. 패딩 위에 우비까지 걸치자 몸은 금세 더워졌고 흐린 하늘과 부슬비는 순례길 특유의 상쾌함을 앗아갑니다.


배낭 밖에 묶어둔 젖은 옷들이 물을 머금어 더 무거워졌고 벗겨지기 일쑤였습니다. 여정 초반, 경험도 준비도 부족했던 시기에 많이 버거웠던 날입니다.



Larrasoaña (54.2km ~ 56.3km)



길을 안내하던 조개 표식을 놓치는 바람에 순례길을 벗어나 한참동안 도로 위를 걸었습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차량들 사이로 걷는 건 훨씬 더 피로했습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세워진 작은 십자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표식들은 순례 도중 생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합니다. 같은 길을 걷던 그들의 마지막을 기리며 길을 이어갑니다.


트럭을 몰던 한 아저씨가 아이스박스를 꺼내시더니 장사를 하셨습니다. 마침 물도 떨어진 참이라, 사이다 한 캔과 오렌지를 구매했습니다. 지친 몸으로 마신 차가운 사이다와 오렌지의 단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Arre (56.3km ~ 66.5km)



마침내 첫 대도시인 팜플로나로 가기 전 마지막 마을인 아레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입구엔 중세 시대에 지어진 돌다리와 11세기에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도사들의 봉사로 순례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점심만 해결하고 팜플로나로 갈 예정이었으나 배 터리가 바닥나 아레에서 머무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와 역사적인 수도원에서 머무는 하루도 궁금했습니다.



아레에는 작은 광장과 학교가 있었고 하교하는 아이들, 창밖으로는 저녁 준비 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관광객 하나 없는 외딴 유럽 마을에 혼자 서 있자니 낯설고 이국적인 감성에 잠겼습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트리니다드 수도원은 외관부터 내부까지 범상치 않았습니다. 1000년 전 세워진 중세 수도원.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지나온 순례자들의 흔적이 돌벽 사이로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숙박은 5유로로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싼 가격이었지만 겨울철인데 난방이 없어 몹시 추웠고 건물 자체도 고풍스러워 음산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날 커다란 중세 수도원에 묵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도사님마저 저녁에 퇴근을 하신 후엔, 마당을 포함한 수도원 건물 전체를 혼자사 쓰게 되었습니다.



손빨래를 하고 마당의 줄에 옷을 널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아무도 없이 홀로 밤을 보낸다는 건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마당 한편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렸고 혼자 남은 외로움을 달래줬습니다.



저녁에는 어두운 주방에서 마트에서 사 온 냉동 빠에야를 프라이팬에 데워 먹었습니다. 깊은 밤 추위에 몇 번이고 깨면서 으슬으슬함 속 넓은 수도원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적과 고독이 기억에 남는 밤입니다. 천 년된 수도원에 이방인으로 혼자 머문 밤은 당황스러웠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Arre - Pamplona (2022.12.20)


앞에는 카키색 옷을 입은 기마 경찰이 교통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가 지휘봉을 들어 올렸다. 차가 갑자기 느려지며 브렛을 내게 밀어붙였다. "그래" 내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예쁘지 않니?" -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Ernest Hemingway)


밖으로 나서려 했지만 이 800년 된 수도원의 기괴한 방식으로 잠긴 문이 도저히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간신히 문을 여는 데 성공하자 공교롭게도 바로 그 순간 성직자 분이 도와주러 오셨습니다. “Was it good?” 하고 웃으며 물으시기에 멋쩍게 웃으며 “Yup, very good. Gracias!”라고 답했습니다.



정원에 널어두었던 빨래는 새벽에 내린 비로 모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거의 모든 옷을 널어둔 상태여서 젖은 옷가지들을 커다란 봉투에 쑤셔 담고 무겁게 짊어진 채 팜플로나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


마른 양말조차 없어 맨발로 신발을 신은 채 걸었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초라해 보였을 것 같습니다.



팜플로나로 가는 풍경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푸른 초목과 목장이 주던 자연스러운 정취 대신, 웅장한 건축물들과 정돈된 도시가 따스한 햇살 속에 놓여 있습니다.



팜플로나는 오래 전 나바라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마을 외곽을 두른 거대한 성벽은 여전히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두터운 돌문을 지나는 순간, 몇 세기 전의 중세 공기로 진입하는 것 같은 감각이 솟았습니다.



Pamplona (66.5km ~ 72.5km)



팜플로나는 순례에서 처음으로 만난 대도시입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고성, 중심가, 성당이 어우러져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대하고 번화한 분위기입니다. 거리는 활기찼고 오랜만에 마주하는 도시의 인파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빨래방에 옷을 맡기고 순례길의 첫 번째 목적지인 팜플로나 대성당을 찾았습니다. 안에는 나바라의 역대 왕들이 잠들어 있으며 웅장한 회랑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나중에 만난 한 순례자 누나는 팜플로나 대성당 내부가 순례길 전체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웅장하다고 했는데 정작 저는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팜플로나의 심장인 까스티요 광장. 순례길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일 만큼 가슴을 울린 장소였습니다.


탁 트인 광장과 눈이 부실 만큼 따스한 스페인의 햇살이 어우러져 심장이 벅찼습니다. 광장 특유의 탁 트인 공간감과 따스함은 사진으론 전혀 담기지 않습니다.



카스티요 광장의 가장자리엔 카페 이루냐(Café Iruña)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단골로 자주 찾았던 장소로 그의 대표작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하는 배경 중 하나기도 합니다.


까스티요 광장의 찬란한 햇살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마주하며 헤밍웨이가 왜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헤밍웨이처럼 이런 곳에서 생을 보내며 글을 쓰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빨래방에서 옷들을 찾고 나서야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로 향할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팜플로나는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든 도시였고 빨래 건조로 늦어진 시간 속에 이곳에 하루 머무를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레에서 숙박한 탓에 일정이 여유롭지 않아 급하게 다음 마을인 푸엔테 라 레이나로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판단은 절 큰 위험에 빠뜨리게 됩니다.





강요 없이 선택하고, 결과를 감수하며, 스스로 책임지는 능력. 인간을 여타 피조물과 구별 짓는 흔적이라 천주교에선 말합니다. 낯선 세계에 홀로 발을 내딛던 순간, 선택이란 게 얼마나 방대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 그 모든 순간이 제겐 해방감으로 다가왔습니다.


팜플로나의 눈부신 광장. 헤밍웨이처럼 느긋하게 군중들을 관찰하며 사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 풍경이 말하길, 삶은 나만의 방향과 자유로 추구하는 것이지 그저 흘러가는 걸 견디는 게 아니었습니다. 무심한 반복이 아닌 내가 의식적으로 택한 삶의 여정을 믿게 됩니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나의 인생도 매 순간 걸으려 했던 좋은 여정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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