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생존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일 같은 옷만 입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저 사람은 옷을 과연 빨아 입는 것인지'도 궁금해할 것이다.
나는 같은 옷을 여러 벌 산다. '괜찮다' 싶은 옷을 발견하면, 예전에는 한 벌 주문해보고 마음에 들면 추가 주문을 했는데, 요즘에는 아예 한 번에 다섯 벌을 주문한다. 어차피 입을 거면 다섯 벌을 살 것이고, 반품을 해도 반품 비용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나의 옷은 2종류로 구성된다. 봄, 가을, 겨울용 1종류, 여름용 1종류이며, 한 종류에 다섯 벌씩(상의 기준 총 10벌)을 가지고 있다. 여름용 반팔은 같은 디자인을 몇 가지 색상으로 다채롭게(?) 입고 있다. 겨울에는 추울 때 조끼를 추가해 입는다.
옷을 잘 입는다는 일은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상하의에 신발, 외투, 신발의 디자인과 색감까지 서로의 궁합을 잘 알고 매칭 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거기다 '요즘 뜬다'는 유행은 어디서 들 알아오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패션 감각에도 기본적인 공식과 패턴이 있다던데, 들을 때마다 까먹는 것을 보면, 사실 나는 옷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멋지게 옷을 입는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 한 가지 조합으로만 입을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조합을 위해 새로운 옷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또 새로운 조합을 위해 옷을 더 산다.
그렇게 사들인 옷들로 옷방이 서서히 채워져 나갔다. 옷들은 점차 구석에 있는 안 입는 옷, 한쪽에 잘 안 입는 옷 그리고 가까운 쪽에 자주 입는 옷들로 구분되었다. 옷은 많았지만, 나는 몇 개의 한정된 옷들만 주로 입고 있었다. (이미 와이프는 나를 패션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바 있다.)
옷을 잘 입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많은 옷은 멋진 조합을 위한 풍성한 재료들 같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게는 뷔페 buffet 같다. 한 바퀴 돌고 오면, 그다음에는 좋아하는 몇 가지만 먹는 그런 뷔페 말이다.
패션 테러리스트인 나에게도 옷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있다.
1/ 무난한 색상과 심플한 다자인일 것
2/ 가능한 오래 입을 수 있도록 옷의 내구성이 좋을 것
3/ 쉽게 물 빠짐이 생기는 저렴이 옷은 피할 것
4/ 드라이나 번거로운 세탁/건조방식 등은 피할 것
5/ 부담되지 않을 금액일 것
내 옷은 이런 기준들만 통과하면 된다. 그래서 이 기준들을 충족하는 옷을 다섯 벌씩(1년 기준 반팔 5벌, 긴팔 5벌 보유) 구입한다.
이렇게 나는 입을 옷 '1년 치'를 미리 정해 놓는다.
매일 입을 옷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라는 설렘은 없(어도 되)지만, '오늘은 뭘 입어야 하나'라는 결정 피로(스트레스)도 없다. 그리고 다양한 조합을 필요하지도 않으니 옷값이 절약되고, 옷걸이 한편에 내 옷이 한눈에 보여서 재고관리(?)도 용이하다.
살면서 너무나 많은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기까지 하루의 온 일과 중에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한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선택들을 동등하게 대할 수는 없다.
나는 중요하고 좋아하는 일들의 선택에 더 집중하기 위해, 웬만한 일들에 대해서는 자원을 절약하고 매번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도록, 루틴이나 매뉴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