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순례기: 메소포타미아, 사막 이슬람교의 중동 2

홍해의 베두인 천막, 샴엘셰이크의 마스지드 알-사하바

by JAE HYUN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비워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Camus Albert 『L’Étranger (이방인)』


순례의 마지막 목적지, 이집트의 자발 무사. 이슬람에선 무사라 불리는 예언자가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 산입니다. 그곳에 가기 전 홍해 변방의 베두인 천막, 사막과 바다는 아무것도 요구하는 것 없이 따스했습니다.


홍해 앞 외진 사막의 라스 모하메드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뜻하지 않은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이었습니다.





(2026.01.24) لاس محمد


경계가 없는 자에게 감옥이란 없다. 타인의 칭찬이나 비난에 무관심할 때, 당신은 영원한 봄이 깃든 정원을 걷게 되리라.
- 미르다드의 서 (Mikhail Naimy)


마르딘 공항에서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해안 도시, 샤름엘셰이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애매한 시간으로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동이 틀 무렵 왓츠앱으로 연락을 나눈 베두인 아저씨가 픽업을 오셨습니다.



한겨울의 계절이었지만 이집트의 사막은 그 이름과는 달리 따뜻한 날씨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닷가와 가까워 바람이 뜨거움을 식혀주어, 그날의 공기는 온화하고도 쾌적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은 조잡하게 꾸며진 홈페이지를 단서 삼아 찾아간, 남쪽 끝 해안가 외곽의 베두인 부족이 운영하는 천막입니다. 시내의 검증된 호텔이나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와는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천막의 주인으로 보이는 모하메드 씨. 그리고 두 젊은 베두인 청년들이 영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습니다. 모닥불 위에 끓던 베두인차를 따라 내어 주었는데, 박하의 청량함이 스치고 곧이어 특유의 진득한 단맛이 혀에 감겼습니다. 우르파의 스라 게재시처럼, 이곳을 찾은 한국인도 제가 처음이라 합니다.



따스산 해와 황금빛 사막, 에메랄드빛과 코발트빛이 어우러진 라스 모하메드의 바다는 눈부시게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영화 알라딘의 OST인 A Whole New World의 피아노 버전을 들으며 아무도 없는 외딴 사막의 홍해를 거닐었는데, 한없이 자유롭고 상쾌했습니다.


그 순간은 마치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된 것만 같은, 모험 속 세계처럼 자유롭고 벅찬 기분이었습니다.



라다크에서 만난 하늘 위 호수가 인생을 뒤흔드는 숨 가쁜 감격이었다면, 사막과 홍해 바다는 그와는 반대로 한없이 느슨해진 시간 속에서의 여유와 자유,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원초적인 행복이 온몸에 번졌습니다.



모래 위에 누워 한가로이 햇살을 즐기기도 하고, 모하메드 씨에게 빌린 스노클링으로 바닷속을 유영하기도 합니다. 홍해의 바다는 유난히 포근하고, 놀라울 만큼 청명했습니다. 산호초는 형형색색으로 숨 쉬고, 온갖 열대어들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펼쳐집니다.


헤엄치는 바다거북과 스치고 투명한 빛이 스미는 맑은 홍해를 유영할 때면, 마치 물에서 태어난 존재로 되돌아간 듯 잊고 있던 본능적인 안온함에 잠깁니다.



재래식이었던 샤워실과 화장실. 모하메드 씨는 시나이 반도 남부의 사왈하 베두인족으로,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부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일해오셨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쯤 모하메드 씨의 부인, 금발의 백인 여성인 라야 윌리 씨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시나이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매료되어 모하메드 씨와 결혼에 이곳에 정착하신 분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때가 되니 베두인 분들이 저를 불렀습니다. 이 천막에 손님은 저 밖에 없었는데, 라야와 모하메드 씨의 지인으로 보이는 분들도 함께 와 식사를 했습니다. 아이쉬 발라디와 향신료가 더해진 카브사, 감자와 고기, 샐러드로 이루어진 베두인 전통식을 먹었습니다.


이슬람과 베두인 문화에서 손님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며 전통적으론 낯선 이조차 사흘 동안 이유를 묻지 않고 머물게 해 줬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는 줄곧 베두인 부족 캠프에 머물렀고, 그곳에 마주한 환대는 이곳에서만 느껴볼 수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이 날 천막에 머무는 손님은 저 밖에 없었기에 베두인 청년 한 명만 마즐리스에 남아 불침번처럼 자리를 지키고, 그 외엔 아무도 없는 외딴 홍해의 밤이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사막여우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밖을 산책했지만, 파도 소리와 밤하늘의 별만 가득했습니다.


이런 외딴곳에 홀로 밤을 보내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아 두려움보단 홍해의 파도 소리 속 울림과 편안함이 스몄습니다. 사막의 밤바다 앞 오감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원초적 평정이 감돌았습니다.



(2026.01.25) شرم الشيخ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래도 사랑으로 서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너의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여두라.
- 예언자 (Jubrān Khalīl Jubrān)



동이 트니, 홍해 위에는 석양이 뜨고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일출에 이어, 홍해 끝에서 바라보는 해는 특별했습니다. 이슬람에서 태양은 알라의 창조를 증거 하는 징표라고 합니다. 하루 다섯 번의 살라트(صلاة)도 이 태양의 위치로 정해지는 만큼, 이곳에서 태양은 신의 존재를 가리키는 상징인 셈입니다.



그래선지 메소포타미아와 홍해, 이후 시나이산까지, 이번 여행엔 유독 각별하게 느껴진 일출이 많았습니다.



불침번이었던 베두인 청년이 아침을 차려주었습니다. 바다에서 나오면 몸이 젖어 추워졌는데, 모닥불 앞에 쪼그려 앉아 차가 끓기 기다리는 시간이 따뜻했습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막을 걷는 것, 홍해를 유영하며 열대어와 산호를 관찰하는 것, 낮게 깔리는 아랍어 노래를 들으며 낮잠을 자는 것뿐이었지만 어떤 여행보다 풍요롭고,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쉬웠습니다.



아무도 없는 홍해 앞 사막. 베두인 천막의 마즐리즈에 누워있으면, 마치 무인도에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잣대도 먼 곳의 일처럼 느껴지고는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 마지막 점심 식사로 먹은 베두인식 생선 스튜, 마르깐(مرقان) 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시내로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시내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 이번에도 모하메드 씨가 차로 데려다주셨습니다. 사실 라스 모하메드 인방은 군사 관리 구역입니다. 군 검문소의 군인들과 장난을 치고 농담을 나누는 모하메드 씨를 보며, 이곳에서 오래 뿌리내려 살아왔고 인망이 좋은 분인 게 느껴졌습니다.


시내에 도착해 스노클링 대여료와 냉장고에서 꺼내 마신 음료수 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모하메드 씨는 괜찮다며 끝내 받지 않으셨습니다. 자발 무사의 일출이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올 수 있다면, 모하메드 씨의 캠프는 어느 곳보다 가장 다시 오고 싶은 곳입니다.



Sharm El-Sheikh



샤름엘셰이크는 수 세기 동안 베두인 부족이 살아온 땅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이집트 정부가 해안 토지를 호텔 사업자들에게 팔면서, 베두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이곳의 베두인들은 모하메드 씨처럼,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하며 낙타 투어, 사막 가이드, 베두인 춤 퍼포먼스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습니다.



시내 근처 사막에서 ATV를 타며 투어를 했습니다. 샤름엘셰이크 시내는 생각 이상으로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진 휴양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인위적이고, 모하메드 씨가 운영하던 외딴 베두인 천막과 다르게 번잡하고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땅을 잃은 베두인의 문화가 관광 상품으로 꾸며져 소비되는 간극도, 저는 썩 즐겁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2026.01.26) جبل موسى


다섯 번의 난파, 셀 수 없는 위험들을 겪고서도 나는 또다시 운명을 시험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별들이 나를 그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 천일야화 (Unknown)


마침내 자발 무사로 떠날 수 있는 날이 밝았습니다. 필요한 물품을 사고, 출발 전 마음을 다지기 위해 시나이 반도 최대 모스크인 마스지드 알-사하바(مسجد الصحابة)가 있는 올드마켓으로 향할 준비를 했습니다.



호스텔에는 영국인인 33살의 흑인 여행자가 있었는데, 이곳 물가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집트나 인도는 바가지가 심해 처음 오면 물가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익숙해진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 정보를 얻어두면 유용합니다.



샤름엘셰이크의 올드 마켓은 알라딘의 아그라바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입니다. 가죽과 직물, 은빛 장신구, 형형색색의 천. 좁은 골목마다 향신료 냄새가 깔리고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넘칩니다. 바가지가 매우 심하지만, 흥정을 잘하면 오히려 싸게 살 수도 있습니다.



마스지드 알-사하바 내부에 들어오니 신도들이 줄을 맞춰 서서, 이맘의 목소리에 따라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가 이마를 바닥에 댑니다. 그 광경을 보니 이곳의 이슬람 분위기가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자발 무사(시나이산)는 천주교에서 모세가 하느님께 십계명을 받은 산으로 알려져 있고, 그렇게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무사(모세)를 예수와 동등한 예언자로 보기에, 그 예언자가 알라와 직접 만난 장소는 천주교보다 오히려 더 큰 비중을 가집니다.


이 일대의 사람들도, 시나이 반도를 터전으로 살아온 베두인들도 대부분 무슬림입니다. 무교인 입장에선, 자발 무사는 이슬람 순례 분위기가 훨씬 짙었습니다.



사이좋은 아버지와 아들이 운영하던 카페입니다. 이집트의 물담배인 시샤(شيشة)를 피우며, 자발 무사로 떠나는 차를 타기 전까지 시간을 때웠습니다.


자발 무사가 위치한 시나이 남부 내륙은 외교부 지정 여행 자제 지역입니다. 관광 산업으로 보안이 엄격한 샤름엘셰이크 시내와 달리, 치안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시나이 반도 한가운데를 야밤에 차로 4시간 넘게 가야 한다는 사실에 하루 종일 긴장감이 돌기도 합니다.



자정 무렵부터 시나이 내륙을 몇 시간 꼬박 달려, 저는 마침내 순례의 종착지인 자발 무사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런 풍경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과, 어딘가 신성하고 고요한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자발 무사로 떠나기 전, 이집트에 도착해 처음 머물렀던 홍해 앞바다. 별다른 일도 없던 무심함만 가득했는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섣부른 조언이나 당위적인 기대보단 다정한 무관심을 건네며 살아볼까 합니다. 내게도, 타인에게도.


판정 기준이 제거된 자리에서 틀림이라는 건 정의역 밖으로 밀려납니다. 인생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는 게, 내가 어른으로써 바라온 여유의 시작일 듯합니다.


나름의 속도를 존중한 채 놓아주는 여백.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대로 두는 평온. 여전히 이 사회를 살아가겠지만, 사막의 홍해 위로 번지던 맑은 빛과 공기 속에 배운 무심함은 오래 간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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