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싶지 않은 구석이 있다
십대가 되어 시각장애 판정을 받는다는 건 한 사람의 생에 얼마나 큰 변곡점이 될까.
조승리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내 시골 벌판의 자유가 떠오른다.
시골은 언제나 안전하지 않다.
늦은 저녁 박쥐가 집 안으로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고,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려 타는 일도 예사다.
몇 킬로미터나 되는 일반국도의 끄트머리를 밟아 작은 걸음으로 학교든 집이든 걸어가곤 했다.
차와 스치듯 부딪힐 뻔하거나 벌에 쏘이는 일도 그저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해가 지면 “지나가나 보다”, 바람이 매서워 살갗이 갈라지면 “갈라지나 보다” 하며 흙밭에 굴러다니던 어린 시절이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 파릇하게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 안식이 찾아온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1분을 아까워하며 산다.
기다리는 것도 싫고, 일정이 바뀌는 것도 싫고, 착오가 생기는 것도 싫다.
예보가 틀리는 것도 싫고 심지어 모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싶어 한다.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아기와 함께 성장하다 보니 밀어내고 정리해 두었던 촌스러운 옛날이 자꾸 떠오른다.
예측되지 않는 자연 속에서 웃음도 눈물도 풍성하게 자라났는데 어쩌다 우리는 틀리면 안 되고, 증명하고 인증해야 하는 효율과 성과의 삶을 살게 되었을까.
눈가에 잔주름이 생기고 검버섯이 늘어가고 작은 사고에도 내가 덤덤해질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조금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는 걸까.
아무튼, 내 안에는 잃고 싶지 않은 구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