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길에 펼쳐진 오색 신앙, 샴의 협곡
우리의 일상은 희망으로 살아 숨 쉬지만 미래에 대한 보장은 없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우리가 여기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순전히 희망을 바탕으로 그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최선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시간의 올바른 활용이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 다른 중생들을 섬기십시오.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해를 끼치진 마십시오. 이것이 제 철학의 전체 기반이라 생각합니다.
삶이 너무 복잡해지고 압도당한다고 느낄 때 한 걸음 물러서서 우리의 전체적인 목적과 목표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정체감과 혼란에 직면했을 때 한 시간, 한 오후, 혹은 며칠이라도 시간을 내어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지 성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을 적절한 맥락 안에 다시 놓아주고 새로운 관점을 허락하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볼 수 있게 해줍니다.
Dalai Lama XIV.& Howard C. Cutler, M.D. 『The Art of Happiness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티베트 불교의 기도 깃발, 룽따(རླུང་རྟ་)는 바람에 흔들리며 기도와 소망을 실어 보냅니다. 여행의 마지막은 라다크 서쪽, 샴의 협곡(ཤམ་ལུང་པ།)을 홀로 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사람이 사는 가장 높은 고원 중 하나인 라다크(ལ་དྭགས). 샴의 협곡은 전파조차 닿지 않는 히말라야 외곽에 낯선 민족의 오랜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예상과 기대를 벗어나버린 출발. 끊임없이 혼란과 불확실함만 가득했던 여행. 마지막 목적지마저 중간에 계획했던 마르카가 아닌 샴의 협곡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제와 조급함을 놓아주니 보였습니다. 예상 밖의 순간들이 주는 울림. 그것이 역설적으로 미래의 어려움 앞에서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합니다.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은 결국 잘 되었습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포용하고 상황에 집착하지 말자. 고원의 불교 순례가 내게 남긴 마지막 의미였습니다.
길이 북동쪽으로 굽자 몽환적인 사암층은 사라지고 산비탈은 검은 화강암으로 변한다. 능선은 불안정한 돌기와 성벽처럼 갈라지고, 빛과 그림자가 갈라놓은 갈비뼈 같은 주름이 드러난다. 마지막 바위들은 계곡으로 흘러내리며 순례자들이 사랑하는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닮는다. - To a Mountain in Tibet (Colin Thubron)
가만 있어도 숨이 벅찬 히말라야 고산에서의 생애 첫 트레킹. 저는 홀로 차를 빌려 샴으로 향했습니다.
인더스 강과 지스카르 강이 만나는 협곡. 두 강이 합류하여 만들어낸 물줄기를 따라 토착 라다크 인들은 대대로 가파른 협곡 사이에 터전을 일구며 살아왔습니다.
리키르라는 마을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려 광활하고 고요한 협곡을 향해 발을 내디뎠습니다. 붉은 암벽이 양옆으로 솟아오르고 그 사이 흐르는 청록빛 인더스 강.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시간 앞에서 가슴이 벅차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이전시에선 전파도 터지지 않는 곳인데 홀로 가면 위험하다며 가이드를 고용하게 겁을 줬지만, 막상 와보니 길도 잘 되어있고 전혀 위험하진 않았습니다.
구름에 덮인 장엄한 능선과 바람에 나부끼는 다섯 빛깔의 기도 깃발. 전파도 닿지 않는 히말라야 샴 밸리의 고원 위에는 저 말고는 아무도 없이 한적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티베트 불교의 행(行)을 혼자 걸어내는 순간은 여행을 마무리하기 가장 어울리는 시간입니다.
샴의 인더스 지류를 따라 걷다 보면 이따금씩 강가 주변에 빨래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돌담으로 쌓아 올린 작은 밭과 보리를 말리는 지붕. 히말라야의 가혹한 자연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져 온 삶의 흔적들입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 신발을 벗어 건너편으로 던지고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렸습니다. 발을 담그는 순간 빙하에서 녹아내린 인더스 물살의 차가움이 스몄습니다. 물살이 거세어 균형을 잡기 위해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강을 건넌 뒤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멀리서 울타리를 고치고 계시던 토착민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쪽엔 길이 없다며 울타리 사이 좁은 틈으로 넘어가게 도와주셨습니다.
목적지인 양탕으로 가는 방향을 손짓으로 일러주시더니 문득 걸음을 멈추고 당신의 집을 가리키며, 잠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따뜻하게 초대해 주셨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목마다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땅에 웅크려 앉아 야채를 캐내셨습니다. 이 외딴 협곡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채소를 기르고 자급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할머니는 캐낸 푸른 채소마다 라다크어로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구부정한 등과 흙을 털어내는 손놀림. 지름길이라며 할머니는 돌담을 넘고 울타리를 비집고 들어가셨는데, 배낭을 메긴 했지만 젊은 저도 건너기 쉽지 않은 길을 거침없이 넘어 가셨습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상 대대로 이 마을에서 살아왔고, 할머니께서도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의 신자셨습니다. 건너편 방에는 촛불이 켜진 불단이 놓여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혼자 먼 길을 걸어온 낯선 이방인에게 따뜻한 짜이를 내어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느새 부엌으로 가시더니 계란프라이와 보리가루로 부친 부침개로 점심상까지 차려주셨습니다.
마을에는 할머니의 남매를 포함해 단 세 가구만이 살고 있고 전체 인구는 고작 10명 남짓이라고 합니다. 광활한 히말라야 협곡 속에서 그 향토적인 정겨움과 한적함은 샴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었습니다.
시골 할머니 댁에 온 듯한 정겨움과 따뜻함. 한국에서 4,000km는 떨어진 히말라야의 외딴 마을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게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저는 원래 어수선한 관광지보단 향토적이고 깊은 분위기를 좋아해 스피티 밸리를 가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이 따스한 분위기가 좋아 원하던 곳을 가지 못한 아쉬움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 있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할머니는 직접 마을 끝까지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마을을 나서자 흙과 자갈이 뒤섞인 사면 언덕이 펼쳐졌습니다. 붉은 흙과 회색 바위가 켜켜이 쌓인 지층과 그 위로 드문드문 돋아난 초록빛 풀들.
언덕을 오르는 길목에선 도마뱀들이 바위 틈에서 튀어나와 재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풀을 뜯으러 올라온 소들도 느릿느릿 돌아다닙니다. 외계 행성처럼 척박하면서도 생기가 있는, 독특하고 이질적인 분위기입니다.
언덕을 오르던 중 이스라엘에서 온 여행자 무리를 만났습니다. 모두 저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너무 반갑게 맞아 주어 함께 앉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들은 인도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 사이라고 하며 무리 중에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라가 작아서 건너 건너면 거의 다 아는 사람이라며 웃었습니다.
저는 샴이 상점 하나 없을 정도로 외딴 곳일 줄은 미처 몰라 물을 챙겨오지 못했고, 그게 내내 걱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친구들은 제가 물병이 없는 걸 보더니 주저 없이 귀한 물과 팝콘을 적선해 줬습니다.
낯선 곳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놓일 때에도, 도와줄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또 깨닫습니다.
히말라야에서 패스(pass)는 계곡과 계곡을 잇는 고갯길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정상마다 걸린 룽따(Lungta)는 ‘바람의 말’이라는 뜻으로, 바람에 실려 기도문을 허공에 퍼뜨린다는 티베트 불교의 상징입니다.
오색 깃발에는 각각 하늘(청), 구름(백), 불(적), 물(녹), 땅(황)을 상징하고 깃발 위 새겨진 만트라와 경문이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우주에 울려 퍼진다고 믿습니다.
패스를 넘는다는 것은 깃발에 담긴 기도문을 세상에 퍼뜨려 모든 중생에게 복을 전하고 고개를 오르며 쌓인 번뇌와 나쁜 업(業)을 씻어내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풍경이 좋은 곳에서 이스라엘 친구들을 다시 만나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쉽게도 전파가 터지지 않고 사진을 찍은 친구가 아이폰이 아니라 에어드롭으로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핸드폰으로 개인 사진만 한 장 남겼습니다.
이스라엘 친구들은 더 멀리 떨어진 마을로 향했고, 저는 방향을 틀어 오늘 머물 양탕으로 내려갔습니다.
양탕은 설산이 올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자리한 작은 마을입니다. 마을 전체가 가파른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듯했고, 식당이나 상점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전파도 닿지 않아 휴대폰은 무용지물이고,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가 마을을 감싸고 있습니다.
홈스테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인 아주머니가 따뜻한 차와 쿠키를 내어주셨습니다. 저녁과 아침 식사, 점심 도시락 포장, 그리고 개인실 숙박까지 모두 합쳐 1,500루피 한화로 약 24,000원 정도였습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가이드를 동반한 이스라엘 중년 다섯 분과 아들과 어머니로 보이는 모자 일행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샴에서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이스라엘 출신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라다크 전통식으로 제공되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제까지 내리던 폭우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나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만났습니다. 양탕의 밤하늘엔 쏟아질 듯한 별빛과 선명한 은하수가 펼쳐졌습니다.
해발 3,500미터, 전기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올려다본 하늘은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은하수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뚜렷한 띠처럼 흘렀고 별들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무수히 많이 박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된 것마냥 해벌쭉 웃으며 멍하니 별빛 가득한 하늘만 올려다봤습니다. 핸드폰 카메라로는 그 선명함도, 그 감동도 전혀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신성함과 일상이 하나로 합쳐지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방식에 매혹되었다. ..오랜 순간 동안 모든 일이 나의 내면에서도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풍경만큼 넓어지고 공기처럼 가벼워지고 침묵처럼 고요해진 나의 마음 안에서. - 라다크에서 찾은 부처 (Andrew Harvey)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자 눈부신 햇살 속 히말라야 설산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홈스테이 할머니가 준비해 주신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챙겼습니다.
강줄기에는 다리가 있었지만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어제 내린 폭우 때문인지 기둥과 판자들이 물살에 휩쓸려 뒤엉켜 있었습니다.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강가를 헤매던 중 쓰러진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습니다.
나무에 몸을 의지하며 조심스레 강을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여성 여행자 둘이 같은 강줄기를 헤매다가 제가 건너는 모습을 보고 똑같이 따라서 건너왔습니다. 이스라엘에서부터 함께 여행해 온 친구들이라고 합니다.
언덕을 넘는데 핸드폰에서 갑자기 밀려 있던 메일과 메시지 알림이 쏟아졌습니다. 샴 전체에서 이 3미터 남짓한 공간에 유일하게 전파가 잡혔습니다.
학부연구생을 하던 연구실의 교수님에게도 연락이 와 있어 잠시 통화를 했는데, 현실로 돌아온 듯한 이질감이 스쳤습니다. 점심을 꺼내 먹으며 숨을 골랐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헤미스 슉파찬. 슉파찬이라는 이름은 티베트어로 작은 나무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곳은 라다크에서 보기 드물게 살구나무와 버드나무 숲이 있는 마을입니다. 흙벽돌과 나무로 지은 라다크 가옥들이 좁은 돌길을 따라 미로처럼 이어집니다.
어제 양탕에서 만난 모녀를 다시 만났는데 이분들 역시 이스라엘 출신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스라엘에서는 3년간 군 복무를 마친 뒤 1년 정도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 하나의 문화라고 합니다. 이를 해방 여행이라 부르며 인도가 인기가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머물 집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양탕에서 함께 머물렀던 가이드 분들이 다가와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마을 입구 근처 숙소들은 시설은 좋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 저렴한 곳들이 있다 했습니다.
제가 머문 곳은 밀밭과 해바라기가 가득한 정원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현금이 500루피 부족했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흔쾌히 머무는 걸 허락해 주셨습니다.
헤미스 슉파찬은 척박한 히말라야 협곡 한가운데 있음에도 주니퍼 숲과 황금빛 밀밭, 알록달록한 꽃들, 평온한 농장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해발 3,600m의 고산지대에서 이토록 풍요로운 녹지를 마주한다는 것. 그 묘한 이질감이 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척박한 땅 위에 펼쳐진 작은 오아시스 같았습니다.
노부부와 사잔티라는 이름의 14살 소녀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머무는 여행객은 오직 저 뿐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차와 비스킷을 주셨고 점심 식사, 그리고 그리스 요거트까지. 푸짐한 식고문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잔티는 라다크식 짜이와 밀크티, 빵을 내왔고, 심지어 나무에 직접 올라가 살구를 따와 건네주며 쉴 새 없이 먹을 것을 가져다 줬습니다.
사잔티는 틱톡을 한다며 제게 동영상을 함께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여자친구는 있는지, 학생인지 등 이런저런 질문을 건넸습니다. 영어도 서툴고 한국이라는 나라조차 알지 못했지만, 낯선 여행자에게 순수한 호기심을 보이는 모습이 참 순박해 보였습니다.
사잔티는 형제자매가 열 명이 넘고 델리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 혼잡하고 피폐한 델리가 아닌 이렇게 평화로운 히말라야 마을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무려 와이파이가 있고 따뜻한 물까지 나왔습니다. 덕분에 전파는 안 터지지만 인터넷은 쓸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 전까지 마을을 거닐다가 가장 눈에 띄던 미륵불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랐습니다. 티베트 불교 전통에서 미륵불은 미래에 중생을 구원할 부처로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불상은 언덕 꼭대기에 설산을 배경으로 고요하게 서 있습니다. 상쾌한 바람이 불고 발아래로는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불상 앞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이 얼마나 평화로웠는지 모릅니다.
사잔티는 연로한 부부를 대신해 저녁 식사도 준비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능숙한 모습이 참 대견했습니다.
저게 반죽을 만드는 걸 도와달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서툴러 사잔티에 비해 너무 엉성해서 웃겼지만 곧 익숙해져 제법 모양새를 갖춘 반죽들을 만들었습니다.
음식 이름은 라다크식 야채 파스타. 생각보다 맛있어서 두 그릇을 먹었습니다. 사잔티에게 머리띠라도 선물해주고 싶었지만 작은 상점도 하나 없어 아쉬웠습니다.
창밖에는 어제처럼 수많은 별들이 수놓아져 있었고 방 안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별빛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머나먼 외딴집에 머무는 여행자는 오직 혼자뿐이었지만 익숙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어느 나라든, 사람 사는 세상이나 본질은 결국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도란 목표를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발견이란 자유로워지는 것, 열려 있는 것, 목표가 없는 것입니다. ..지혜는 발견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고, 놀라운 일을 해낼 수는 있지만, 전수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 싯다르타 (Herman Hesse)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레로 돌아가는 날이자 라다크에서 보내는 마지막입니다.
양탕 홈스테이에서 함께 머물렀던 가이드분과 이스라엘 중년 분들을 또 만났습니다. 물이 필요하냐고도 물어봐주시고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샴의 마지막 종착지인 팅모스강으로 향하는 길은 가장 험준하고 광활한 협곡을 따라 걸었습니다. 차량 진입은 불가능한 곳으로, 좁고 희미한 오솔길만이 가파른 암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습니다.
발아래로 수백 미터 깊이의 협곡이 아찔하게 펼쳐졌고 길을 잃기도 쉬운 지형이었습니다. 길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돌무더기 사이로 방향을 가늠해야 했는데, 계속 마주치던 가이드분이 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설 때마다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이전 폭우로 많은 길이 유실되어 있었습니다. 방향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고 히말라야 한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방향도 모른 채 어떻게 저 높은 절벽을 올라가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 멀리 위쪽에서 또 휘파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서 일행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춘 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가파른 언덕을 직접 내려오시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길인 줄 알고 오르던 절벽에 떨어뜨린 옷도 찾아 주시며, 올바른 길로 안내해주고 가셨습니다.
산맥을 따라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아주 비좁았고 바로 옆은 아찔할 정도로 가팔랐습니다. 투박한 소리가 들리더니 맞은편 언덕에선 낙석이 쏟아졌습니다.
긴장감과 함께 이를 악물고 힘겹게 정상까지 빠르게 올라갔는데, 저를 안내해 줬던 가이드 분과 이스라엘 분들이 “Congratulation!” 하며 맞아주셨습니다.
이스라엘 할아버지 한 분이 에너지바를 주셨습니다. 짧은 순간 속에도 계속해서 도움과 적선을 받습니다.
이후론 내리막과 마을을 지나는 평탄한 길이었습니다. 제게 도움을 줬던 이스라엘 분들과 가이드 분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팅모스강으로 이동해 레로 돌아가는 차량을 타고 여정을 마무리하며 복귀했습니다.
복귀한 레에서 기념품을 사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고산 지대의 암석에서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천연수지로 남자에게 그렇게 좋다는 실라짓(Shilajit)과 카와(Kahwa)라는 전통 허브차를 샀습니다.
제가 떠나던 마지막 밤, 호스텔의 루프탑에서는 공교롭게도 버스킹 공연이 열렸습니다. 방에 있던 하이델에게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연락했고 그렇게 마지막 밤을 음악과 알코올에 취하며 보냈습니다
하이델, 라다크 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 뭄바이에서 막 도착한 프라쥬, 셋이 루프탑에서 버스킹 공연을 들었습니다. 둘은 금주였기에 논알코올 맥주를 마셨고 저는 창(chang)이라는 보리술로 기분 좋게 취했습니다.
하이델이 공연 중간에 흘러나온 인도 노래들 중 하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인도 영화 스와데스(Swades)의 OST, 또 다른 곡 Emptiness는 한국 음악을 인도에서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설명해 줬습니다.
인도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그들만의 문화와 분위기를 느끼며 취해있던 게 좋았습니다.
샴에서 물과 팝콘을 챙겨주었던 이스라엘 그룹 중에는 저와 같은 시간에 비행기를 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수학과 대학원생인 로이라는 이름의 이스라엘인으로 다음 날 델리까지 함께 동행했습니다.
델리에는 유대인 여행자를 위한 쉼터이자 커뮤니티인 차바드 하우스(Chabad House)란 곳이 있다고 합니다.로이가 그곳에 짐을 두고 함께 델리 투어를 가자 했지만 숙취로 인해 너무 피곤해서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여행자들만의 문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을텐데, 지금 돌이켜보니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편 크리슈나는 제가 떠나는 마지막 날 바이크 여행을 가 있어 만나지 못했지만, 문자로 작별을 나누며 언젠가 남인도를 방문하겠단 약속을 전했습니다.
대학 고학년, 혼란스러움과 무엇 하나 계획대로 되지 않던 인도 히말라야의 여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내가 마음 깊이 바라는 진심은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을 살아온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보편적이지도 않아 언제나 어렵고 또 불확실합니다.
동창과 나빈의 만남은 컵 모양에 갇혀 있을 때 그 틀을 깨고 물처럼 흐르게 해준 바가지로, 어떤 인연이든 온전히 받아들이며 흘러가는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계획에도 없던 라다크에서 마주한 청명한 공기와 신비로운 하늘 호수 판공의 경이로움은, 제게 불확실함 속에서의 삶의 아름다움을 믿게 해줍니다.
인도 친구들과 향했던 티베트 인근 오지 마을, 폭우로 인해 당연한 것들조차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순간들은 내가 삶의 복잡성을 더 존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샴의 협곡에서 만난 토착민들의 소박한 삶과 그들이 베풀었던 따뜻함 속에, 그 풍요로움을 떠올리며 더이상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길 다짐해 봅니다.
숨조차 가빠지는 고도의 히말라야가 만들어준 지혜(प्रज्ञा, 반야)가 앞으로 내가 걸어갈 모든 길에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