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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May 06. 2024

방송출연을 거절하는 노포 맛집

생활의 달인 백반기행

   맛있다는 중국집을 찾았다.

   방문 후기를 보다 내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주인장께서 '백반기행'이나 '생활의 달인'류의 방송을 한사코 거절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여기서 더 무리하면 건강을 해칠 것 같아서'가 그 이유였다.


   선거일 아침을 먹고 차로 40분을 달려갔다.

   네비를 따라가다가 구도심 뒷골목에 숨어 있는 식당을 찾았다. 가게 앞 길도 일방통행 도로처럼 좁았다. 11시 30분 오픈이었지만 10시 50분에 빼꼼히 문을 열었더니 들어와 있으라는 주인장의 허락을 받았다.


   방송을 거절하는 이유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찾아왔다는 말을 했더니, 주인장과 안주인께서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말씀 중에 '내가 벌 수 있는 만큼만 벌고, 못 가져가는 건 내 거 아니다'라는 말이 참 와닿았다.


   '손님이 몰려 정신이 없을 땐, 10분 걸릴 음식을 5분 만에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그 5분 차이로 맛이 달라진다. 그러다 보면 식당의 정체성이 사라진다. 그리고 외부 손님들이 북적이면 정작 단골들이 떠나게 된다. 다 잃는다. 그게 싫다'


   그리고 '나이가 드니 언젠가부터 장사가 참 잘되는 날 아프고, 수술을 몇 차례 하는 바람에 며칠 길게는 한두 달 쉬어야 했던 기간에서 욕심을 잠재우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백반기행이니, 생활의 달인이니가 몇 번을 찾아와도 거절한다. 어떻게 될지 뻔하다.'가 긴 대화의 요지였다.


   요즘은 영업시간 줄이고, 술 안 팔고, 일요일에도 쉰다고 한다.


   전에 살던 지역에도 유명한 짬뽕집이 있었다.

   방송에 몇 번 나간 뒤로 정말 '초대박'이 났다. 단골들은 밀려났고, 외부 손님들이 식당을 점령했다. 몇 달 만에 찾은 식당의 음식맛은 변했고, 나도 한동안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적당히 잘 되던 식당, 여유 있게 웃으며 손님을 기억하던 사장의 얼굴은 어느샌가 무표정과 짜증이 있었다. 결말은 사장의 '공황장애'였다.


   지금은 가게를 넘기고, 다른 일을 하며 봉사활동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어느 날 길에서 마주쳤는데, 다시 밝은 얼굴이 돌아와 있었다.


   100을 계속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청구서가 붙어 있다.

   30이든 40이든 먹고 살만치 벌면 그저 감사하며 지내는 편이 낫다.


장사는
잘되면 무리하게 되고,
안되면 근심에 빠진다.


   적당히가 제일 좋은데 그게 참 어렵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어렵다고 하지만, 아니다.

   돈은 적당히 버는 게 제일 어렵다.

   하긴 그것도 운이고, 그 사람의 그릇이다.


   눈에 보이는 돈을 다 줍지 않는 건 돈을 더 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저승돈 벌어다가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들의 말과도 비슷하다. '이제 숨 쉬러 올라가야 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전복 하나 더 따다가 순식간에 의식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우리 음식은 딱히 더 맛있거나 하진 않고 그냥 보통 맛입니다. “


   75세 노포 주방장은 아들 뻘 되는 나에게 연신 존댓말을 써가며 다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저 보통 맛이라고 하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요리철학에 대해 한참을 말씀하셨고, 사모님은 말이 길다며 주방으로 내쫓으셨다. ㅋㅋㅋ


안알랴줌(사장님 지켜)


   덴뿌라(고기튀김)와 간짜장 그리고 짬뽕

   40년을 이어온 요리스타일은 어렸을 적 먹어봤던 딱 그 맛이었다. 아크릴 판에 손으로 적은 오래된 메뉴판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적당히' 장사가 잘되어서 즐겁게 그리고 오래 장사하셨으면 좋겠다. 다음엔 내 어릴 적 추억의 기스면을 먹으러 가보려 한다.


https://brunch.co.kr/@jaemist/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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