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를 가장 많이 울렸던 드라마를 꼽자면, 단연 1등은 '폭삭 속았수다'가 아닐까.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고, 내 마음에도 역시 여운이 깊게 남았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무한한 내리사랑, 부모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자식의 사랑, 연인 간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이웃 사이에 오고 가는 연민과 연대까지. 사랑이 위, 아래 온방향으로 퍼져나가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특유의 한국적 신파 없이 담백하면서도 서정적인 탓에 별거 아닌 것 같은 장면에도 감정이 툭 건드려져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광례, 애순 그리고 금명까지 3대 모녀의 서사를 담은 '폭삭 속았수다'에는 2번의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애순과 관식의 결혼식, 그리고 금명과 충섭의 결혼식. 특히 금명의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을 앞두고 '수틀리면 빠꾸'라는 관식의 대사는 언제나 딸 뒤에서 묵묵히 버텨준 아버지의 한결같은 사랑을 너무도 잘 그려낸 장면이었다. 펑펑 우는 아이유 배우의 연기를 보며 나도 같이 펑펑 울었다. 그야말로 결혼 장려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최근에야 결혼 건수가 반등하며 늘어났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혼인 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는 참 많다.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만나 든든한 가정을 이룬다는 기쁨보다는, 치러야 하는 결혼식이라는 의식과 그를 위한 준비 과정이 부담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 치솟은 서울과 일부 수도권 동네의 집값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며 금수저 부모를 둔 것이 아니라면 부부로서 발걸음을 떼는 첫 순간부터 빚으로 시작한다. 그뿐이랴. 결혼을 한 뒤부터 설날, 추석 등의 명절이 더 이상 쉬는 날이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딸과 아들이 아닌, 며느리와 사위라는 법적으로 부여된 자아에 지어지는 가족적 책임과 의무 앞에 숨이 막힐 것 같다.
결혼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부모님 세대와는 다르다. 비교적 풍족하게 먹고 교육받으며 자란 MZ세대에게는 가정이라는 가치 외에도 커리어, 취미, 사회적 관계 등의 다른 가치들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으로 여기며 결혼을 통해 얻는 것이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판단이 되면 가능한 미루거나 피하고 싶은 이벤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할 결심을 했다. 약 한 달 뒤면 나만의 든든한 가정이 생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독립적이며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내 곁에 착 붙어있기를 갈구했다. 연애 공백 기간에는 본능적으로 내 옆을 채워줄 반쪽을 찾아다니며 쓸데없는 에너지를 허비하기도 했다. 방황은 그만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정착하여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나만의 든든한 울타리를 쌓고 싶었다.
그렇게 듬직한 현재의 남자친구를 만났고 현실적이고 책임감 높은 모습에 반해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두드린 끝에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결혼 준비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웨딩홀 대관부터 스드메 계약, 긴장되었던 상견례 그리고 신혼집 마련까지. 하지만 그 험난한 과정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결혼을 해야만이 맛볼 수 있는 삶의 행복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사회생활 시작한 이후로는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원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진정한 홀로서기를 준비한다. 자연처럼 아낌없이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내어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결혼을 계기로 우리 가족이 하나로 똘똘 뭉치고 더 가까워졌다.
남편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자리마다 나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시며 환대를 받았다. 결혼을 통해 얻은 새로운 가족은 내가 며느리로서 챙겨야 하는 부담이 아닌, 돈으로 절대살 수 없는 든든한 내 편의 지원군들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모든 건 결혼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행복이다. 새로운 인연들 속에서 피어날 관계와 미래의 추억들이 벌써 기대가 된다.
사진: Unsplash의Foto Pett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