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밝은 곳
문체실험실 첫 번째 글은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의 첫 단락입니다.
늦은 밤 카페 손님도 모두 돌아갔는데 노인 한 사람이 전등 불빛에 나뭇잎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 아래 앉아 있었다. 낮에는 먼지가 많이 이는 거리지만 밤에는 이슬이 내려서 그 먼지를 가라앉혀 주었기 때문에 노인은 밤늦도록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노인은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사방이 고요한 밤이면 미세하게나마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카페 안쪽에 있는 두 웨이터는 노인이 조금 취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노인은 좋은 손님이었지만 많이 취하면 돈을 내지 않고 가는 버릇이 있어서 그들은 노인을 경계했다.
제가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 문체와 유사해서입니다. 챗GPT말로는 그게 "행동주의"라네요. 그러니까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지 않고 보고 들리는 그러니까 감각할 수 있는 것만 쓴다고 해서 그렇대요.
헤밍웨이가 기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소설은 감각할 수 있는 것만 묘사한다, 나머지는 독자에게 해석을 맡긴다입니다. "빙산이론"이라고도 한대요. 일부분만 드러내고 감춰져 있는 빙산처럼요.
근데 읽어보니 아주 행동만 드러나지는 않네요. "낮에는 먼지가..." 부분은 판단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 줄 "노인은 밤늦도록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는 사실 내면의 서술입니다.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아니죠. "귀가 들리지 않았다."라는 사실도 우리가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을 통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거지 행동은 아닙니다. "미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는 것도 그렇고요. "좋은 손님"이라는 것 역시 누군가, 뭐 예를 들면 웨이터들의 평가지 실제로 그러한 행동으로 묘사된 건 아니네요. 그리고 "경계했다"는 것도 평가네요.
저는 이러한 정보들, "밤늦도록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귀가 들리지 않았다.", "미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손님", "경계했다"는 정보들을 완전히 행동으로 묘사하고 싶습니다.
1. "밤늦도록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좋아했다는 사실 개인이 와서 말하기 전에는 그걸 좋아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노인이 웨이터들에게 와서 표현할 법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정보가 드러나니 적당한 선에서 묘사를 해보고 싶네요. 이렇게요.
카페 전등 불빛에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아래에는, 한 사람뿐이었다.
이렇게 묘사하니 뭔가 밤늦도록 앉아 있는 사람, 일종의 쓸쓸함, 그런데 뭔가 계속 그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 느낌적인 느낌은 드네요. 맘에 듭니다.
2. "귀가 들리지 않았다.", "미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것도 정보입니다. 뭔가 웨이터들이 이 노인을 부르지만 듣지 못하는 걸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웨이터 A는 남자를 불렀다.
"이제 영업 끝났습니다!"
남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영업 끝났다고요, 어르신!"
남자는 여전히 거리를 바라봤다.
"어르신!"
웨이터 B의 목소리가 카페 바닥을 진동하자, 남자는 웨이터들에게 몸을 반쯤 돌렸다.
"어, 알고 있다네. 여기, 브랜디 한 잔만 더."
오 괜찮네요. 뭔가 웨이터들과 대화를 통해서 역동도 생기고, 웨이터들은 약간 짜증이 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노인은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죠. 아니면, 뭔가 깊이 생각에 잠겨있거나 여하튼 그건 독자의 해석에 맡기고요. 이 부분이 행동주의의 뭐랄까 장점 같은 건데, 보여줄 수 있는 것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독자 각자의 해석에 맡기는 거니까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이게 더 재밌거든요. 다 보여주면 재미없잖아요.
"몸을 반쯤 돌려"니까 알아듣기는 한다 뭐 "미세하게" 이렇게 볼 수도 있으니까요.
3. "좋은 손님"
이것도 평가에 해당합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손님일까요? 뭐 사람들마다 해석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웨이터 입장에서 봤을 때 "좋은 손님"은 제 때 제 때 집에 가고 (노인은 여기 해당 안 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먹고 마신 것에 대해서 결재를 꼭 하고, 술 취해 난동 부리지 않고 등이 있겠네요. 아니면 웨이터의 얘기를 잘 들어줄 수도 있고요 (요건 유럽/미국 문화상 웨이터들과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니). 그런데 뒤에 돈을 가끔 안 내고 갈 때가 있다고 해서 웨이터들이 긴장을 한다고 하니, 만취하지 않으면 돈을 잘 내고 가는 사람을 "좋은 손님"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고요. 그래서 웨이터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듣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정도? 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어르신!"
웨이터 B의 목소리가 카페 바닥을 진동하자, 남자는 웨이터들에게 몸을 반쯤 돌렸다.
"어, 알고 있다네. 브랜디 한 잔만 더."
웨이터 A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게 마지막입니다."
웨이터 A는 남자에게 브랜디를 들고 다가왔다.
어떤 가요? 전 약간 영화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좋네요.
그럼 이걸 모두 종합하면 이렇게 쓸 수 있겠네요.
카페 전등 불빛에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아래에는, 한 사람뿐이었다. 지난주에도,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 남자뿐이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가리켰다. 남자의 시선은 이슬이 내린 거리를 향했다. 늦은 오후까지만 해도 거리에는 먼지가 날렸지만 이젠 아니었다. 남자의 두 뺨은 붉으죽죽했다. 눈가 주름과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
웨이터 A는 남자를 불렀다.
"이제 영업 끝났습니다!"
남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영업 끝났다고요, 어르신!"
남자는 여전히 거리를 바라봤다. 손가락의 힘줄과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어르신!"
웨이터 B의 목소리가 카페 바닥을 진동하자, 남자는 웨이터들에게 몸을 반쯤 돌렸다.
"어, 알고 있다네. 여기 브랜디 한 잔만 더."
손은 테이블을 두드렸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웨이터 A가 긴 숨을 내쉬었다.
"어르신, 그럼 이게 마지막입니다."
웨이터 A는 남자에게 브랜디를 들고 다가왔다.
그래서 제가 쓴 걸 헤밍웨이랑 어떻게 다른지 챗GPT에게 물어봤습니다.
전반적 스타일의 총평:
헤밍웨이는
건조, 극단적 절제, 감정 없음, 단단한 직선, 행동 중심, 여백이 큰 스타일이고요.
반면 제 문체는
건조+얇은 시적 결, 절제하되 세밀한 디테일, 감정의 그림자를 얇게 남김, 반복괴 쉼표가 리듬을 만듦, 컷 편집 같은 진행방식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저는 헤밍웨이가 화자의 해석이 들어가지 않냐 내건 없다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챗GPT답변이 헤밍웨이는 설명적 화자 (위에서 예를 든 장면)가 존재하지만 감정을 해석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반면, 제 문체는 헤밍웨이보다 훨씬 투명한 카메라에 가깝다고 하고요. 저는 관찰 가능한 디테일, 예를 들어, "붉은 두 뺨", "입꼬리의 이동", "손의 떨림", "바라보는 방향", 그리고 "반응의 지연"으로 묘사를 했다고 하네요.
챗GPT의 결론은 헤밍웨이보다 더 행동주의에 가깝고 더 카메라적이라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읽히시나요?
개인적으로는 제 문체가 더 재밌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