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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인배 Nov 22. 2023

이직 생각을 시작할 때

직장인, 회사에 대한 애정도와 상관없이 이직을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직장인의 이직도 입학식과 졸업식처럼 시즌이 있는 것 같다.

찬바람이 살살 불기 시작하더니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뭔가 지금... 움직여야 하는 땐가, 버텨야 하는 땐가 모르겠어."

"움직이긴 해야 할 거 같은데, 아직 좀 아쉬운 거 같기도 하고 어렵네요. 가고 싶은 곳도 없긴 해요."

"아 나 진짜 이번엔 여기 꼭 나간다. 어디 괜찮은 공고 보면 알려줘!"


정말 내가 이 회사를 나갈 때가 된 건지 아니면 지금 순간이 너무 힘들어서 피하고 싶은지를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 같으면서도 어렵다. 그래서 자꾸 주변의 의견을 묻게 되는 것 같다.

답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그동안 이 회사에서 쌓아온 것들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두렵고 이 회사에서는 얻지 못할 것 같은 기회들이 아쉬운, 여러 생각 속에서의 선택은 나 스스로가 직면하고 결정해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첫 회사를 떠났던 것은 공채 입사 후, 2년 5개월 만이었다.

주변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를 떠났던 것은 내가 '기획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 그곳에는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직무와 업을 선택할 때에 기대한 바가 명확했던 주니어 시절에는 내가 그 회사를 떠나야 하는 이유 또한 너무 명확했다.

 

가슴속에 품어둔 나의 사명을 이룰 수 없다면 떠나는 게 맞다.


떠나야 함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데 점점 기획자로서의 사명과 멀어진다니, 이렇게 그저 그렇게 회사원이, 직장인이 될 수도 있다니!


물론 그때의 다짐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까지 기획자로서 일을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사명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이직을 다짐하기에는 조금 울컥하는 치기 어린 마음이었다.


그 후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회사를 옮겼다. 어느 회사에서든 누구든 "왜 이직하느냐"라고 물으면 나의 대답도 항상 동일했다.


내가 기획자로서 할 일이 없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울 정도로 그렇게 이직할 때를 당당히 외치던 나였다. 그렇게 명확히 이건 아니야를 외치었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이직 타이밍의 기준으로 혼란을 겪게 된 것은 오히려 기획자로서 그로부터 6년 뒤였다.


프로젝트가 계속 엎어지고, 같은 이야기 중인 보고 문서 작성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이건 이직을 해야 할 때인가? 아니면 참고 기다려야 할 때인가?


그동안 버티고 참고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버텨보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동안의 회사 중에 가장 오래 다닌 회사에 애정이 생겨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힘든 건 분명한데 쉽게 이직할 마음을 먹지 못했다.


그동안 너무 쉽게 이직을 결심해 왔던 나라서 오히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원래 이 정도는 다 버티는 거 아닐까? 내가 나약한 걸까?


퇴사와 이직의 기준을 잃은 직장인에게 회사는 안락한 늪과 같다.


매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그동안의 성과로 받는 인정의 지속(지금 당장 뭘 좀 안 한다고 새삼 크게 깎일 평판은 아니니까)은 잠시나마 불안을 가시게 해 주었고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동료가 좋아서, 후배들이 눈에 밟혀서, 상사가 싫지 않아서, 이 정도면 먹고살기에 부족함은 없으니까, 충분히 인정도 받는데...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고 찾았지만 마음은 점점 힘들고 불안해졌다.

일하기가 싫고 회사에 나가기 싫고, 싫은 것 투성이었다. 그럼에도 이직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점점 무기력해져 갔고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이직을 안 하면? 이 회사에 나는 내 남은 커리어를 맡길 수 있는 걸까?


결국 내가 이직을 마음먹게 된 것은 근 1년 동안 내가 불안에 잠식되는 것을 보다 못한 남편의 반복되는 권유와 불안의 원인을 마주하고 나서였다.


너 지금 너무 힘들어 보여.
거기서 버티면서 니가 기대하는 게 뭔데?


다녔던 회사 중에 처음으로 조직에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던 회사였다. 그래서 심정적으로 떠나기 싫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동료들과 내가 쌓아온 프로세스를 등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적지 않은 연차로 이동한다는 것이 주는 부담감은 그 회사에서는 더 이상 내가 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외면한 채 버티게 했다. 결국 크게 앓고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왜 불안했을까?


내가 더 한다고 이 프로젝트, 이 사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 사업이 계속 제자리에 있는 한, 나는 그 회사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기대가 없는 하루하루는 회사 생활을 힘들게 했다.


이직하는 이유는 각기 다 다를 것이다.

회사 위치 때문에, 돈 때문에, 사람 때문에, 일 때문에...

각기 다른 모든 이직 사유를 존중한다. 이직을 생각해야 할 때에 그것을 외면하고 버티면서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너무 힘든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나의 불안이 커지는 생활이 절대 개인에게 좋았을 리는 없다.

최소한 더 나은 나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 뒤로 나는 말한다.


현재의 내가 너무 힘들면, 불안하면 이직하라고. 회사 생활에서 더 이상 기대되는 것이 없다면 이직하라고.


회사에서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괜찮다. 조금은 나만 생각해도.

기획자도 회사원이고 직장인이다. 회사는 기브 앤 테이크로 생각해야 결정이 수월하다.


내 시간과 생활을 일부 내놓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가.


당장의 어려움에서 도망치는 느낌이 든다면 곰곰이 짚어보자.

지금 내가 충동적인가,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환경인가, 헤쳐나가서 얻는 게 있는가.

조직은 나 혼자 잘한다고 잘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나 혼자 너무 버겁고 힘들다면, 그리고 그 힘듦의 끝에 올 성취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이직을 생각해 볼 때이다.



SUMMARY

1. 현재 회사에서 내가 내 직업을 유지할 수 없고, 내가 직업을 변경할 생각도 없다면 이직을 생각해야 한다.

2. 사내에서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더 업무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기대할 기회가 없는 곳이라면 이직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현재가 나에게 불안을 주지 않는다면 굳이 이직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3. 이직 사유는 당연히 각기 다르다. 너무 불안하고 힘들면 억지로 버티지 말자. 기대가 없다면 도망쳐도 된다.

4. 충동적이진 말자.충동만은 경계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때를 잘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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