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자꾸 입에서 말이 새어 나온다.
머릿속으로만 하던 생각이 동시에 입으로 나온다. 사고의 중추가 대뇌피질에서 구강으로 이동한 것만 같다.
어실금이다.
내 의지와 생각과 관계없이 입에서 말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조금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나도 모르게 말을 지리는 거다.
전조증상은 '아구 아구 아구우우우'다.
희한하게 언젠가부터 바닥에 앉거나 누울 때,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이구 아이구 아악'하고 눕는다. ㅋㅋ
이것을 시작으로 '혼잣말'은 시작된다.
"카만 있숴 보좌아ㅏㅏㅏ"
"어디다 뒀뜨라하ㅏㅏㅏ"
"왜 이게 안 되는 거야... 하이씨, 미치겠네..."
ㅋㅋㅋ 그 말이 생각난다.
요실금 전에 어실금 온다.
지난달에 강화도 여행을 다녀왔다.
연산군 유배지에는 어른들의 수학여행으로 바글바글하다. 경치와 날씨와 꽃에 대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느라 왁자지껄하다.
아주 끝내주는 날씨에 울긋불긋한 꽃들을 배경으로 더 울긋불긋한 등산복에 잠자리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들 아이처럼 밝게 웃는다. 카메라를 향해 사선으로 서서, 옆사람의 팔과 어깨에 살며시 손을 대고 선다.
다들 곱게 서서, 개구쟁이같이 말한다.
"다 여기 서봐! 한방 찍구 가야지!"
"00야! 너는 이 끝으로 서, 아이 빨리 와아!!"
"(웃음)갈갈갈갈갈"
"00 언니, 어디 갔써!! 아유 저깄네!"
"(통화 중) 어, 나 지금 여행 왔어! 내가 사진 찍고 이따가 전화할게. 별일 음찌? 어쩌구저쩌구"
"니가 일루 와! 내가 글루 갈게!!"
"이따가 어디서 모이라고 했지?"
인솔자가 공지사항을 전달한다.
"오늘 여기는 00시까지 관람을 하시고, @#$%^&*("
여기저기 지역방송이 돌아간다.
"아유, 선생님 말하는디 들어요!"
"안 들려, 조용히 좀 해요."
"난 암말 안 했는데."
나중엔 조용히 하란 말이 더 많고 크다.
(전달 사항이 끝나고 나면 꼭 박수를 친다.)
서로 안 듣는다. ㅋㅋㅋ
그러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연령이 올라가는 만큼 목소리는 반대로 커진다. (청력이 쇠퇴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을 오래간만에 만날 때 느낀다.
전보다 말이 많아졌다. 한 문장으로 정리될 말을 길고도 길게 말한다. 그리고 대화소재가 코스요리처럼 끊김 없이 등장한다. 체력은 없다면서 입 주변 에너지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자기 말하고 싶어서 만나는 것 같다. ㅋㅋㅋ
하긴 말하는 것도 배설의 욕구에 해당되는데, 사회적 동물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건 눈치를 볼 일이 적어진다는 것이기도 하기에 마음껏 배설 욕구를 드러내는 거다.
오늘 만난 사람들이 각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말해보라는 연구 실험이 있었다. 실험 참가자들 대부분 타인의 이야기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를 하고 싶어서 만난다 하지만, 실상은 말할 상대를 찾는 행위에 가깝다고 한다.
원래 자기 이야기를 하러 만나는 거다.
게다가 어실금까지 오면 말이 많아진다.
여기에 귀가 조금 어두워지면 목소리까지 커진다.
온라인에 어른 세대에 대한 흉이 올라온다.
'말이 많고, 시끄럽다.'
어린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의 딱 중간에 있는 중년의 나는 양쪽의 말이 이해된다. 얼마 전까지 나도 어렸고, 내 모습의 그래프에 연장선을 그어보면 나이 든 분들의 모습이 멀지 않은 미래라는 것도 느끼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노인공경을 외치고 싶진 않지만, 젊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보지 않고는 절대로 공감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런 공감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노안이 와서 안경을 들어 올려야 보이는 나를 향해 픽 웃는 아들처럼 말이다.
'너도 나이 먹어봐라!'가 답이다.
어쨌든 나도 어실금이 시작된 것 같다.
죄 없는 후배 붙들지 말고, 나의 어실금일랑 여기 브런치에 '지려'보려고 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