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데스 (Swades): 인도 여행이 남긴 에필로그

by 재현


인도 여행의 마지막 밤. 머물던 호스텔 루프탑에서 인도 노래들이 흘러나오는 버스킹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보던 호스텔의 인도인 친구는 무대에서 흐르던 노래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스와데스(Swades)의 OST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노래의 제목은 “Yun Hi Chala Chal Rahi“

यूँ ही चला चल राही (Yun Hi Chala Chal Rahi) yun hi: 그냥 그렇게 chala chal: 계속 가라 raahi: 나그네/길손


고민을 털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표현이 반복되며 목적지에 집착하기보다 여정 자체를 사랑하라, 계산보다 현재의 바람을 믿으라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인도에서 경험하며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담아낸 듯한 가사와 주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Swades: We the people (2004)



2004년에 개봉한 인도 영화 스와데스는 NASA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공학자 모한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모한은 어린 시절 인도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미국에 남아 커리어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유년 시절 자신을 돌봐주었던 유모 카베리와는 바쁜 일상에 치여 연락이 끊긴 채 소홀히 지냈고 인도로 돌아가 그녀를 미국으로 모셔오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휴가를 내어 인도로 간 모한은 델리의 양로원에서 차베리가 차란푸르라는 작은 마을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Yun Hi Chala Chal Rahi는 모한이 차란푸르로 향하던 길에 흘러나오는 음악입니다.


세상은 아름답고 다채롭기에 삶을 여행처럼 받아들이고 두려움이나 집착 없이 앞으로 나아가라. 이는 훗날 모한이 내리게 될 결정에 대한 복선처럼 다가옵니다.



모한은 현지의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미네랄 워터를 챙겨 다니며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침상이 아닌 타고 온 카라반에서 생활합니다. 마을의 아이들이나 주민들과는 친근하고 격의 없이 어울리지만 동시에 외부인으로서의 미묘한 거리감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모한은 기술의 결핍, 교육 불평등, 카스트의 잔재 등 마을의 여러 문제들과 마주합니다. 카베리를 미국으로 모시기 위해 머무르던 그는, 소꿉친구이자 마을의 선생님인 기타리가 겪는 어려움을 함께 도와주려 나섭니다.


학교는 학생 수가 부족해 멀고 좁은 곳으로 이전될 위기였고 모한은 사람들을 설득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 하지만 계층 차별과 가난으로 인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인도 영화는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정도로 중간중간 노래와 춤이 삽입되곤 합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인도의 고전 연극과 무용을 계승한 표현으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Yeh Tara Woh Tara는 마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도중 전기가 끊겨 아이들이 실망하고 떠나려 할 때 모한이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부르는 이야기 입니다. 여러 별이 모여 밤하늘을 밝히고 별자리를 만들 듯 함께할 때 비로소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비유가 담겨 있습니다.


모한과 아이들이 밤하늘 아래에 춤을 추며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머릿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그게 인도 영화 나름의 매력인 듯 합니다.



모한은 이후 본래 방직 장인이었지만 산업 발달로 생계를 이어가지 못해 농사로 전향한 소작농을 만납니다. 그러나 마을의 전통과 카스트 규범은 그를 방직공으로만 묶어두었고 차별 속에서 정당한 대가조차 받지 못한 채 가족을 부양하기도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견디지 못해 도시로 떠난 사람들은 더 비참하고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합니다.


제가 델리에 있을 때 왜 그렇게 많은 빈민들이 대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는지 의문이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안에 담긴 복잡한 삶의 무게와 구조적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모한은 마을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늘 마시던 미네랄 워터가 아닌 아이가 파는 물을 사 마십니다. 인도 사회의 현실과 뿌리에 대한 모한의 인식 변화를 상징하는 동시에 교육의 기회를 잃은 채 기차에서 물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아이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열린 시야를 가진 모한은 전통에 얽매인 악습을 떨쳐내고 공동체가 더 나은 삶을 꾸려 나가도록 주민들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쌓은 공학 지식을 바탕으로 더 이상 외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을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수력 발전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마을 주민들은 함께 열심히 협력해 만든 발전기가 성공적으로 가동되자 큰 감동을 받습니다.



모한은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공동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지만 NASA에서 맡은 프로젝트와 커리어가 남아 있었고 미국의 삶을 단번에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기타리의 만류에도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모한은 고향의 향수와 현실을 잊지 못해 인도로 돌아오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스와데스는 인도의 여러 사회적 문제와 전통적 악습을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단순히 전통의 부정이나 서구적 가치의 우월성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기타리가 자국의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가르치면서도 변화와 개선을 추구하는 모습, 그리고 서구적 가치관과 기술을 지닌 모한을 통해 영화는 인도의 정체성을 지키되 공동체적 노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스와데스는 인도 내에서는 고전 명작으로 평가받지만 인도 내부의 사회 고발과 농촌 개발, 그리고 해외로 떠난 인재들의 귀향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 타국에서의 인지도는 높지 않은 작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방대한 인구와 식민 지배 역사, 복잡한 사회 구조를 지닌 인도를 이해하거나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채 무분별한 위험과 혐오로 소비하곤 합니다. 서구적인 생활과 사고방식을 지닌 모한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시선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를 보는 것은 다른 세상에 내재된 복잡성을 공감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해외에 나가 넓은 세상을 보고 열린 시야를 얻고 싶단 바람이 늘 있었지만 정작 내가 살고 내려온 뿌리와 본질적인 삶의 방향을 깊게 돌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불교적 마음가짐과 인도만의 특유의 분위기와 문화, 그리고 여행의 연장선에 있던 이 영화는 대학 마지막 학기를 맞은 제게 마침 꼭 필요하던 교훈을 전해줍니다.


저는 직관의 힘을 믿습니다. 살아오며 쌓인 수많은 순간과 경험은 의식이 포착하지 못한 답을 품고 있고 그것이 직관으로서 우리를 이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यूँ ही चला चल राही (Yun Hi Chala Chal Rahi),

오직 현재의 바람을 믿고 지금 순간을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이 남긴 가장 값진 선물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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