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계약] 제게도 행운이 오네요.

기회는 앞머리가 없다던데, 그냥 그대로 와서 박치기해버렸습니다!

by 히르군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시였습니다. 그때는 시라고 부르기보다는 '운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했을 겁니다. 솔직히, 스스로 '시'라고 부르기에는 좀 부끄럽기도 했고요.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저는 가장 가까운 친구 집도 걸어서 10분 거리였습니다. 지금 가보면 가깝지만, 그 시절에는 놀거리가 풍족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도 풍족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가장 친한 친구는, 외가 쪽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폐기 대상이었다가 생존에 성공해서 창고방 한쪽 벽을 차지한 수많은 책들이었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대부분의 책들은 '소년소녀 명작'이라던지, '세계문학전집' 혹은 '어린이 고전'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책들이었습니다. 혹여나 무협지(이 아이는 자라서 3년 간 무협지와의 폐관 수련에 돌입합니다.)였다거나 만화책, '성인'소설이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지도 모릅니다.(그렇다고 무협지나 만화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숙한 어린 시절의 제가 그런 글들을 우선적으로 접했다면 삶의 방향이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혹은, 김용의 뒤를 잇는 무협계의 대가가 되어 있을지도?


각설하고, 지금의 제가 명작소설에 등장하던 소공자처럼은 안 되었더라도, 그런 책들이 제가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소공자는 금수저...) 그 덕에 제가 이렇게 출판 계약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계약은 좀 전에 했지만, 브런치에 합격하지 못한 관계로 (4 수생) 이제야 소회를 적습니다.)




소설의 구상은, 아마 이십 대 초였던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자라서 아이들이 적은 마을. 왜 아이들이 적을까. 왜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뻐할까. 저는 어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여러 사람과 부대끼는 것을 안 좋아한 것이었지만요.


구상만 하는 것은, 참 매력적인 짓입니다. 머릿속으로야, 이미 해리포터와 버금가는 대작을 이미 완성하고 후속 편을 준비 중인 와중에 영화화가 결정되어 각색본을 검토하고 배우 캐스팅에 관여하면서 감독 옆에 앉아 '그 감정이 아니에욧!'이라는 말을 외치고 있으니까요.


구상을 그대로 남겨놓는 것은, 게으름에 더해진 완성했을 때의 실망감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 토마토는 보기와는 다르게 저를 매우 치켜세워줍니다. 자신감을 푹푹 쑤셔 넣어 주죠. 자신감이 훅훅 들어오니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게다가 옆에서 누군가 '감시'를 하고 있으니,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고요.


그렇게 생애 최초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물론, 많이 부족했습니다. 장르소설인지라 시대의 트렌드에 맞추지도 못했고, 천재가 아닌지라 신인작가로 단박에 출판사의 간택을 받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지도 못했죠.


한 50여 곳, 출판사의 따듯한 반려를 받고 실망할 즈음, 토마토가 부크크라는, 아마 브런치 작가분들 역시 아실 POD 사이트를 알아왔습니다. 예. 계약서에 적힌 가제 '장수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저는 제 생애 첫 종이책을 받아보았습니다.


그때는 기획출판은 포기했습니다. 트렌드에도 타지 못한, 신인작가의 소설(천재적이지 못한)을 받아줄 출판사가 없다면, 내 만족으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이미 차기작을 시작했고, 차차기작의 소재와, 차차차기작의 소재와, 차차차차기작의 소재를 구상 중이었기에, 경험을 삼고 다음 글에 매진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은 누군가 읽어줘야 살아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제 사비로 표지도 이쁘게(공포스럽다, 소름 돋는다는 평이 거의 99%였지만) 만들고, 책을 주문해서 서평단도 운영하고, 지인들에게 홍보해서 딱, 그 정도 판매도 했습니다. (제 지인 폭이 매우 좁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서, 그 정도면 예상외의 부수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크크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부크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로, 기존 POD 출판 서적 중에 일부를 선정하여 기획출판의 기회를 주는 '부크크 오리지널'을 론칭하게 되었으며, 그 첫 소설로 제 '장수마을'을 선정하고 싶다는 메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얼떨떨함이 살아나네요.


혼자 어찌나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지 모릅니다. 왜 내 책일까. 내 소설이 맘에 들었나? 역시, 다른 출판사는 못 알아보는 내 소설을 여기서 알아봐 주는구나! 그냥, 고객 서비스 차원인가. 표지를 돈 주고 만들길 잘한 거야! 혹시, 사기는 아닐까? 온갖 생각에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고, 무조건 하겠다며 넙죽넙죽 계약했습니다.


지난 두어 달 가량, 원고를 수정하고 교정, 교열을 마무리하고 이제 드디어 표지가 인쇄되는 모양입니다. 원래는 12월 출간 예정이었는데, 연말이라 인쇄 쪽 일정이 빠듯해서 내년으로 미뤄진 듯하더군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38년을 기다렸는데, 한 달쯤이야 눈 깜빡하면 지나갈 시간이죠. (라고 이야기하지만 지금도 갑자기 '내일모레 출판합니다!'라는 메일을 기다립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누님께서 어느 점쟁이에게 제 사주를 보여주고 점을 봤다면서 전해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고구마야, 너는 장년에 운이 핀다네?'


그때가 아마, 대학 때 조금 방황하고 첫 직장도 때려치우고 놀면서 누님네 쌀가게를 도울 때였을 겁니다. 애초에 종교도 없고 미신도 믿지 않는데, 내 장년에 운이 핀다니.


'나, 지금 장년 아닌가?'


지금 생각하니, 우리는 백세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마흔도 안 되었으니, 지금이 장년인 것이고, 제 장년에 운이 이렇게 펴나 봅니다.


늘, 글을 쓰는데 큰 힘과 도움과 강요(?)를 준 내 아내, 토마토와 내가 소설을 세상에 내어 놓을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절 내어주신 부모님, 형님과 누님 그리고 친우들과 모두에게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 그런데 그때, 누님이 이런 말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노년에 좀 안 좋다네?'


아. 듣지 말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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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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