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생존기
사람들은 보통 옷만큼이나 헤어스타일에도 유행이 있고 맵시를 따진다. 미용실에 비치된 잡지를 보거나 TV만 봐도 요즘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나는 내 옷 입는 방식과 비슷한 간결한 머리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탈모가 진행되었고, 이 조건에서 괜찮게 손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갔다. 하필이면 내 머리를 제일 잘 깎아주던 미용실은 오픈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고, 불분명한 시간관념이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6년을 다녔던 미용실을 손절하기로 하고, 나는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야 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대신 어떤 미용실을 가더라도 균질한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삭발을 하기로 했다. 이것으로 나는 가장 저렴한 미용실만 찾으면 되었다.
갑자기 머리를 밀어버리면 사실 나부터도 어색할 것 같았고, 주변 사람들도 적응을 시켜야 하므로 서서히 삭발을 감행하기로 했다. (주변의 억측에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귀찮다.)
이른바 '순차적 삭발'이다.
그래서 동네에 커트가 가장 저렴한 미용실(커트 9,000원)을 찾았다. 일단 20mm 길이의 이발기 설정으로 일단 밀었다. 원래 머리가 짧은 스타일이었어서, 주변인들은 잘 모르는 눈치였거나 언급하지 않을 수준의 길이였다. 이렇게 2번 정도 깎고 다음은 18mm로 깎았다. 역시 눈치를 못 챘다.
15mm로 일정기간을 거쳐, 현재는 12mm 길이 설정으로 이발기는 보름에 한 번씩 시원하게 내 두피 위를 내달리고 있다. 가끔 주변인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갸우뚱은 하지만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 기간을 지나면 아마 다음은 순차적으로 9mm, 6mm, 3mm 순서가 될 것이다. 아마도 내가 파이어를 선언할 쯤이면 와이프가 이발기를 사서 간단하게 머리를 밀어줄 것이므로 이발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예전처럼 불분명한 시간관념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고, 이발 비용도 절반으로 줄었으며, 씻고 말리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스타일링할 일도 없다. 깔끔하고 편하다.
검정색 국산 대형세단을 타고 다니는 관계로 아주 가끔 '불량한 사람'으로 오인 받기도 하지만,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거친 도로에서는 가끔씩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짧은 머리는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주변인들도 내 모습에 적응을 한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지금 내 모습은 그들에게 기본값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왜 스님들이 머리 밀고, 옷은 한 종류만 입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것은 그냥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