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베카> 관람 후기
뮤지컬 <레베카>는 동명의 영국 소설 『레베카』를 원작으로 하는 오스트리아 원작 뮤지컬이다.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인 ‘나’가 영국 부호 ‘막심 드 윈터’와 만나 결혼하여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뮤지컬 <레베카> 10주년 기념공연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8월 19일부터 11월 19일까지 상연 예정이었으나,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에서 12월 14일부터 2024년 2월 24일까지의 앙코르 연장 공연이 확정되었다. 본인은 작년 9월 19일 밤 공연을 관람했다.
<레베카>는 막장이라고밖에 표현되지 않는 스토리에, 무대 세트가 특출 나게 거대하거나 화려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10년간 거의 매년 공연해 온 이 작품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무어냐, 그냥 재밌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은 언제나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의 저울질이다. <레베카>의 경우 냅다 대중성에 스펙 몰빵한 작품이다. 극으로서의 내실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토리라인에 적절한 유머코드, 그리고 절정의 장면에서 확 터져 나오는 카타르시스 덕에 건강식이 아닐지라도 꾸준히 사 먹게 되는 간식거리가 된 것이다. 본인은 오히려 이런 이유로 <레베카>를 고평가한다. 어설픈 서사와 신파는 과감히 포기하고 깔끔하게 오락성이라는 확실한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군것질이라면 지독하게 맛난 편이 먹고 나서 훨씬 만족스러운 법 아니겠나.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기생충>처럼 깊이 있는 영화가 있는 반면 아무 생각 없이 가족들끼리 웃으면서 들어가 웃으면서 나오는 <극한직업> 같은 영화도 있는 법이니.
본인이 생각하는 <레베카>의 키워드는 단연 ‘전율’이다. <레베카>의 하이라이트는 2막 초반 ‘나’ 앞에서 본색을 드러낸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동명의 넘버 ‘레베카’인데, 사실 ‘레베카’라는 넘버는 극 전반에 걸쳐 4~5번 리프라이즈되며 해당 장면은 ‘레베카 Act.2’라고 불린다. 옥주현 배우의 700만 조회수 시상식 무대로 유명한 이 장면은 댄버스 부인 역 배우의 폭발하는 고음으로 극의 텐션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명장면으로, 넘버가 끝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가 주는 고양감은 전율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이외에도 댄버스 부인은 등장하는 대부분 장면에서 신 스틸러로 활약하며, 배우들의 가창력에 힘입어 전체적으로 지루할 틈 없이 빠른 템포로 극이 진행되기에 늘어지는 장면 없이 밀도 있게 텐션이 유지되는 편이다.
<레베카>는 웅장한 앙상블들의 합창, 지붕 뚫는 배우들의 성량, 다인원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현장감, 하지만 영 아쉬운 전개 등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아주 전형적인 현대 대극장 뮤지컬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누구라도 재밌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0년간 맨덜리를 지켜온 신영숙 배우의 댄버스 부인을 놓칠 수 없어서 이번 시즌의 <레베카>도 보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 집중력 있게 보고 와서 아주 재밌었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는 사랑의 힘'이라든가 '레베카를 둘러싼 맨덜리의 미스터리 추리극'같이 거창한 어떤 주제를 생각하고 볼 만한 건 아니고, 단순히 재밌다고 소문난 드라마 한 편 보러 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가창력만으로도 충분히 눈과 귀가 즐겁다. 가장 유명한 넘버 '레베카'를 포함해 현장에서 듣지 않고서야 그 전율의 반의 반도 채 다 못 느낄 요소들이 많으니, 한 번쯤은 보는 걸 추천하는 뮤지컬 중 하나다.
여담으로 관람일과 후기 작성일이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뻘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