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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Jul 16. 2023

야근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판교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그날 오후 3시에 갑자기 뚝 떨어진 서비스 소개서 리뉴얼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이상하게 쌩쌩했다. 조금 변태 같지만, 묘하게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아침에 집을 나온 지 17시간 만에 돌아가는 건데 왜 이렇게 신나는 거지?




야근을 대하는 내 마인드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이전에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여기던 것에서 ‘잘만 하면 생각보다 보람찬 일’이라고 말이다. 어차피 칼퇴했어도 몇 시간 집에 일찍 가는 것뿐이고, 저녁 챙겨 먹고 남는 시간에 넷플릭스 보면서 늘어질 것이 뻔했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 다음 날을 위해 널브러지며 쉬는 것도 중요하다. 내 말은 ‘칼퇴’를 위해 회사에 두고 온 일을 생각하며 찜찜함을 느낄 바에는, 휴식을 잠시 보류하고 남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거의 transformation(전환)의 수준인데, 평소 나는 야근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 한 달 동안 야근한 한 횟수가 이전 회사에서 1년 동안 야근한 횟수보다 많다는 것만 봐도 이전에 얼마나 몸을 사렸는지 알 수 있다.  


신입, 경력 불문하고 입사 후 첫 3개월은 빠르게 적응하고 성과를 보여주며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오늘 내 끝내야만 하는 급한 일이 아니더라도 남은 일을 마저 처리하고 한 시간 정도 집에 늦게 가는 건 그다지 크리티컬 해지지 않았다. 6시에 칼퇴를 해서 워라밸을 지키는 것보다 질질 끌지 않고 맡은 일을 처리하는 것의 가치가 더 커졌다.


물론 속물적인 면도 한몫을 했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비포괄 임금제라(이전 회사는 포괄) 초과 근무한 만큼 결국 보상으로 돌려받는 것을 알기에 야근을 해도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더 일한 만큼 보상받고, 책임감 있게 일한 것으로 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을 테니 나로서는 더 이득 아닌가.


사실 노동시간이 OECD 회원국 중 5위, 중남미 국가를 제외하고는 1위인  한국에서 이런 나의 사색이 유별난 것처럼 보일 수 있기도 하다. 새로 옮긴 회사는 워라밸이 좋은 편이고, 리더십들은 야근하더라도, 그 밑의 직원들에게는 암묵적인 강요가 전혀 없는 분위기다. 정말 일이 많거나, 급한 중요한 일이 생긴 날 어쩌다 한 번 야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마치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매일매일 일이 넘쳐나서 야근을 무조건 해야 한다면, 자정이 넘는 시간에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온다면 과연 이런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야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과거의 안 좋았던 경험 때문에 형성된 것 같다. 22살, 인턴으로 첫 사회생활을 했던 한 비영리 재단에서 첫 출근 날이 아직도 생각난다. 5시 50분부터 슬슬 컴퓨터를 정리하며 6시가 되길 기다렸다. 대망의 6시가 되었는데, 침묵이 흘렀고 아무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몇몇 그나마 칼퇴하던 분들은 죄인처럼 조용히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떴다. ‘아, 계약서상에 적힌 6시는 퇴근 시간이 아니구나’ 아직 세상 물정 몰랐던 대학생은 그때야 현실을 깨달았다.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단지 사수, 팀장님이 아직 퇴근을 안 했다는 이유로 눈치 보며 하릴없이 깨작깨작 업무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 출근 시간은 칼같이 지키면서 왜 퇴근 시간은 지켜지지 않는 건지 억울했다.


비효율적인 야근 문화는 두 번째 인턴십을 했던 스타트업에서도 이어졌다. 심지어 더 심했다. 뭔가 혁신적인 조직 문화를 기대했는데, 막상 까보니 전형적인 군대 문화를 가진 곳이었다. ‘다나까’체를 쓰라고 강요받았고(믿기기 않겠지만 진짜다) 출근은 10, 퇴근은 7시였지만 밤 10시 전에 퇴근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나는 집이 멀었던 축에 속해서(편도 2시간) 막차를 핑계로 10시 퇴근이 허용된 것이었고, 다른 인턴 동기들은 12시 넘어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이 많던 적던 어차피 집에 늦게 갈 것을 아니까 ‘7시가 넘어서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서 1시간 정도 느긋하게 식사하고 돌아와 8시부터 다시 슬슬 일을 해볼까?’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문화에 억지로 수용되며 점점 야근을 혐오해 갔다.


거의 4년을 일했던 직전 회사는 다행히 워라밸이 보장된 스타트업이었다. 인턴 경험을 거치며 피해 의식이라도 생겼는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칼같이 퇴근 시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오늘 업무 종료’ 스위치를 켰다.


처음에는 칼퇴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 워라밸이 보장된 삶이 마냥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이러한 강박적인 워라밸이 오히려 내 성장의 걸림돌 같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각종 미팅과 커뮤니케이션들도 정신없는 코어 타임을 보내고, 모두가 퇴근하고 조용해진 사무실에 남아 찬찬히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집중하며 전략을 그리는 그런 시간들도 필요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았지만, 이미 칼퇴근에 익숙해진 몸의 리듬을 거스르기는 힘들었다.




이직을 하면서 나를 둘러싼 환경이 180도 바뀌었다. 비로소 야근에 대한 내 관점을 재정립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는 알겠다. 나는 야근 자체를 그저 싫어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눈치 때문에 휘둘리는 불필요한 야근이 싫었던 것이다. 내가 그 중심에 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리는 야근은 나의 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Photo by Mitchell Lu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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