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의 산, 자발 무사에서 일출을 맞다
곧 다사다난했던 대학생을 졸업합니다. 사막 한가운데의 자발 무사로 떠나, 새벽의 태양을 맞는 여행으로 내 나름의 내면적 완결을 만들고 싶었나 봅니다.
일출로 지평선만 얇게 붉을 때 금빛이 번지고, 마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걸 보는 듯 가슴이 뛰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워 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Nâzım Hikmet 『Gerçek Yolculuğun Hammaddesi (진정한 여행)』
“무사의 이야기가 네게 전해지지 않았느냐?
그가 불을 보고 가족에게 말했노라: ‘여기 머물라, 내가 불을 보았으니 횃불을 가져오거나, 불 곁에서 인도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쿠란 20:9–13
불타는 떨기나무속 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곳. 새벽 늦게 도착했을 때 쿠란의 자발 무사는 산이 어떤 형상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새까만 어둠이었습니다.
샴엘셰이크 시내에서 봉고차를 타고 출발했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중년과 노년분들에게 이십 대에 홀로 찾아온 저는 어김없이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옆자리 아저씨가 본인을 스웨덴에서 일하고 있는 독일인이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앞자리 분이 화들짝 자신은 스웨덴 사람인데 독일에서 일한다고 웃으셨습니다. 자발 무사가 있는 시나이 내륙은 대한민국 외교부에선 방문을 권고하지 않는 지역이기에, 그런 농담들에도 밤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는 여전히 긴장이 고였습니다.
새벽의 돌산은 사막임에도 추웠습니다.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고, 그 아래 입김을 뿜는 낙타들과 돌건물들이 서 있습니다. 베두인 가이드의 발걸음을 따라 어둠 속 산길로 나아갔습니다.
목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찢어지는 듯한 낙타의 울음소리와 발소리만 조용히 감돕니다. 베두인들이 짧게 아랍어로 말하는데, 달래는 것인지 명령하는 건지 구분되지 않는 그런 소리들이 고요한 길을 채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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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을 참으며 밤을 새우는 탓에 그 광경들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따금 바위에 손을 짚으면, 돌이 품은 밤의 냉기가 올라와 잠든 감각을 깨워줬습니다.
산을 올라가는 도중에는 베두인 차, 음료, 스카프 등을 파는 오두막들이 있습니다. 담요를 빌려 산을 오르는 중간중간 내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자발 무사는 단독으로 오르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현지 베두인 가이드와 함께 올라야 하며, 가이드 없이는 입구에서부터 막혀버립니다. 저희 그룹은 여덟 명이었고, ‘로마’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그룹에서 유일하게 홀로 일행 없이 온 제게 베두인 가이드 아저씨는 산을 오르는 동안 말동무가 되어주셨습니다. 나이를 맞혀보라 하시기에 당황하다가 54살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저씨는 평생 동안 이 자발 무사 인근의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셨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제게 ‘코리안’이란 애칭을 붙여주셨습니다. 오두막에서 쉬다가 다시 출발할 때나, 제가 일행에서 멀어질 때마다 헤이, 코리안. 웰 이즈 코리안하며 가장 먼저 저를 찾아주시는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엘리야의 샘이라 불리는 마지막 구간부턴 바위를 깎아 만든 750개의 참회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낙타는 진입할 수 없어 지친 등반객들은 추가금을 내고 베두인 가이드의 등에 업혀 정상으로 향하곤 합니다.
고생 끝에 마침내 자발 무사의 정상에 닿았습니다. 사방은 여전히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딱히 별다른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출까진 시간이 남아, 오두막 안에서 담요를 덮고 잠시 잠을 청했습니다.
태양과 그 찬란한 아침 빛에 걸어 맹세하노니
- 쿠란 91장 아쉬-샴스(태양)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에 옆 아저씨의 손이 어깨를 건드렸습니다. 일출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추위와 피로가 뒤엉킨 채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습니다.
해가 밝아오는 순간, 어둠이 걷히며 처음 윤곽이 생기고, 밤새 밟았던 길들이 마침내 드러났습니다. 정상에서 처음으로 그 모든 장면이 한꺼번에 펼쳐졌습니다.
밤새 어둠 속을 지나왔던 몸이 순식간에 전율했습니다. 빛이 번지는 만큼 능선이 솟고, 골짜기가 열리고, 지평선은 끝없이 밀려납니다. 세상이 열리는 걸 보는 듯 심장은 터질 듯 뛰고 눈시울도 붉어졌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과 줄을 지어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봉우리에 올라서자, 산 너머로 멀리 잔잔한 이른 아침의 홍해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해가 낮을 땐 능선이 선명하고 그림자가 깊었지만, 해가 오를수록 자발 무사의 풍경도 점차 부드러워졌습니다. 빛이 골짜기를 채우고 온도도 더 따뜻해집니다.
어둠 속을 오르고, 때로는 힘겹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의 4년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딘지 채 발밑만 보며 걷었는데, 지나온 길의 전경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차분하게 산이 밝아오는 광경을 오래도록 지켜봤습니다.
하산을 시작하고 올라갈 때의 그 무겁고 조심스럽던 발이 아닌, 들뜬다는 게 이런 것인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몸이 가볍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천천히 내려오며 마주하는 산의 모습. 붉은 화강암은 햇빛을 받아 타오르듯 빛납니다. 거대한 암괴들이 겹겹이 쌓인 사이로 길이 나 있고, 멀리 끝없는 사막이 펼쳐졌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개운함이었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낙타들, 노세를 타는 베두인 꼬마들, 모래와 빛이 뒤섞여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경계가 흐릿한 사막의 전경, 그 위에 걸린 따뜻한 태양. 몽환적이고, 아득한 감성을 풍기는 하산길입니다.
하산을 끝내고, 무사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떨기나무가 지금도 내부에 살아 있다는 세인트 캐서린에 도착하며 나의 마지막 여정을 끝마쳤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와 평지를 밟자, 세상은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음식 냄새, 사람 소리, 햇빛. 방금 까지 능선과 빛과 홍해를 보았던 눈은, 다시 땅 위로 내려왔습니다.
졸업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대학교에서 나름 많은 것을 배우고 이루었다고도 생각했지만, 사회라는 더 넓은 맥락 앞에 그것은 아주 작은 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4년이란 시간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그래서 내게 어떤 의미였을지 돌아보게 됩니다.
대학의 가치는 증명과 완성을 위해 애쓰는 곳이 아니라 나를 더 찾아갈 수 있는 성장의 기회이자 현실의 유예인 것을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던 것이 여전히 좋은지, 무엇이 나에게 가치가 있었는지,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알 수 있는 순간, 그게 졸업인 것 같습니다.
이슬람의 전통은 모든 행위 앞에 니야(ِيَّة), 본연의 의도를 먼저 놓으라 합니다.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부터 움직이는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나서는 때, 꼭 필요한 질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