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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Nov 03. 2022

저, 신생아 스타일이에요.

2mm, 셀프 이발, 셀프 미용, 이발기

<어제>

   이발기를 주문했다.

   내일 새벽 배송으로 도착할 예정이다. 드디어 셀프(는 아니고 와이프에 의한) 이발(삭발)을 시작한다. 와이프는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와이프도 자신하는 눈치다.

   아마도 이 사람은 머리를 깎다 실수해도 그저 깔깔대고 말 것이다. 약오르지만 그럴 땐 나도 같이 웃으면 된다.


   이발기 가격은 할인받아 대략 4만 원 정도다.

   미용실 커트 비용은 9천 원(현금 8천 원)이므로 5번만 와이프가 깎아주면 이발기의 본전은 뽑는 셈이다. 이로써 파이어의 기본인 생활비 규모 줄이기가 하나 더 완성이 될 수 있다. 기대된다.


<오늘>

   드디어 오늘 아침 집에서 머리를 깎았다.

   지난번에 미용실에 갔을 때 와이프가 미용사의 손놀림을 주의 깊게 보더니 오늘 나에게 첫 실험을 했다. 와이프도 꽤 재미있어했다.


   현재 3mm보다 한 단계 더 내려서 2mm로 밀었다. 차이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차이가 난다. 지금도 워낙 짧기 때문에 와이프는 그게 그거라고 말했지만, 차이가 있다. 무려 33%나 짧아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6mm에서 3mm로 내려왔을 때는 무려 50%나 짧아졌다. 삭발 세계의 똑 단발이랄까? 주식에 빗대자면, 내 머리카락에 공매도를 친 것이다. 거의 바닥까지 내려와 더 이상 공매도 칠 물량이 남지 않긴 했지만.


   2mm로 전체를 밀고, 아랫단 쪽은 0.8mm로 맞춰 다듬어줬다. 왼쪽 옆에 약간 패인 부분이 있긴 했지만, 처음 머리를 민 것 치고는 꽤 그럴듯했다.


   와이프도 몇 번 더 하면 아마도 능숙하게 이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와이프에게 할 일을 만들어줘서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와이프는 재미있다며 괜찮다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스스로 깎아볼 생각이다.


   20대 후반 나는 담배가게에 발길을 끊고, 40에 술과 커피에 돈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40대 중반이 되어 나는 미용실에도 가지 않게 될 것 같다. 그렇게 건강도 얻고, 숙면도 얻고, 불필요한 지출도 줄여 실질 소득을 늘렸다.


   돈도 돈이지만, 미용실로 이동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끼게 되었다. 물론 짧은 머리에 대한 만족감이 첫 번째다. 이것은 머리에서도 즐기는 나의 미니멀 라이프다.



   거울을 본다.

   20대 때만큼의 젊고 탄탄한 외모가 사라졌지만 오히려 요즘이 더 만족스럽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솔직한 모습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게 참 좋고, 자유롭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삭발이나 빡빡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느낌이 부족해서 별로다. 그래서 요즘 내 헤어 스타일을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저, 신생아 스타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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