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쇤 Jul 02. 2023

이직하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

이렇게 더 큰 균형을 찾아가고

이직한 회사에 출근한 지 3주가 지났다. 9시 출근을 위해 6시에 기상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고(이전 회사는 10시 출근이었다), 9호선과 7호선이라는 선택지 가운데 A/B Test를 통해 최적화된 노선을 찾았고, 새로운 헬스장에도 등록했다. 환경이 바뀌면서 잠시 균형을 잃었지만, 새로운 루틴을 만들며 더 큰 균형을 찾는 과정 중에 있다. 


완전 달라진 통근

2배 이상 늘어난 통근 시간이 이직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회사는 통근이 힘들기로 악명 높은 판교에 있다. 이전 회사는 1호선 타고 환승 없이 20분만 가면 되었는데(앉아서 갈 때도 많았다), 판교에 닿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간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지하철 환승도 해야 하고 계속 서서 가야만 하는, 육체적으로도 피곤한 경로를 겪어야 한다. 게다가 신분당선이 어찌나 비싼지; 하루 약 7천 원의 돈이 교통비로 나가고 있다(한 달 교통비를 계산하면 그저 눈물이 난다). 


늘어난 통근 시간을 계산하면 24시간 중에 2시간, 일주일로 하면 10시간, 한 달로 치면 총 40시간이다. 피곤한 상태로 길에서 그저 때우며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해야 되는 일을 처리하며 배움을 채울 수 있는 생산적인 시간으로 활용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출근길에는 주로 팟캐스트를 듣고, 뉴스레터를 읽고, 뉴스 기사를 읽는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는 출근길 시간이 짧다 보니 대충 읽거나 못 읽는 뉴스레터도 많았는데, 늘어난 시간 덕분에 4-5개 정도의 뉴스레터를 꼼꼼히 읽게 되었다. 


퇴근길에는 하루를 되돌아보며 일기를 쓰고, 유튜브 또는 OTT로 영상을 본다. 평소 시간 컨트롤을 우선시하여 유튜브를 멀리했는데(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빠지면 어느새 1-2시간이 훌쩍 지난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최신 트렌드나 유행어가 대부분 유튜브에서 파생되다 보니 마케터로서 트렌드에 너무 무지한 것 같은 무능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고, 끝맺음이 명확하다 보니 1-2개 정도의 영상을 보며 부족했다고 느낀 부분을 채우는데 제격이 아닐까 싶다. 대신 단순 오락성이 강한 영상만 편식하지 않기 위해 재테크, 자기 계발, 스포츠 등 몇 개의 카테고리를 정하고 해당 분야에서 유명한 채널의 영상 몇 개를 일부러 시청하여 알고리즘을 유리하게 길들여 두었다. 


생각보다 다를 것 없는 업무

이직한 회사는 전국의 셀러들이 실시간 진행하는 라이브를 시청하면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팬커머스 기반의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우리 회사가 보유한 라이브커머스 솔루션을 기업에게 제공하는 B2B 사업부 소속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광고 분야에서 라이브커머스로 도메인은 완전 달라졌지만, 경력직으로 왔다 보니 사실 업무의 연속성 측면에서 보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리드 획득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다. 물론 타깃들이 가진 페인포인트가 다르다 보니, 이를 우리의 프로덕트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다른 차원의 질문에 답하며 고민의 결이 달라진 점은 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기존 회사에서는 팀 내 여러 명의 마케터들과 R/R을 나눴는데, 마케터가 나 한 명이라 SNS 관리부터, 콘텐츠 기획, 랜딩페이지 기획, 유료 광고 집행까지 진짜 일당백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는 것. 이전에는 당연시 여겼던 동료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왕 모든 걸 다하게 된 거, 찐 올라운더(all-rouonder) 마케터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조직마다의 고민과 문제는 있다

이직한 회사는 조직 규모와 투자 측면에서는 이전 회사보다는 훨씬 큰 편이다. 하지만 둔화된 성장 속도, 이탈하는 고객 등으로 인한 고민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요즘 어렵지 않은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조직의 규모가 크던 작던 구성원들이 고민하는 지점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 하고 있는데 하필 내가 입사한 첫 주에 기존 고객이 이탈하는 사건이 2건이나 발생했다. 


내부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고객 이탈과 프로덕트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곤두선 분위기에서 당장의 매출 증대를 가져다주지 않는 콘텐츠 마케팅에 돈을 쓰며 열심히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지 살짝 위축되었다. 


그런데 프로덕트는 그 특성상 개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그동안 비즈니스 사이드에서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프로덕트가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 사람은 살 것이다. 우리 솔루션을 도입할만한 잠재고객이 끊이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오히려 이상하게 신이 났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차근차근 성공사례를 만들어 간다면, 그 끝에 얻는 성취감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을 것 같았다.  


호기심

마지막으로 이직한 뒤로 가장 좋은 점은 메말라갔던 호기심이 다시 살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회사의 비즈니스, 낯선 동료들, 기존 사업 및 업무에 대한 히스토리 등. 모든 것이 새롭고 처음인 나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모든 신경과 감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전 회사에서는 근속 거의 4년을 바라보는 고인 물이었기에 질문을 당하는 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입장이 바뀌었다. 첫 3개월 기간 동안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슬랙을 뒤져 자료를 찾으며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회사에서 결국 모든 일은 타 부서, 동료와의 협업으로 완성되기에 동료들과 얼굴을 트고 한 번이라도 말을 섞어보는 것이 내가 맡은 일을 더 잘하면서도 조직 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데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밥 먹자고 말해주길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매주 친해지고 싶은 동료, 상사들에게 슬며시 슬랙 dm으로 점심 식사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통째로 바뀐 환경에 꽤나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미처 몰랐던 미지의 영역을 마주하고 도전하며 느끼는 기쁨이 크다. 퇴사를 한 가장 큰 계기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이었는데 이직은 약효가 있는 알맞은 처방전이 맞았다.  


Photo by Random Institute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