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국내 봉사단체가 참여하는 세미나를 열까 해요. 여러 사정으로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려는 의도입니다.”
“좋은 일이군요. 그럼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는 건 뭐죠?”
“행사 진행을 부탁드려요. 사회 말이에요.”
“네? 제가요? 그건 다른 분께 맡기시죠. 저는 여태 그런 큰 무대나 자리에 서 본 적이 없어요. 경험도 없는 제가 실수라도 한다면 행사에 누만 끼치고…에이, 저는 아닙니다.”
백 대표는 손사래를 치고 있는 다운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경험이 없어도, 정 소장이라면 충분히 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못 한다니까요. 그냥 봉사단체 연합회장께 부탁하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전문 MC를 섭외하는 게 더 나을 겁니다.”
“노노. 저한테는 정 소장이 필요해요. 그렇게 쉽게 사회자를 구할 거라면 이렇게 아침 일찍 제주도에서 날아오지도 않았을 거에요. 호호호.”
백 대표는 웃었고, 다운은 난감했다. 다운은 백 대표가 굳이 그 큰 행사의 사회를 왜 자기에게 맡기려는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다운의 표정을 읽은 듯 백 대표는 정색하고 물었다.
“정 소장님, 저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세요?”
“그럼요. 그땐 제가 대표님께 큰 은혜를 입었죠.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때 전 정 소장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정 소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도왔을 테니까요.”
다운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백 대표의 분칠한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백 대표와 다운은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4년 전 제주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