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의 끝, 별에 닿는 마을 한레
인도인 친구들과 함께 떠난 한레(ཧན་ལེ་)는 호스텔이나 식당 같은 관광 인프라가 전혀 없는 오지 마을로 티베트 불교 속 작은 공동체가 살아가고 있던 곳입니다.
또 이곳은 인도 전역에서 가장 어두운 밤하늘을 지니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고원으로 오고 싶었던 건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별을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전우주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영위가 한 사람의 고유함을 만들어냅니다. 바꿔 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은 대우주를 자신만의 빛깔로 비추는 소우주입니다. 개인이란 본래 전체를 품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인 것입니다.
池田大作 (Daisaku Ikeda), 『法華経の智慧 (법화경의 지혜)』
우주가 무한한 원자로 이루어져 별과 은하의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듯, 무수한 세포로 구성된 인간 역시 끊임없이 세포가 바뀌고 존재가 변해갑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인 셈입니다.
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 삶은 고유한 궤적을 그립니다. 히말라야 고원의 심원한 밤하늘로 그 무수한 궤적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려보는 것. 그런 광경을 꿈꿨습니다.
자신의 뒤틀린 다리를 조금도 원망하거나 안쓰러워하지 않고 마치 그것이 우리 모두의 것인 양, 그는 두 팔을 하늘과 설산, 높은 태양, 그리고 뛰노는 양들을 향해 활짝 벌리며 외쳤다. "물론, 나는 여기서 행복해! 정말 멋져!"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 신의 산으로 떠난 여행 (Peter Matthiessen)
판공에서 일출을 본 뒤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고도가 높아 잠을 잘 때 특히 숨쉬기가 많이 불편했는데 특히 사미가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식사를 하다 오징어 게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왜 한국 전통 놀이를 다룬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는데 크리슈나와 사미가 말하길 인도에도 다 비슷한 놀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달빛이 0%인 완벽한 신월입니다. 별을 보기 위해 일부러 이 시기에 맞춰 인도 히말라야를 왔건만, 밖에는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라다크의 길은 포장되지 않은 험준한 도로가 많습니다. 한레로 향하던 중 차가 서서히 멈추더니 타이어가 터져버렸습니다. 다행히 예비 타이어가 있어 교체한 뒤 무사히 길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도 히말라야에는 산맥이 장벽이 되어 비구름을 가로막는 탓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광활한 사막이 펼쳐지는 곳도 있습니다. 눈 덮인 봉우리와 모래사막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을 차가운 사막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레장 라 전투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국경 인근에 있었습니다. 5,000명 규모 중국군에 맞서 끝까지 항전한 120명 인도 군인들의 용기를 기리는 곳입니다.
현역 인도 군인들이 직접 해설과 안내를 맡고 계셨습니다. 관람객은 모두 인도인이었고 저 같은 외국인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행한 친구들과 달리 저만 입장할 때 휴대폰을 압수당했습니다.
영상관에선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히말라야 고원의 혹독한 추위 속에 압도적인 병력 차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젊은 군인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한국의 역사 속 희생들도 자연스레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비카스에게 찍혀 버린 기절 하듯 잠든 모습. 중국에 입국한 곳으로 오인되어 외교부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먼 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한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티베트입니다. 레에서도 차로 9시간은 걸리는, 문명과 상당히 동떨어진 곳이며 티베트 문화와 정서가 매우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한레는 창파 유목민 문화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인구 약 300명의 작은 마을로, 2023년까진 외국인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현재는 허가증이 있으면 방문과 숙박도 가능합니다.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과 비슷한 고도에 자리해 있고 전파는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인도 전역에서 가장 어두운 하늘을 지닌 곳으로 은하수가 맨눈으로 뚜렷이 보이며 조디악 라이트 같은 매우 희귀한 천문 현상도 관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광활한 창탕 고원, 모래 언덕, 설산이 어우러진 건조한 대지 위에 흰 벽의 한레 곰파가 언덕 위에 서 있고, 그 아래로 흙집 몇 채와 초록 목초지가 펼쳐졌습니다.
한레에는 식당이나 호스텔 같은 관광 인프라가 없었고 홈스테이에서 집밥처럼 내어주는 라다크 전통 음식이 전부였습니다. 원래 목적지였던 스피티와도 가까워 그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파른 절벽길을 올라가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문대 중 하나인 인도 천문대를 볼 수 있습니다. 한레는 밤하늘을 연구하는 천문학 관측지로도 꼽힙니다.
지금처럼 달빛이 전혀 없는 신월이라면 맨눈으로도 선명한 은하수를 관측할 수 있었겠지만, 연중 300일 이상이 화창한 지역임에도 이 날은 이례적으로 구름이 두텁게 껴있어 하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눈 덮인 설원과 황량한 사막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인도 커플의 모습을 사진 한 장 남겼습니다. 히말라야 오지에서도 사랑의 모습은 여느 곳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레는 외국인에겐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입니다. 친구들과 한레 토착민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습니다. 인도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레장 라처럼 외국인으로는 접하기 어려웠을 순간들도 경험해본 듯 합니다.
흐린 날씨 탓에 별을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잠시 구름 사이로 눈부신 별빛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었습니다. 맑은 밤하늘이었다면 얼마나 경이로웠을까. 눈을 감고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히말라야에 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별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허탈함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레장 라의 인도 군인 이야기, 오지 마을의 커플, 한레의 토착민들. 별대신 수놓인 삶을 보았으니 그거대로 만족합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밤이 매우 추웠습니다. 남인도 출신인 크리슈나는 추위를 특히 잘 타는 듯합니다. 크리슈나가 여분 이불을 가져와 가운데에 말아두어 경계를 만들고 추우면 펼치자는 발상을 했습니다.
크리슈나는 제게 인도의 인상을 물었습니다. 저는 델리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는데, 그가 말하길 델리가 이처럼 혼란스러운 도시가 된 데는 영국이 식민지 시절 강제로 수도를 이전하고 수탈한 영향이 크다고 합니다.
인도의 방대한 인구를 고려하면 성범죄 발생률은 미국이나 유럽이 오히려 높고, 치안 면에서도 미국이 전반적으로 훨씬 더 위험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인도는 메인스트림 국가가 아니라 부정적 면만 유독 강조되어 소비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듯 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식민의 아픔을 안고 있는 인도가 자극적인 미디어의 소비 대상으로, 미개하고 위험하단 편견 속에만 갇혀있는 현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편견은 많은 것을 가로막습니다. 이를 떨쳐내려는 노력이 나에게도 여러 의미의 자유를 줄 방법이라 믿습니다.
나는 타인의 괴로움을 소멸시켜야 하리니 그것이 나의 괴로움과 같은 괴로움인 까닭이다. 나는 타인을 이롭게 해야 하리니 그들이 중생의 본성으로서 나와 같은 본성인 까닭이다. 행복이 나와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사랑받는 것이라면, 나 혼자만을 위하여 행복을 구하는 나에게 무슨 특별함이 있겠는가? - 입보살행론 (Shantideva)
여행을 마치고 레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기에 여럿이 함께한 여행은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조금 지치기도 했습니다.
한레의 라다키 꼬마 아이. 기사님을 포함한 동네 어르신들이 매우 귀여워하셨습니다. 티베트 불교 공동체가 살아가는 히말라야 오지에서도, 세상 어디에서도 아이를 향한 어른들의 눈빛과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어제는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레로 돌아가는 길에는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모리리는 날씨는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특별한 감흥은 없었습니다. 판공과 한레를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러볼 만한 곳 정도인 것 같습니다.
레로 돌아오는 길에는 추마탕이란 온천 마을도 있었습니다. 크리슈나가 자신이 마날리에서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슬로우 모션으로 찍으면 예쁘게 나온다고 알려줬습니다. 한 침대에서 잠을 자며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먼 여행을 마치고 레의 호스텔로 돌아왔습니다. 식당에서 쓰는 주방이 있었는데 양해를 구하고 인도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냄비를 올려 라면을 끓였습니다. 낯설고 어려웠던 라다크의 생활도 점점 익숙해집니다.
호스텔 룸에서 벨기에에서 온 여행자 사이먼을 만났습니다. 까무잡잡한 인도인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하얀 친구를 보니 괜히 신기했습니다. 사이먼도 여행 중에 한국인은 처음 만난다며 신기해했습니다.
사이먼은 데이터 분석가로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진정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벨기에서 인도로 무려 히치하이킹과 도보만으로 도전하는 여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꿈꾸던 여행 비디오그래퍼로 활동하며 인스타 팔로워도 5만 명으로 제법 잘 되고 있는 듯 합니다.
구름들이 내 삶 속으로 떠들어온다. 이제 더 이상 비를 싣거나 폭풍을 예고하려 함이 아니라 내 석양의 하늘에 색을 더하려 함일세. - 길 잃은 새 (Rabindranath Tagore)
하루 정도 혼자 휴식을 취하고 싶어 호스텔이 아닌 개인실을 주는 곳으로 숙소를 옮기러 갔습니다.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배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도로 전체가 물에 잠기거나 담벼락이 무너진 곳들도 있었습니다. 강한 폭우도 아니었는데 비에 취약한 인프라 탓에 곳곳에 피해가 이어졌습니다.
52년 만의 라다크 기록적인 폭우라고 합니다.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통제되고 항공편도 최소 5일간은 전면 결항되었습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란 당연히 여겼던 기대들도 한순간에 불가능해졌습니다.
비 속을 헤치며 힘겹게 걸어가던 중 한 주민 분이 감사하게도 차로 숙소 앞까지 태워다 주셨습니다.
첫날 레에서 연락만 나눈 한국 분과도 어쩌다 만나게 되었는데 현지 기사님과 누브라 밸리에서 갑작스러운 폭설에 곤욕을 겪다가 어제 긴급히 돌아왔다 합니다.
한국 분은 미연님이라는 이름으로 40대 한국어 강사셨습니다. 직업 특성상 여유가 많아 수많은 나라를 여행해오셨다고 합니다. 특히 남자 친구 분은 1년의 절반을 넘게 해외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합니다.
현지 기사님의 이름은 남걀이었는데 라다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아버지 역시 기사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직업인 것 같습니다.
라다크 인들은 동양인과 외모가 비슷해 피부가 까맣고 투박한 한국인들은 종종 라다크인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합니다. 라다크는 양고기가 저렴하면서도 맛이 좋다 하는데 남걀이 골라준 메뉴는 모두 훌륭했습니다
남걀 기사님은 레 궁전까지 차로 데려다주셨지만, 내부는 어째서인지 잠겨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마을 주민들이 한창 비로 인한 복구 작업 중이었습니다.
저녁엔 메인 바자 광장에서 다시 만나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숙소에 보조 배터리를 챙기러 간 사이에 갑자기 모든 전파마저 끊겨버렸습니다. 결국 라다크에서 그분과는 다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다 여긴 연결들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세운 계획들도 모두 순식간에 무의미해지던 순간들. 문자 한 통이면 해결될 일도 여기서는 이별이 되어버렸습니다.
통제 가능하다 믿었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불안정한 균형 위에 서 있었는지. 도식적이고 단조로운 현대의 일상과 달리, 세상이란 원래 이렇게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미연님은 제가 이후 협곡 트레킹을 가있는 동안 한국에 잘 귀국하셨다고 합니다.
하필 그날 개인실로 숙소를 옮겼는데 전파는 갑자기 두절되고 날씨까지 좋지 않아 한적함보단 외로움이 더 컸습니다. 빨래를 찾으러 이전 호스텔로 돌아갔는데 문 앞에서 운좋게도 크리슈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슈나의 방엔 하이델과 비행기 결항으로 발이 묶인 독일인 여행자가 한 명 머물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검색 몇 번으로 찾아볼 정보들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묻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라다크에서의 여러 아날로그 여행담을 들었습니다.
늘 뭐든 해결해주던 핸드폰도 전혀 쓸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구했습니다. 별 의미 없는 헛소리들도 오갔지만 힘들었던 와중에 그 분위기가 웃기고 즐거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 결항으로 다시 돌아온 비카스와도 재회했습니다. 호스텔 말로는 최악의 경우 전파가 돌아오는 데 일주일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라다크의 전기는 태양열에 거의 의존하기 때문에 저녁에는 따뜻한 물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비가 닥치자 인터넷과 전화, 문자뿐 아니라 ATM과 결제 시스템까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가게가 갑자기 문을 닫아버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씻지도 못한 채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전파만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는 현금이 다 떨어져 당장 숙박비도 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여행자들과 수소문을 했는데 레 전체에서 딱 한 군데 작동하는 ATM이 있단 소문이 있었습니다. 절망적이게도 제 카드로는 현금이 인출 되지 않았습니다.
라다크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단 4일. 돌아가는 비행기마저도 예매하지 못한 상황이라 몹시 초조하고 답답했습니다. 좌절하며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정말 극적으로 핸드폰에 데이터가 다시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기쁨을 감출 수 없어 광장에 있던 사이먼과 일행들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다들 처음엔 믿지 못하겠단 표정이었지만, 곧 환호성을 지르며 다같이 함께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말그대로 위 아더 월드입니다.
하지만 폭우로 예상치 못한 시간을 허비한 탓에 다음 계획이었던 마르카 밸리는 남은 일정 안에 다녀올 수 없는 곳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쯤 되니 일이 계획대로 될 거란 생각은 아예 접었고 미련도 딱히 없었습니다.
대신 어제 독일인 여행자가 추천해준 샴이라는 곳에 혼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덜 알려져있지만 라다크의 토착 마을 일상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샴 밸리로 가는 픽업을 예약하고 호스텔 돌아오는 길, 바이크를 타고 있던 크리슈나를 또 우연히 만났습니다. 크리슈나는 함께 산티 스투파에 가자 했고,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탔습니다.
산티 스투파는 일본인 승려와 라다크 불교도들이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세웠다는 불교 기념탑으로 레 근교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상에선 히말라야 산맥과 레 시내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승려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명상을 하는 작은 기도실이 산티 스투파 근처에 있었습니다. 크리슈나와 저는 그곳에 나란히 앉아 명상하며 해가 지길 기다렸습니다.
이틀 동안 제대로 할 수 있는건 없었지만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전파에 모두가 광장에서 뛸 듯이 환호하던 순간. 우연히 만난 크리슈나와 빗줄기를 가르며 바이크로 언덕을 오르고 정상에서 함께 본 레 시내의 야경.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난 그런 순간들은 계획 속에 있던 여행보다 진솔했습니다. 낯선 이들과 극적이었던 순간들도 관광보다 더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호스텔로 돌아오고 나선 샴의 협곡으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한 골목의 상점에서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귀한 파슈미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파슈미나는 고지대에 사는 티베트 영양의 겨울 솜털로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희소한 섬유 중 하나입니다. 진품 테스트를 부탁드렸고 어머니께 드릴 선물로 한 장 구매했습니다. 이역만리에서 구한 기념품입니다.
호스텔에는 크리슈나와 하이델, 이스라엘에서 온 여행자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인도에선 바겐이 필수라고 조언해 줬습니다. 이런 배경을 계속 혼자 헤쳐나가니 경계심이 생기고 더 억세지는 것 같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이 쌓인 삶을, 그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건 결국 날 위한 겁니다. 완결된 서사에선 모든 게 필연이었기에, 어느 층위에 있든 내 삶을 존중할 마음만 있다면 고난도 더 이상 괴로움이 아니게 됩니다.
퉁명스러운 사회가 혹은 그런 사회에 길들여진 스스로가 자신을 폄하하려 할 때도, 나는 그저 당신 그 자체의 서사와 가치를 존중할 수 있길 바랍니다. 소문이나 배경에 덮이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여행의 장식적 순간보다 깊이를 느껴볼 수 있던 그런 순간들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히말라야의 오지에서 나는 이미 밤하늘보다 아름다운 별들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