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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Aug 18. 2024

도망간 아버지와 ‘랄랄라’ 잘 지내는 이유

   성묫길에 누군가 땅벌집을 건드렸다.

   수백 마리의 땅벌이 윙하고 올라와 일행을 둘러쌌고, 모두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5학년이었던 나는 어쩔 줄 몰라 제자리에서 울며 서있었다.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던 탓에 땅벌(오빠시)들은 내 바지 속으로 파고들었고 나는 그렇게 얼어 붙은 채로 계속 벌에 쏘였다.


   잠시 후 정신이 든 나는 저 멀리 일찌감치 도망간 (지금도 생생한) 아버지의 눈빛과 다급한 손짓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벌떼에서 빠져나온 나는 울면서 조금 더 걷다가 벌이 없는 곳에서 바지를 내렸다. 12방을 쏘였다.


   이 일로 수십 년째 잊을만하면 '자식을 버리고 달아났다'며 나는 아버지를 골려먹곤 한다. 하지만 그 어렸을 때도 나는 벌에 둘러 싸이고 쏘인 게 무섭고 아팠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마치 비행기에서 긴급상황에 내려온 산소마스크를 '부모가 먼저 쓴 다음' 자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주는 것이 순서인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매뉴얼대로(?) 신속하게 마스크를 썼고, 그다음 내가 쓴 거다.


   그때 어린 나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거리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배웠던 것 같다. 부모자식이라고 모든 걸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그걸 지금의 나는 매우 '바람직한' 거리라고 생각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란 말

   나도 아들이 있고 보니 왜 저런 표현이 있는지는 알겠다. 그렇지만 나는 아들을 눈에 넣는 것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건 둘째 치고, 눈에 닿기만 해도 너무 아플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자기 자식이 소중하다는 숨은 뜻에는 동의한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자주 등장하는 사연이 있다. 요는 '부모에게 지원을 받는 사연자가 부모의 간섭이 싫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스님은 대개 두 가지를 제시한다.


1/ 부모의 지원을 받으려면 부모 말을 듣던지

2/ 부모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던지


   이 두 가지다.

   지원도 받으면서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는 선택은 없다.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라도 '거래'는 존재한다. 그 사이에도 당연함은 없다. 받으면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한다. 부모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귀한 자식이라도 눈에 넣을 순 없다.


   잠깐 와이프의 지인의 이야기다.

   첫 번째 결혼생활에서는 시댁 근처에도 안 가더니, 이혼 후 두 번째 결혼에서는 시동생 부부에게 시아버지 회사 경영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10년째 온갖 시집살이(막말, 부당한 대우 등)를 다 견디는 중이다. 심지어 만삭에도 온 식구 가족여행 뒤치다꺼리 하며 따라다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을 너무나 당연하게 아니 최선을 다한다.


   (아마도 그 시부모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두 아들에게 효도 배틀을 시킬 것 같다.)


   벌에 쏘이지 않고 먼저 도망간 아버지는 시간이 흘러 성인 된 나에게 자신의 차를 중고시세로 "팔았다." 전세 낀 갭투자 집도 "시세대로" 나에게 파셨다. 그냥 주실만도 했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파셨고, 나는 샀다.


   하나 더 기억나는 건 중학교 때 아버지는 자기 봉급으로는 비싼 학원비를 부담하지 못하겠다고(너를 눈에 넣을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셨다. 그래서 나는 자기주도학습을 터득했고 성적은 오히려 더 올라 1등을 했다.


   부모가 돈을 주신다면야 사양은 않겠지만, 안 준다고 서운하진 않다. 아니 서운할 순 없다. 그건 부모의 재산이고 자기들 마음이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덕분에 돈보다 비싼 자립심을 증여받았다. 그리고 그만큼 더 일찍 자립할 수 있었다.


   나의 부모도 우리 부부도 '각자' 알아서 잘 살고 있다. 서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간섭받지도 않는다. 때론 주고받기도 하지만 준 것에서 끝난다.


   결혼 이후 한동안 힘들게 살았을 때도 썩 도와주시지 않았지만, 반대로 일체 간섭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16년 결혼생활 통틀어 결혼 1년 차에 서로의 집에서 1번씩 잔 게 전부다. 부모와 자식 간이지만 끈적거리지 않고, 서로 자유롭다. 아주 잘 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래라저래라"를 하시지도 않지만, 먹히지도 않는다. "제가 언제 엄마 아부지 말 듣는 거 봤습니까?"라고 한다. 아, 씨알도 안 먹히니 안 하시는 걸 수 도 있겠다. ㅋㅋㅋ


   갈등의 씨앗이 없으니, 갈등이 싹트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 관계가 (무척은 아니지만) 좋다고 볼 수 있다. 불행하지 않다면 행복한 거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천륜이지만, 그 운명의 길은 서로 다르다."라고 한다. 분명 서로 다른데 서로 같은 길이라는 착각에서 문제가 생긴다.


   부모와 나는 서로 부모가 다르다.

   배우자도 다르다. 성장 환경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수입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정치성향도 다르고, 식생활도 다르고, 돈을 쓰고 모으고 투자하는 방식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르다.


   부모 자식은 맞지만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서로 독립된 집단이며, 또 개인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부모의 곁을 떠나 모르는 땅으로 가서 처음 보는 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듯 모두 각자 존재하는 존재다.


   일단 각자 알아서 잘 사는 게 그리고 적당히(?) 또는 아예 모르는 척하는 게 서로를 돕는 일이다. 그게 기본값이다. 그것도 힘들다.


   엄마 아버지는 나를 눈에 넣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내 자식 눈에 넣지는 않을 거다.

   아니 못 넣는다.


   다른 초원에서 서로의 안녕을 가끔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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