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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Dec 01. 2021

블로그도 셋방살이 중입니다. #1

내 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 내 블로그도 없는 서평꾼이라니.



 이번 주말 청소기를 돌리며 알 수 없는 괴음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다가, 우연히 입가에 떠오른 노래가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내 인생에서 활동 반경은 크게 변치 않았다. 게다가 이제 1일 생활권인 우리나라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뭐, 얼마나 크겠는가. 심지어 지금 직장은 내가 출생한(?!) 본가에서 15분 거리다. 내 입장에서 향수는 뿌리는 거다.      

 그런데 이런 내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왜 사람들이 그토록 ‘내 집 마련’을 인생의 꿈 중 하나로 삼는가 하는 것이다. 워낙 공상이 많은 필자의 개인적 생각은 이렇다.      

 일단 떠오른 향수. 우리 인간을 빼고도 연어라던지, 코끼리라던지 고래처럼 모든 것들에게는 회귀본능이 존재하는 것 같다. 즉, 어디든 돌아갈 곳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명한 말 중에 ‘여행이 좋은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는 말이 있다. 불안정한 우리의 삶을 안정적으로 보듬어 주는 곳. 그런 곳이 고향 아닐까. 

 그런 면에서 온전한 ‘나의 집’이라는 것은, 아무 때나 돌아가 내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고향의 대체재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필자의 경우에는 상상으로만 공감하지만) 특히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도심에 그런 감정을 갖기 힘들지 않을까. 


 두 번째로 경제적 문제인데, 이 부분은 워낙 전문가가 많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하진 않겠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 잘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담달에 청약공고가 뜨기를. 아멘)  

 

 마지막으로 농경중심의 우리 사회에 고착된 인식이지 않을까. 농경중심의 사회에서 우리 선조들은 땅에 귀속되어 살아왔다. 경작할 땅이 없으면 그 외 일을 해야 했는데, (빌어먹을) 유교 영향으로 그 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농민 이하의 계급에 랭크되었다. 

 그런 면에서 경작할 땅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고, 교통이 발달하기 전엔(서울 갈 때 한 달 반 걸리는 시대엔) 내가 경작할 땅이 있는 곳 근처에서 거주해야만 했다. 

 만약, 그런 거주지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내가 경작할 땅이 있는 곳에서 멀리 가거나 이동해야 하니 거주지의 불안정이 결국은 생계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니, 집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 아닐까.     


 위는 이성적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내 집 마련에 대한 단상이다. 이제 그저, 오롯이, 내 개인적인 원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나는 출판할 책 작가 소개에도 적었지만, ESTJ다. 게다가 그중에 계획형이 96%에 이르는, 조금 피곤한 타입이다. (필자 스스로는 전혀 안 피곤하다. 완벽한 계획, 완벽한 행복) 

 거기에 더해, 약간은 귀차니스트다. 세상 귀찮은 일은 싫어한다. 변수를 싫어한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내 집 마련의 욕구가 솟구친다.     


 일단, 이사라는 과정이 얼마나 귀찮은 지 말로 설명 안 해도 누구나 알 것이다. 아. 심지어 글로 쓰기도 귀찮다. 직무유기 같지만. 일일이 서술하지 않겠다. 이건 정말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진리와 같다. 아무리 포장이사를 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동’에 한정된 문제일 뿐이지, 이동이 완료된 후 일상생활의 영위를 위한 사후 작업들에는 치가 떨린다.

 그리고 파생적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생기는 일상 계획의 변경이다. 이사를 하게 되면 일단 집의 위치와 구조가 바뀌게 된다. 기본적으로 출퇴근 루트가 변경이 되어야 하고, 출발 시각이 바뀐다. 고로, 알람 설정시간이 바뀌고 일어나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변경된다. 

 집의 구조가 바뀜으로 인해 일어나서 일어나는 동선과, 들러야 하는 공간의 위치가 바뀐다. 필요한 물건들을 쟁여놓고 넣어두는 위치가 모두 바뀐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바뀐다. 재활용 위치가 바뀌고, 음식물 쓰레기를 이제 다른 방식으로 버려야 할 수도 있다.      

 혹자는 이런 내 생각 자체에 치를 떨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나에겐 위의 상황이 정말 몸서리쳐진다.      

 위와 같은 ‘변함’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벌써 결혼 전부터 합쳐서 총 3회의 이사를 감행했다. (감행이라고 한 것은, 이사를 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월세 – 월세 – 전세의 순서로 주거의 형태를 바꿔갔지만, 최근까지는 내 집 마련의 욕구는 없었다.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첫째, 금전적 이유. 둘째, 늘 새로움에 도전하는 성향의 아내.    

  

 집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에 견줄 바는 전혀 아니지만, 행복한 삶(가치관에 따라 다르지만)을 살면서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새로운 집에 사는 것을 좋아하고, 이사에 전혀 부담이 없으신 아내님의 영향이 합쳐져서, 따로 내 집 마련의 꿈을 꾼 적은 없다. (하지만 최근 정말 좋은 위치에 분양이 개시되어서 청약을 넣어볼 계획이긴 하다. 30년 노예생활의 시작.)     


 즉, 나는 나름, 셋방살이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다.      


 고로, 나는 블로그에서도 셋방살이를 하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한 때 필자 역시 블로그를 하려고 해 본 경험은 있으나, 특유의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결국 포기하고 지냈다. 그럼에도 글은 쓰고 싶어서 결국은 책까지 출판하기에 이르렀으나, 그마저 연재 등 사전 활동은 못하고 내 컴퓨터 하드 귀퉁이에 한글문서로만 작성되었다. 

 개인적으로 모든 글은, 읽혀야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요즘 같은 시기에 블로그나 SNS는 매우 좋은 창구다. 문제는 필자가 그런 부지런함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 

 그러던 중, 아내가 서평을 해보라고 권유(지시)했다. 아내는 내 글쓰기 솜씨를 조강지처다운 자세로 매우 칭송했다. 거기까지면 좋았으련만. 본인의 새로운 취미활동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서평 활동에 필자를 끌어들인 것이다. 

 낀세대로써, 사회생활에서도 상당히 난처한 지경에 속해 있지만 집에서도 그런 상황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Z세대의 특유의 논리 정연함에 여성 특유의 합리적 주장에는 절대 이길 수 없다. 


 - 게임하면 뭐 남는 게 있어? : 아이템이 남는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혹시 현금화시킬 수 있는 게임이라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아쉽게도 돈을 썼으면 썼지 절대 벌 수는 없었다.

 - 책 읽으면 좋잖아? : 책 읽으면 좋다. 비싼 돈 들여 라식한 나의 시력에 부정적 영향을 줘서 결국 투자된 병원비를 낭비시키고 종국에는 시력을 잃고 말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릴 했다간 등짝이다.

 - 서평 쓰면 용돈 줄게. : 도.. 돈... 돈은 좋은 것이다. 자본주의여, 만세!


 그런 연유로 내 글 창구가 아내의 블로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의 블로그 목록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서재’는 내 소유의 블로그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셋방살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심히 만족스럽다. 

 아마 앞으로도 특별한 사유가 생기지 않는 한, 아내의 블로그에서 셋방살이를(갑자기 이상 시인이 생각나는 것은 주제가 많이 넘겠지...) 계속할 듯싶다. 


 약간 과도하게 감성적인 것 같지만, 결국 인간은 셋방살이 아니겠는가. 어느 누구 하나 혼자 오롯이 숨 쉬고 살지는 못한다. 누군가의 곁에, 누군가와 함께 호흡하고 이야기하고 사랑해야 살아갈 수 있다. 

 가끔은 피곤해서 책 읽을 힘도 없고, 좋아하는 게임을 하거나 TV나 보고 싶다. 하지만 사람이 누군가와 결혼해서 산다는 것은 마치 내가 아내의 블로그 한 켠에 이렇게 자리 잡은 것처럼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서적 '셋방살이 중'인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이 오해하실까 봐 한 마디 첨언하자면, 집주인이 겁나게 잘해주시는, 행복한 셋방살이입니다!! (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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