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Feb 16. 2022

나는 입을 옷 '1년 치'를 미리 정해 놓는다.

무소속 생존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일 같은 옷만 입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저 사람은 옷을 과연 빨아 입는 것인지'도 궁금해할 것이다.


   나는 같은 옷을 여러 벌 산다. '괜찮다' 싶은 옷을 발견하면, 예전에는 한 벌 주문해보고 마음에 들면 추가 주문을 했는데, 요즘에는 아예 한 번에 다섯 벌을 주문한다. 어차피 입을 거면 다섯 벌을 살 것이고, 반품을 해도 반품 비용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나의 옷은 2종류로 구성된다. 봄, 가을, 겨울용 1종류, 여름용 1종류이며, 한 종류에 다섯 벌씩(상의 기준 총 10벌)을 가지고 있다. 여름용 반팔은 같은 디자인을 몇 가지 색상으로 다채롭게(?) 입고 있다. 겨울에는 추울 때 조끼를 추가해 입는다.


   옷을 잘 입는다는 일은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상하의에 신발, 외투, 신발의 디자인과 색감까지 서로의 궁합을 잘 알고 매칭 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거기다 '요즘 뜬다'는 유행은 어디서 들 알아오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패션 감각에도 기본적인 공식과 패턴이 있다던데, 들을 때마다 까먹는 것을 보면, 사실 나는 옷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멋지게 옷을 입는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 한 가지 조합으로만 입을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조합을 위해 새로운 옷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또 새로운 조합을 위해 옷을 더 산다.


   그렇게 사들인 옷들로 옷방이 서서히 채워져 나갔다. 옷들은 점차 구석에 있는 안 입는 옷, 한쪽에 잘 안 입는 옷 그리고 가까운 쪽에 자주 입는 옷들로 구분되었다. 옷은 많았지만, 나는 몇 개의 한정된 옷들만 주로 입고 있었다. (이미 와이프는 나를 패션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바 있다.)


   옷을 잘 입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많은 옷은 멋진 조합을 위한 풍성한 재료들 같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게는 뷔페 buffet 같다. 한 바퀴 돌고 오면, 그다음에는 좋아하는 몇 가지만 먹는 그런 뷔페 말이다.


   패션 테러리스트인 나에게도 옷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있다.


1/ 무난한 색상과 심플한 다자인일 것

2/ 가능한 오래 입을 수 있도록 옷의 내구성이 좋을 것

3/ 쉽게 물 빠짐이 생기는 저렴이 옷은 피할 것

4/ 드라이나 번거로운 세탁/건조방식 등은 피할 것

5/ 부담되지 않을 금액일 것


   내 옷은 이런 기준들만 통과하면 된다. 그래서 이 기준들을 충족하는 옷을 다섯 벌씩(1년 기준 반팔 5벌, 긴팔 5벌 보유) 구입한다.


이렇게 나는 입을 옷 '1년 치'를 미리 정해 놓는다.



   매일 입을 옷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라는 설렘은 없(어도 되)지만, '오늘은 뭘 입어야 하나'라는 결정 피로(스트레스)도 없다. 그리고 다양한 조합을 필요하지도 않으니 옷값이 절약되고, 옷걸이 한편에 내 옷이 한눈에 보여서 재고관리(?)도 용이하다.


   살면서 너무나 많은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기까지 하루의 온 일과 중에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한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선택들을 동등하게 대할 수는 없다.


   나는 중요하고 좋아하는 일들의 선택에 더 집중하기 위해, 웬만한 일들에 대해서는 자원을 절약하고 매번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도록, 루틴이나 매뉴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의 이전글 고객이 왕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왕이라 그렇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