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Jun 07. 2024

약속 당일 나가기 싫어 증후군

사회안적응자

   간만에 손세차를 맡겼다.

   몇 달 동안 몇 번이나 '다음에 오겠습니다'하고 말았는데, 다행히 오늘은 세차장이 한가해서 바로 세차가 가능했다.


   오늘도 예약 없이 왔다.

   당일에 가서 되면 하고, 안되면 안 한다. 지난주부터 '전화 예약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또 안 했다.


   차를 애지중지하는 타입도 아니고 차에 쓰레기를 방치하거나 먹을 것을 흘리지도 않는지라 오늘처럼 1년에 한두 번 아니 오늘처럼 가능할 때 손세차를 맡기는 편이다.


   겉이 너무 더럽다 싶으면 주유소 자동세차를 돌려버린다. 누구는 차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도 하던데, 나는 물건에 집착하거나 물건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애지중지하는) 걸 한심하게 여기는 편이라 상관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정비는 매뉴얼대로 확실하게 하는 걸 좋아한다.)


   어쨌든 예약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지인이 하는 세차장인데도 전화 걸기가 꺼려진다. 그 지인이 싫은 것도 아니다. 그냥 전화 걸기가 불편하다.


   콜 포비아(call phobia 통화 공포증)라는 말도 있던데, 업무용 전화는 어지간히(할 수밖에 없으니) 하는 걸 보면 공포... 까지는 아닌 듯한데, 통화라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일인건 사실이다.


   차라리 문자가 편하다.

   그런데 내가 가능한 시간, 상대가 가능한 시간의 교집합을 찾기에는 주고받는 문자 횟수가 많다. 그래서 통화가 빠른 건 알지만 웬만하면 통화하고 싶지가 않다. 뭐 그렇게 까지 세차가 급하지 않다는 말도 될 거다.


   이렇게 시간을 정하는 게 싫은 주된 이유는 얽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약속 당일에 더 하고 싶은 게 있거나, 귀찮거나, 나가고 싶지 않아 질 때처럼 마음이 바뀔 때 내가 하고 싶을 걸 못한다는데 거부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고 당일 취소하자니 민폐고, 또 불편한 전화까지 해야 하니 별로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에 한해서 그러하다.


노쇼 고객은 더 이상 거래 하지 않는다.


   약속 당일이 되면 이상하게 나가기가 싫다.

   거짓말로 약속에서 빠진 것도 여러 번이다. 상대가 무슨 사정이 있어 못 나온다는 연락이 오면 나는 쾌재를 부른다.


   내 자유(시간)를 되찾은 느낌이랄까?

   약속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상대의 취소 연락을 은근 기대한다. (사실 신규 거래 상담이 취소되기를 바랄 때도 있다.)


   “오늘은 나가고 싶지가 않군요. 그래서 오늘 약속은 취소하겠습니다”는 말까지는 아직은(?) 못 하겠고, 구차한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별로다.


   20대까지만 해도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해서 약속도 많이 잡고, 같은 과 사람들보다 타 과에 친한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로 소위 인싸 중에 인싸였는데 말이다.


   이제 사람 만나는 게 귀찮은가?

   사람 상대하는 일에 싫증이 났나?

   내 성격이 변했나?


   이런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이러다가 점점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살짝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나는 사회부적응자는 아니다.


   그냥 남들 눈치 안 보고 사는 인간이다.

   0.8mm 삭발에 양산 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 ㅋㅋ 그동안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주류에서 좀 벗어나 있는 인간은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비주류라는 표현은 뭔가 밀려난 느낌도 들어서 별로다. 어렸을 적부터 '남들처럼' 또는 '남들 다하는' 그런 주체성 없이 따라 하는 것들에는 흥미를 원체 느끼지 못하니 능동적 의미에서 '사회안적응자'가 좋을 것 같다. ㅋㅋ


   그래, 나는 사회안적응자다.


   그런데 그런 것도 유전자에 박혀 있나? 

   중학생 아들도 체육대회 반티를 정하는데 (환경문제, 낭비 등을 이유로) 반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1인이다. ㅋㅋ 반 전체가 동의해야 반티를 제작할 수 있었다는 건 안 비밀이지만.


   하긴 연애 때 커플링을 먼저 나에게 끼워준 전 여자 친구(현 와이프)도 대체로 '사회안적응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부모가 그런데 아들이야 뭐 ㅋㅋㅋ


   어쨌든 나이 들면 외로움과의 싸움이라던데 거기에 최적화된 인간인 건가 싶기도 하다. 혼자서 호젓하게 이거 저거 사부작거리는 게 좋긴 하다.


   얼마 전 선배와 밥 먹기로 했는데, 그 선배가 사정이 있다고 해서 약속이 ‘조만간’으로 미뤄졌는데… 으흐흐 하고 쾌재를 불렀다. ㅋㅋ


작가의 이전글 요실금 전에 어실금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