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 남편
결혼을 허락받으러 여자친구 집에 갔다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셨다는 에피소드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여자 친구 부모의
1/ 너의 바닥의 모습을 확인해야겠다.
2/ 네가 진짜로 내 딸을 사랑한다면 이 정도 수모는 견뎌봐라.
라는 두 가지 명분으로 이런 검증(?)이 벌어진다. (그런데 자기 자식에게는 저렇게 강제로 먹일 수 있을까?)
옛날에는 새신랑의 발바닥을 몽둥이로 그렇게 때렸다고 한다. 때린 사람도 맞는 사람도 근본 이유도 모르고 '나도 맞았으니 너도 맞아라'가 아닐까?
전통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신랑의 발바닥의 혈을 자극해 첫날밤에 효과를 보라는 뜻도 있다고는 하지만 뭐 어쨌든. (아니 정말 그런 의미라면 평소에도 자기들끼리 발바닥을 때렸어야지.)
나도 결혼 전에 처가의 본가로 명절 인사를 갔다.
거의 집성촌에 가까울 정도로 사돈의 팔촌까지 모여 산 데다 첫 손주사위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많은 동네 친척들이 찾아와 큰 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앉았다.
목소리 큰 고모부 두 분이 집행관으로 나섰다.
그리고 나에게 자연스럽게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전통에 근거하여 합법적으로(?) 요리할 '먹잇감'이 나타나 주었으니 어찌 신나지 않겠나. 술병을 들고 '어서 잔을 비워야 한다'는 눈치를 줬고, 술을 받는 간격이 짧아졌다.
하지만 그런 흥겨움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저는 그만 마시겠습니다."
딱 3잔 마시고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잔치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차갑게 식었고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에 다들 눈이 똥그래졌다. 그리고 조금 더 있다가 결혼식에서 뵙겠다며 나는 자리를 떴다.
내가 흐트러짐이 없다면 '가해사실(?)'이 없기 때문에 '대단하다'며 칭찬할 테고, 무너졌다면 낄낄거리며 재미있어했을(나에겐 흑역사로 남았을) 것이다.
전통(?)인 건 알겠는데, 난 그럴 이유가 없었다.
또 자기들이 당한 것과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사불성보다 불편한 시선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내 장인께서도 강제로 권하지 않는 술을 자기들이 뭐라고 ㅎㅎ (뭐 장인께서 강제로 권하셨어도 나는 거부했을 거지만)
나의 아버지도 맏사위다.
장인의 주사에 원가족은 전부 도망가도, 같은 동네에 살던 맏사위 아버지는 붙들(려드)리거나 호출되어 밤새 무릎 꿇고 반복된 레퍼토리를 들어 드리(고 출근하)곤 했다.
철없는 처남들, 조카들 그리고 아랫 동서가 때로는 선을 넘고 까불어도 그냥 넘어가셨다. 그 시절에는 사위도 시월드 비슷한 처월드의 불문율 같은 것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합리적이지 않은 처우에는 유독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의 집합에도 유일하게 가지 않았고, (선배인지도 모르는데) 인사하지 않는다고 뭐라 하는 선배들에게 대들었다. 군대에서도 일병 때부터 선을 넘는 고참들과는 계급장 떼고 싸웠다.
그런 내가 K장녀와 결혼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3년 넘게 처가와의 왕래를 끊었다. 처가와는 이혼한 기분이다. 물론 와이프와 나는 사이좋게 잘 지낸다. 아니 우리는 더욱 돈독해졌다.
우리는 결혼하고 자주 싸우긴 했다.
그런데 매번 다툼의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을 거쳐가며, 어느 시점에 항상 등장하는 말이 있었다.
"그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왜 또~"
매번 다른 이유로 다툼이 시작되었지만 후반부 레퍼토리는 거의 비슷했다. 내 말이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무리 바로잡아도 반복되었다. 언젠가 내가 이 사람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지만, 그것이 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었다.
하지만 3년 전 와이프가 K장녀로서 폭발하던 그때, 비로소 나는 그 역린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게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
사람은 비로소 그걸 이해할 수 있다.
K장녀로서의 와이프의 삶.
와이프의 말로만 듣던 K장녀가 겪는 그것을 3년 전 그때 나도 함께 겪게 되면서 비로소 와이프의 깊은 상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와이프에게 있던 그 역린 아니 깊은 상처를 본 후에야 그동안 다툼의 기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족 내 희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기의 역할과 희생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역할을 희생이라 착각하는 건 나르시시즘이며, 또 희생을 당연한 역할로 강요할 수는 없다.
강요된 희생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기존의 질서를 흔들었고, 그게 불편해진 기득권은 유교사상을 명분으로 와이프에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기를 요구했다.
더 정확히는 내가 등판하면서 일이 커졌다.
그리고 너(나)는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왜?
내가 내 와이프, 내 가정 지키겠다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욕을 하는 사람에게 욕으로 답했고,
소리 지르는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고,
침묵하는(회피하는) 사람에게는 침묵했다.
영어에 영어로 답을 하듯, 각자 원하는(구사하는) 언어로 대답해 줬을 뿐이다.
와이프는 나에게 "안사회적인격" 또는 "사회안적응자" 기질이 없었다면 나 역시 일찌감치 휘둘리고 말려들었을 거란다. 처가 식구들은 입맛대로 돌아가지 않던 내가 그동안 얼마나 거슬렸을까?
우리는 3년 넘게 거부 중이다.
아니 와이프는 평생 거부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그렇듯 제자리로 돌아와 없는 죄를 사죄하고 다시 기존의 질서를 회복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와이프는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3년 만의 대면,
구성원들 사이에는 자기의 입장을 위해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을 지어냈고 부풀렸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사실로 굳어져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처가 부모형제 모두 각자 어려운 성장환경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또 대물림을 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우리가 3년 넘는 시간을 보내며 어떤 방식으로 호소해도 '구조적으로', '기능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건 그거다. 와이프도 이제는 자기의 가정에서 아내로 또 어머니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구에게 심리적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로 사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3년 전 대지진이 일어났고, 지금도 간간히 여진이 일어나고 있다. 여진이 일어날 때마다 여전히 힘들어하고 숨 막혀하지만, 그럴 때마다 와이프는 단단히 박혀있던 죄책감을 하나씩 뽑아낼 수 있었다.
"그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왜 또~"
지금도 우리는 가끔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이 말은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맞다. 이제는 싸운다기보다 서로 투닥거리는 수준으로 변했다. 내가 와이프의 상처를 건드릴 의도가 없다는 걸 와이프는 이제 안심하고 깊이 받아들였다.
결혼한 지 만 15년
나는 이 사람을 더 알게 되었고, 더 신뢰하며,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보,
당신 정말 씩씩하게 잘 컸고, 잘 살아왔어요.
나라면 당신처럼 못했을 거야.
음,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나한테 바로 전화하지 그랬어요.
"저 당신 미래의 마누라인데요. 그냥 일찌감치 우리 결혼할까요?"라고 ㅋㅋㅋ
나보다 더 재미스트인 당신,
고생 많았어요.
나도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해요.
내가 더 잘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