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Mar 17. 2022

1인 기업이 회의하는 법

무소속 생존기

   내가 다니는 회사의 대표는 나다.

   부장도 나고, 과장도 나이며, 대리도 나다. 창업할 때 들어온 막내 사원이 여전히 있는데 그도 나고, 청소하는 직원도 여전히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나다.


   나는 1인 기업을 하고 있다.


   16년 전에 개인사업자로 시작해서, 법인으로 전환한 것은 6년 전이다. 그동안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동업이나 협업 그리고 스카우트 제의를 수차례 받아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혼자 일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업 규모를 확장하기보다, 투입되는 '시간과 자원 그리고 에너지'를 최적화하여 영업이익률을 높이고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을 더 선호한다.


   내가 하는 일들 모두에 각각 10을 투입하면, 나는 하루에 몇 개의 일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일들을 5로 줄인다면 나는 전보다 2배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 상태가 다시 기본값이 되고 다시 최적화 작업은 반복된다. 그리고 결과를 매뉴얼로 만들어 둔다.


   사실 사업이라는 게 늘 새로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각자의 주기에 맞춰 다시 반복된다. 그래서 새로운 문제가 들어오면 일단 열심히 해결을 하고, 그 문제를 다음에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머리에 키워드와 윤곽만 남기고 디테일은 매뉴얼에 저장해둔다. 언젠가 동일하거나 비슷한 일을 만나면 나는 매뉴얼을 찾기만 하면 된다.


   하다 못해 사업장 청소 조차도 어떤 청소도구를 활용하여, 어떤 방식과 순서로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청소를 하면서 따져본다. 그렇게 하여 최적화된 청소 방식을 정해 놓는다. 물론 더 빠르고 좋은 방식이 나타나면 업데이트한다.(호텔 로비를 청소하는 여사님에게 힌트를 얻기도 했다.)


머리는 생각에 집중하고, 기억은 종이에 맡긴다.


   내가 일하고, 공부하는 방식이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기록을 해두고, 머리는 늘 비워두려고 한다. 이렇게 가벼워진 머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호시탐탐 해결할 준비가 된다. 길을 걷다가, 뉴스를 읽다가, 식당에서 주문을 하다가, 영화를 보다가도 힌트를 얻는다. 이것들이 나타나면 곧바로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이 되고 곧 회의 안건(?)이 된다.


   이 회의 안건을 가지고 회의실(근처 카페)에 간다. 차 한잔 시켜놓고 그동안 휴대폰에 기록한 것들을 모두 종이에 적는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실무자로서의 나, 대표로서의 나, 경리직원으로서의 나 그리고 고객으로서의 나도 한 테이블에 앉아 있다.


   실무자가 대표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번거로운 프레젠테이션 따윈 없다. 간단한 그림과 메모로 결론을 도출하면 남아있는 차를 훌쩍 마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가, 바로 실행한다.


   나의 회사는 웬만한 일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복잡한 일을 단순화시켜 놓았고 이를 매뉴얼로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사업의 핵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져 있다. (1인 기업의 좋은 점은 눈치 보지 않고 시도할 수 있고, 실패해도 나를 혼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가끔 모든 일을 혼자서 한다는 말을 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의뢰한 일을 대충 할 것 같다고 우려하는 고객들도 있었다. 또는 사업은 그렇게 혼자서 다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왜 같이 일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사업은 성장하고 "근무시간이 줄고" 이익은 유지하거나 커지고 있다. 번번이 인력 채용의 고비(?)를 넘겨, 다시 혼자 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가끔 단기 아르바이트를 채용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내 매뉴얼대로 할 일을 의뢰하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한다.


   1인 기업의 단점이 있다면, 말 그대로 1인이라는 점이다. 그 '1인'인 나의 개인 사정이 회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늘 최고의 컨디션에 있도록 생활 관리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일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것은 이제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다만 사업의 확장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대신, 혁신하고 돈 잘 버는 회사에 오래 투자를 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보완하려고 한다.


   내 삶이 그러하듯, 사업도 미니멀한 것이 좋다. 그리고 이런 내 사업 방식을 “미니멀 비즈니스”라 부르고 싶다.

<회식 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