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순례기: 이슬람교의 고대 중동과 시나이 사막 1

이브라힘의 성지 샨르우르파, 중동 고대 도시 마르딘

by 재현


2026년 1월, 이슬람의 알-자지라 북부와 시나이 반도. 이브라힘이 태어나 걸은 땅과 와히가 무사에게 내린 사막으로 졸업 전 마지막 순례를 떠났습니다.


알무스타파, 신의 선택을 입은 자이자 신의 사랑을 받은 자. 시대의 새벽을 알리던 그는 열두 해 동안 오팔리즈에 머물며, 자신을 고향 섬으로 데려다줄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Kahlil Gibran, 『The Prophet (예언자)』


세상은 분명 다채롭고 아름다운 면모도 가득합니다. 나를 설레게 할 순간들도, 평생 추억할 낭만도. 그런데 나는 왜 나의 인생 앞에 망설이게 되는지 의문입니다. 저의 마지막 여정은 여행경보의 긴장, 그 너머였습니다.





Şanlıurfa (2026.1.22)


우린 끊임없이 더 외로운 길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로서, 하루를 마감했던 곳에서 다음 날을 시작하지 않고 해가 졌던 곳에서 다시 해가 뜨지 않는다. 땅이 잠든 동안에도 우린 여행한다. 우린 강인한 식물의 씨앗이며 마음이 충만하고 성숙했을 때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 - 예언자 (Kahlil Gibran)


유럽 800km 천주교의 길. 해발 5,000m에 닿는 티베트 불교 히말라야. 대학생 때의 마지막 기회는 이슬람교, 그 중동과 사막으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아직까지 여행금지국가인 시리아, 이라크, 이란과 달리 그 분위기를 간직한 튀르키예 남동부는 한 달 전, 여행경보 2단계로 하향되었습니다. 이브라힘의 탄생지 우르파와 고대 중동 마르딘을 첫 목적지로 정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야간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시리아 쪽 남부 국경으로 향하는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9시간, 카파도키아에서 11시간 버스를 달려 우르파에 도착하니 마침내 뉴스에서나 보던 모래색 중동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향하는 내내 외국인 여행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명 관광 명소를 한참이나 벗어난 이곳에서의 여행은 제게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주민들에게도 유독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불꽃을 튀기며 망치질하는 대장장이와 구리 세공 장인. 향신료를 들고 바자르를 오가는 검은 히잡의 여인들. 중동 특유의 먼지와 석조 건축, 그리고 모스크와 아잔. 제가 상상하고 바란 마슈리크 풍경이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옅은 먼지와 건조한 공기가 뒤섞인 거리를 지났습니다. 길을 걷는 동안에는 언제나 중동 특유의 긴장감과 낯선 호기심이 공존했습니다.



골목을 지나다 소년과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알 수 없는 언어와 함께 저를 안으로 적극 초대했습니다. 알고 보니 딱 아침 식사 전문 식당이었습니다. 구운 양 간, 매콤한 페이스트, 다양한 치즈와 올리브, 꿀과 타힌까지. 마슈리크 중동의 메제(Meze)란 차림입니다.


이곳은 문을 연 지 두 달도 안 된 가게였습니다. 점원들은 가족으로 보였는데, 식사하는 내내 필요한 건 없는지 계속 물어오고 특히 꼬마아이는 제가 뭔가 원할 때마다 신이 나서 주방으로 뛰어가 챙겨 오곤 했습니다.



Mevlid-i Halil Mağarası



우르파의 중심부에 있는 메블리디 할릴 모스크. 예언자 이브라힘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이슬람의 성지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 동굴에서 왕 니므롯의 박해를 피해 이브라힘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며, 이후 이브라힘은 예언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동굴 안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메카의 잠잠수에 이어 이슬람에서는 두 번째로 용험한 성수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커다란 생수통을 하나 사서 물을 가득 담아 마시고 세수를 했습니다.


여행경보 지역을 무릅쓰고 찾아가 마신 성수.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묘한 경건함과 용기를 줍니다.



Balıklıgöl



인근에는 발르클르괴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이브라힘이 폭군 님로드에게 화형 당할 뻔할 때, 신의 기적으로 장작은 잉어로, 불은 물로 변했다는 신화입니다.


무슬림 순례자들과 현지 가족들이 연못을 거닐며 잉어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 표정이 정말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이고 외견에 주로 감탄하게 되는 관광 명소와 색다른 감각이었습니다.


현지 커플 한 쌍이 굳이 유일한 외국인이던 저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습니다. 묘하게도 그 순간 덕분에 이방인으로서의 긴장감은 조금 더 옅어졌습니다.



Şanlıurfa Çarşısı



우르파의 시장은 600년 전 오스만 제국 때 건설된 것입니다. 실크로드 대상들이 머문 당시 모습을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르파는 튀르키예 도시이지만 시리아나 이라크의 분위기와 더 닮아 있었습니다.



시장의 중심부는 귐륙 한(Gümrük Hanı)이라 불리는 과거 대상 숙소 건물로 사용된 공간입니다. 넓은 중정에는 현지인들이 음료를 마시며 체커 게임을 두는 카페가 있습니다. 눈 때문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장작불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동네 아저씨들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왔습니다. 우르파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영어마저 통하지 않는 곳도 제게는 처음입니다.



날씨가 흐리고 눈이 내리기 시작해 몸이 금방 지쳤습니다. 청결이 종교적 의무인 중동에는 하맘(Hamam)이란 목욕탕이 있습니다. 뜨거운 대리석 위에 누워 때를 밀고 거품 마사지를 받으며 몸을 정화하는 전통입니다.


샨르우르파의 구시가지 인근에는 현지 단골들을 위한 오래되고 낡은 하맘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이용이 불편하고 낯설지만 가격은 관광지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오래된 골목 한구석에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낯설어, 어리둥절해하던 저를 할아버지 한 분이 자연스레 안내해 주셨습니다.


대충 눈치껏 행동하며 탈의실에 옷을 벗고 걸려있는 수건을 두르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나왔습니다. 이대로 알몸에 수건만 두르고 그대로 나와도 되나, 남탕 여탕 구분은 없나 싶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와 달리 남자와 여자는 공간이 아닌 시간대별로 나뉜다고 합니다. 또 하맘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탕은 없고, 쿠르나(kurna)라고 불리는 대리석 세면대에 알아서 물을 받아 대야로 몸을 씻어야 합니다. 이슬람 율법에서 고인 물은 불결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목욕은 종교적 의미도 담고 있기에, 그래서 이렇게 흐르는 물로 몸을 씻는 겁니다.


이후에는 중앙의 뜨거운 대리석 플랫폼에서 몸을 덥히고 때밀이를 받습니다. 세제라 불리는 때밀이, 쾨퓌크 마사지란 전통 거품 마사지를 함께 받았습니다. 카파도키아 같은 관광 명소 스파에선 최소 8만 원부터 시작이었는데 이곳에선 고작 만 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탕 안엔 현지 아저씨들이 쿠르나와 괴벡 타시, 타스 등 제겐 낯선 하맘의 목욕 방법을 친절하게 몸으로 알려주고 머리에 터번처럼 수건을 매주셨습니다.


때밀이와 마사지를 받은 뒤에는 소우클룩(soğukluk)이라는 휴식실의 침대에 누워 쉬었습니다. 때밀이 아저씨가 옆으로 오라고 부르시더니 차를 타주셨습니다. 담배도 말아주셨지만, 비흡연자라 피우진 않았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번역기로 말을 주고받았는데, 이곳에 다른 한국인이 온 적 있냐 물었으나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과거 쿠르드족 무장 단체로 인한 치안 불안정과 오랜 출국 권고, 시리아 국경이란 인식 탓인지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자체가 거의 드문 듯했습니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누군가 낮게 읊조리는 기도문. 낡은 휴식실에서 현지 단골 아저씨들과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주고받던 대화가 저만의 첫 하맘입니다. 노곤하게 낮잠을 잔 뒤, 우르파의 로컬 전통 음악 저녁 파티라는 스라 게제시(Sira Gecesi)로 향했습니다.



Sıra Gecesi



스라 게제시는 오스만 제국 때 실크로드 대상과 지역 주민들이 사즈를 연주하며 시와 역사를 나눈 파티로, 우르파에서 시작되어 이어지고 있는 전통입니다.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문화입니다. 사전 예약제였고, 왓츠앱에서 현지어로 직접 연락을 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자 호스트와 음악가분들이 저를 굉장히 신기해하며 반겨주었습니다. 이곳도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나이는 몇인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번역기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곳에 찾아온 한국인은 제가 최초였습니다. 외국인 중에선 호주와 미국인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통 스라 음악과 고풍스런 노래가 건물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에 우르파의 전통 코스 요리가 이어집니다. 회랑에 나가 함께 춤을 추며 어울리기도 합니다.



음악가 분께서 노래를 멈추고 한국에서 처음 우르파를 찾아온 친구라는 말과 함께 저를 참석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멋쩍게 손을 흔들자 파티에 오신 분들이 열렬한 박수와 환대로 맞아주었습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옆자리 현지 분이 제게 손을 건넸습니다. 함께 무대로 나가자는 손짓이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몸도 굳었는데, 나란히 춤을 추다 보니 어느새 웃음이 터져 나오고 익숙해졌습니다.



스라 게제시는 퍼포먼스도 정말 다채롭고 환상적입니다. 다르북의 울림부터 불꽃이 춤추는 불쇼. 눈앞에서 반죽을 치대며 즉석에서 만들어지기도 하는 음식.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던 그 현지인 분은 서툰 영어로 “Urfa, love coming you!“ 라며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파티의 모든 분들도 함께 웃으며 환호했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여행경보 지역에서 오히려 더 세심하고 이렇게 적극적인 환대라니. 파티는 오후 7시부터 11시가 넘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건 검은 전통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하레이(Halay)입니다. 젊은 남녀 무용수들이 나와 음악에 맞춰 힘차게 발을 구르고 회전하기 시작했을 때, 음악가 분이 저를 손짓으로 부르시더니 무용수들에게로 밀어주셨습니다.


무용수들은 제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대열에 합류시켰습니다. 리듬에 맞춰 발을 차는 방법, 어깨를 흔드는 타이밍, 스텝을 밟는 순서. 장난치듯 웃으며 하나하나 가르쳐주었고 현지인들과 무용수들 사이에 섞여 회랑을 돌아가며 정신없이 춤을 췄습니다.



정신없이 놀다 보니 자정이 훌쩍 넘은 늦은 밤이었습니다. 함께 밖으로 나선 아주머니 한 분이 시간이 너무 늦고 눈이 많이 내린 것을 보시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가 어느 호텔에 머무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옆에 있던 무용수 분이 제 호텔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아주 가까워서 걱정 없을 거라 말하자, 아주머니는 그제야 안심한 듯 환하게 웃으며 저를 보내주셨습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붉은색 출국 권고 지역이었던 우르파. 춥고 눈 내리는 밤 로컬들의 따뜻하고 열렬한 환대의 기억은 더 선명해집니다.



Şanlıurfa (2026.1.23)


인생이란 단 한 번뿐인 마차 여행은 끝나면 다시 탈 수 없지만, 책은 다릅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라도 끝까지 읽고 나면, 원한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려웠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과 함께 삶도 이해하게 됩니다. - 하얀 성 (Orhan Pamuk)


다음으로 향할 마르딘(Mardin)은 석회암 절벽 위 미나렛의 첨탑과 이슬람 신학교가 자리한 고대 도시입니다. 그곳은 수평선 너머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볼 수 있는, 내전 국가를 제외하면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도시 전체가 하얗게 덮였습니다. 활기찬 바자르와 하맘, 전통 음악 파티가 펼쳐지던 어제 풍경과는 전혀 다른 차분한 분위기가 되니 어제의 일들이 더욱 꿈처럼 느껴집니다.


한 청년이 친구와 눈싸움을 하다가 제게도 눈송이를 던지고는 자기에게도 던지라며 손짓했습니다. 그들과 섞여 십여 분간 눈싸움을 했습니다. 이곳에 흘러든 저는 드문 이방인이었고, 반가운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한 상점 아저씨가 저를 안에서 불러 세웠습니다. 종아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다 대접해 주신 홍차는 몹시 따뜻했습니다. 통하는 언어가 없어 번역기로 이런저런 말을 나눴습니다. 저는 혼자 여행 온 학생스럽게 어제 우르파에서 즐거웠던 하루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뜬금 없이 아저씨의 가족분들과 뜬금없이 영상 통화도 했습니다. 가족에게 영상 통화가 오자 아저씨는 화면을 제게 비춰주셨고 아내 분, 침대에 누워 있던 아들 분과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아저씨는 폭설로 마르딘행 버스가 끊겼을 수도 있다며 걱정하시더니, 어딘가에 직접 전화를 넣어 주셨습니다. 다행히 버스는 정상 운행 중이었고 시내버스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게다가 눈 때문에 그날따라 버스가 무료였으니, 뜻밖의 행운이 따로 없습니다.



아저씨의 가게는 매운 고춧가루가 자랑입니다. 1990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가게로, 매운맛과 단맛으로 나뉘는 이 고춧가루는 우르파에만 있는 종류라 합니다.


작게 찍어먹어 보니 매콤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뒤를 받쳤습니다. 중독성 있는 감칠맛이 한참 입안에 맴돌았습니다. 떠날 때가 되자, 아저씨는 명함을 주시더니 메블리디 할릴에서 샀던 생수통에도 직접 붙여주셨습니다. 언젠가 우르파에 온다면 꼭 다시 들를 가게입니다.



샨르우르파는 구글맵에 대중교통 노선조차 아예 나오지 않을 만큼, 외국인 여행자에게 낯설고 막막한 도시입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기까지도 수많은 현지 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버스를 갈아탔던 기질테페는 시리아 국경이 코앞인 도시입니다.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아닌 여행경보 지역 특유의 묘한 긴장감은 여전히 계속 남아 맴돌았습니다.



Mardin



튀르키예 남동부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내려다보는 중동 고대 도시 마르딘. 흐린 하늘 아래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돌건물들이 층층이 산비탈을 탄 풍경입니다. 그 사이로 돌무쉬들은 좁은 골목을 오가고 있습니다.



대학생이라 저는 늘 주머니 사정은 빠듯했고, 3일 내내 야간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며 버텼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방과 침대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Mardin (2026.1.24)


눈을 본 광경은 그녀에게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짧은지, 그리고 모든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영원과 창조의 위대함에 비하면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좁았다. - 눈 (Orhan Pamuk)



내전 중인 시리아와 이라크. 그 땅과 맞닿은 마르딘은 내전 지역을 제외하면 인류 근원인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수평선 너머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이슬람이 탄생하기도 전부터 예언자들의 발자취가 깃든 땅, 그 시원을 보고 싶었습니다. 여행경보와 불안정하다는 치안에도 무릅쓰고 찾아온 이유입니다.



PKK라는 쿠르드족 무장 단체는 작년 9월에 자발적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지역 치안을 가장 위협하던 요소의 해체, 그 심리적 안정 덕분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버린 눈 때문인지 막상 도착한 곳에선 어떤 긴장이나 위협보다 묘한 평화가 먼저 느껴졌습니다.


ELYANS KONAĞI

제가 어제 머물던 방의 배관이 터지자 겨울이라 여행자가 거의 없는지 1박에 15만 원이 훌쩍 넘는 다른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무상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여태껏 순례 여행 모두를 통틀어 가장 호화로운 숙소입니다.


3일 내내 버스에서 쪽잠을 자다가 뜻밖의 스위트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또 다음 날은 다시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처지인데, 이 극과 극을 오가는 급격한 낙차도 대학생으로 갔던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마르딘은 기대했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황금빛 돌건물과 골목을 오가는 당나귀, 초록과 황갈빛이 뒤섞인 메소포타미아의 대지를 상상했건만, 막상 제가 도착한 도시는 눈과 안개에 온통 잠겨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중동 특유의 건조한 열기와 활기보단, 꿈속을 헤매는 듯 흐릿하고 몽환적인 풍경을 걸었습니다.


황갈빛 사암으로 쌓아 올린 미나렛의 첨탑은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고, 내부에 들어가면 아랍어 경전과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아잔 소리가 어김없이 흐를 때면, 수백 년 전 사람들도 이 풍경에서 같은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살았겠구나 싶습니다.


Mezopotamya cafe

새하얀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의 루프탑에서 물담배(Nargile)를 피우며 홍차를 마셨습니다. 거진 7년 만에 맡는 니코틴 냄새에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웠던 시절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그때는 제가 지금보다 더 어렸고,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드넓은 인류의 근원을 바라보며 같은 향이 나는 담배를 여유롭게 피우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힘든 시간도 결국 나를 이루는 일부고,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난 지금 이 풍경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거라고.



마르딘 케밥(Mardin Kebabı)은 샨르우르파의 우르파 케밥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시리아와 이라크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지역 특성상 향신료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미식의 나라로 불리는 튀르키예의 음식은 제가 다녀온 어떤 나라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맛이었습니다.


Sihhi Emir Hamam

마르딘의 골목에 있는 시히 에미르 하맘은 무려 1205년에 지어진 전통 하맘이라고 합니다. 역사적 맥락을 덧붙이자면, 11~13세기에 마르딘을 지배한 아르투크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이 목욕탕은 그 자체로 800년의 살아있는 역사인 셈입니다.


때밀이를 받고 바가지로 몸을 헹구던 중 앞에 있던 튀르키예 할아버지 한 분이 제게 등을 밀어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세제로 힘껏 등을 밀어드렸더니, 할아버지도 흔쾌히 제 등을 닦아주셨습니다. 겨울이 좋은 건, 바깥의 추위만큼 하맘이 더 뜨거웠기 때문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구시가지의 오래된 이슬람 신학교, 장즈리예 마드라사(Zinciriye Medresesi)에 올라갔습니다. 수평선 너머까지 탁 트인, 기대했던 황금빛 웅장함은 아니었지만 눈에 덮이고 안개에 잠긴, 이 나만의 흐릿한 마르딘을 오히려 더 아끼고 싶습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끝없이 거대하고 영원할 이 눈 덮인 평원에 서니, 내가 그렇게 붙들고 있던 고뇌와 적대감은 얼마나 작고 순간적이었는 것일지. 이런 풍경을 가슴에 품은 채 서른을 넘는다면 그땐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쿠르드족 무장 단체, 시리아 난민, 대지진의 여파와 여행경보 지역이라는 인식. 이곳에 오기 전에는 어떤 불안한 상상들로 가득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먼 겨울 순례길을 혼자 걷는 것, 인도 히말라야의 고산병과 열악한 도로보다도, 사실 가장 두렵고 긴장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버스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는 것과 눈 덮인 돌길이 걷기 너무 미끄러웠다는 겁니다.






저는 실체가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는 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조급함, 어쩐지 혼자일 것만 같은 외로움과 불안함,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의심.


샨르우르파는 누구도 권하지 않은, 또 알려지지 않은 것들로만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마신 아브라함의 성수는 영험했고, 낡은 하맘과 떼밀이는 따스했으며, 저녁 식사의 하레이와 환대가 충만했습니다.


이슬람 신학교 앞에서 바라본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눈, 인류의 근원과 그 아득한 영원 앞에 삶이란 얼마나 짧고 아름다운지. 그 안에서 나의 두려움과 적대감은 얼마나 작았는지. 그 실체 없던 두려움이 조금 더 컸더라면, 나는 이 광경을 평생 안고 살아갈 수 없었을까.


해결할 수 있는 눈앞의 어려움만 고민하며 살자. 마음이 빚는 허상은 이젠 떠올리지 않으려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학생 순례기: 인도 히말라야 티베트 불교의 라다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