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탐정
군제대 후 복학 첫 학기 내 별명은 '엉덩이 선배'였다.
여자 후배들이 갓 복학한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칭하던 별명이었다고 한다. 스물셋의 나이에 최전방 부대에서 단련된 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군살 없이 늘씬하고 탱탱했던 몸은 사진 아니 동굴벽화에 간신히 남아있다.
하지만 군대에서 만큼의 자기 관리가 되지 않던 나는 빵빵한 얼굴을 자랑하는 '엉덩이 탐정'이 되고야 말았다. 운동하지 않고, 못된 것을 입에 댄 대가로 몇 개월 사이 약 15kg 정도 체중이 불었다.
스물여덟, 다시 시작한 운동과 자기 관리는 '엉덩이 선배'를 다시 소환해 낼 수 있었다. 체육센터 수영장에서 나는 수영강사로, 헬스장에서는 트레이너로 종종 오인되기도 했다. '최대한 작은' 삼각수영팬티를 입은 181cm에 90kg가 넘는 근육질이었으니 ㅋㅋ 그럴 만도 했다.
스스로에게 만족해서였을까?
그때는 예쁘고 늘씬한 여자들이 주변에 보여도 시선이 잘 가지 않았다. 그때는 탐스러웠던 나 자신이 제일 예쁘고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기웃거리지 않아도 기웃거림을 받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탄탄한 몸매의 여자를 보면 고개가 휙휙 돌아간다. 나에게 있는 수컷의 본능이 발동한 것도 있겠지만, 예전보다 탐스럽지 않은 나의 열등감과 부러움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타인의 섹시함을 바라보는 것보다 나 스스로가 섹시하게 느껴질 때가 더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섹시함은 단순히 탐스러운 몸매와 근육이라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말을 실천으로 옮긴 데서 느껴지는 그리고 풍겨지는 자신감 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다시 섹시해지고 싶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어 보이고 싶어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거나 소싯적 유행했던 옷을 입으며 그때로 돌아간다고 착각하고 싶지는 않다.
여자들은 할머니가 되어도 예쁘고 싶은 것처럼, 남자인 나도 나이가 들어도 멋있고 섹시해지고 싶다.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수준을 넘어, 나 스스로 섹시하다고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섹시함은 어쩌면 삶의 의욕이기 때문이다.
10,043세
최근 몇 달간 건강한 식단으로 7kg을 감량했다. 그리고 걷고, 달리고, 스쿼트하고, 루프밴드로 엉덩이를 조지고 있다. 엉덩이를 작게 만들어 허리 쪽으로 올려붙이는 중이다. 그리고 철봉에 매달려 등판을 넓혀간다.
예전과는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들에게 뽐내려는 가슴과 복근보다는 앞으로 내 몸을 든든히 지탱해 줄 하체와 등근육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실천하며 조금씩 피어오르는 자신감을 삶을 대하는 태도에 불씨를 옮겨붙여보려고 한다.
'섹시하다'는 말은 참 매력적인 말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뭔가 삶에 의욕이 생기는 형용사다. 섹시해진다는 것은 뭐라도 받아들이고 도전할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일단 하루라도 더 빨리 섹시해져야겠다. 일단 그걸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