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부 공중분해에서 배운 교훈

제품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by 재쇤

최근 회사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내가 속했던 팀이 공중분해되고, 기존 사업이 다른 사업부로 흡수된 것이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재수 없는 일로 여길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나의 실패’이기도 하다. 이번 일을 겪으며 얻은 뼈아픈 교훈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어느 날 사라진 우리 팀


우리 회사는 3개의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사업부 안에 개발, 세일즈, 마케팅 등 기능이 모여 독립적인 목적 조직으로 운영된다. 그중 내가 속한 사업부는 안타깝게도 회사에 기여하는 매출액이 가장 적었다. 그러나 사업부 중에서 우리 팀워크가 제일 좋은 편이었다. 구성원들은 제품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달렸고, 실제 숫자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작년 하반기에는 매월 평균적으로 15%씩 매출 규모가 오르고 있었고, 11월에는 최대 실적을 경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업 이익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 인당 벌어오는 매출이 5천만 원도 되지 않았으니까.


사업부 해체라는 운명의 순간 사업부의 리더가 퇴사하면서 찾아왔다. 경영진은 사업을 이끌 새로운 리더를 채용하는 대신, 리더를 채용할 필요를 없애버렸다. 명목상 사업 유지는 하되, 더 이상의 마케팅이나 인력 투자는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업부 인원을 다른 사업부로 나눠서 재배치되는 걸로 결정되었다.


선택의 순간을 되돌아보며


내가 이 사업부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불과 6개월 전이다. 당시 마케팅팀은 기능적으로 존재하며 3개의 사업부와 협업을 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사업부별 전담 마케터 체제로 기조가 바뀌면서, 내게는 2개의 사업부 중 한 곳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회사의 핵심 비즈니스를 이끄는 사업부로 안정적인 매출액이 나오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신사업으로 아직 매출액 규모는 작았으나 성장 가능성이 컸다.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존경하는 리더가 있었고, 구성원 간의 화합이 너무나 잘 맞았으며, 무엇보다 제품이 풀고 있는 '고객의 문제'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유의 청개구리 정신도 발동했다. 안정적인 비즈니스보다는, 더 많은 도전이 있는 길을 선택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제품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니 어떻게든 이 좋은 걸 알리고 싶은 마음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실행했다. 고객 인터뷰를 통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었을 때는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는 확신을 들게 했다.


하지만 팀이 제품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비즈니스는 지속될 수 없다. 결국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살아남는 것이 시장의 진리 때문이다.


냉정한 현실: 시장의 크기


이쯤에서 우리가 처했던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자. 사업 성과는 매달 점점 나아지고 있었지만, J커브 성장*은 솔직히 불가능해 보였다.


*일시적으로 실적이 하락했다가 다시 반등하여 큰 폭의 성장을 만들어내는 현상, 하락 후 갑자기 우상향으로 치솟는 그래프가 마치 알파벳 J와 비슷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장의 크기였다. 우리는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한 '플랫폼 비즈니스를 위한 파트너 정산 자동화'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다. 플랫폼 정산 담당자는 매주, 매월 파트너들에게 정산을 할 때 정산금 계산과 세금계산서 발행, 지급 과정에서 엄청난 수작업에 시달리는데, 이게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였다.


국내 B2B SaaS 시장 규모는 2025년 기준 약 2조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B2B SaaS 시장 안에서도 '정산 자동화'는 핀테크의 일부분에 불과한, 매우 협소한 영역이었다. 백오피스는 돈을 벌어오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 사이즈를 막론하고, 업무 개선을 위한 제품 개발은 늘 후순위에 있으며, 비용 투자도 보수적으로 집행된다.


관련 통계를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좁은 문을 두드리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하위 서비스로 비교할 때는 경쟁사가 있었으나 통합 기능 스펙으로 봤을 때는 우리 솔루션을 대체할만한 경쟁사는 없었다. 처음에는 이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다. 국내 유일무이한 솔루션으로 우리를 포지셔닝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경쟁사가 없었다는 건 그만큼 시장이 작다는 방증이었으며 불편해도 큰 문제없이 비즈니스를 운영하던 잠재고객에게 문제 인식을 주입하고, 정산 자동화의 필요성에 대해 시장을 지속적으로 학습시키는 것이 필요했음을 의미했다.



객단가와 고객 세그먼트의 한계


시장의 크기가 작다면, 객단가(ARPU)라도 높았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의 제품을 주로 구매하는 고객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초기 플랫폼 기업들이었고, 이들의 지불 능력은 매우 낮았기 때문에 객단가는 자꾸 낮아져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계약 체결 후 온보딩을 한 뒤, 서비스 종료 & 폐업을 이유로 이탈하는 비율이 높았다. 아무래도 플랫폼 비즈니스 특성상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수익화를 할 수 있는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성숙기에 도달했고, 더 이상 성장성만 보고 벤처 투자를 받는 시기도 지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버티기 어려운 많은 초기 플랫폼이 폐업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서비스에 불만족해서 이탈하는 거라면 제품을 개선하면 해결되는데 '서비스 종료로 인한 계약해지'가 그 이유이다 보니 우리도 어찌할 수가 없어서 힘이 빠졌다.


고객 세그먼트를 분석해 보면 근본적인 한계가 명확했다.


큰 플랫폼 (Enterprise): 자금과 인력이 충분한 대형 플랫폼들은 외부 솔루션을 도입하기보다 보안과 커스터마이징 이슈로 자체 구축을 선호한다.

영세 기업 (Micro): 너무 영세한 기업들은 솔루션을 도입할 비용은커녕, 이를 연동할 개발 인력조차 없다.


결국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시장은 자체 구축할 여력은 없지만, 솔루션 비용은 낼 수 있는 '애매한 중간 사이즈'의 기업뿐이었던 것이다. 국내 시장만 타깃하고 있으니 그 숫자가 얼마나 작았겠는가.


결론: 제품에 대한 사랑은 필요조건일 뿐


우리 사업부의 여정은 이렇게 갑자기 끝이 났다. 훌륭한 팀, 그리고 매력적인 제품. 이 모든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업 자체를 철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케팅과 세일즈에 리소스 투입 없이 기존 고객만 유지하는 건 산소호흡기를 차고 생명을 연명하는 상태와 다를 바 없다.


이번 경험을 통해 뼈아픈 교훈을 새겼다.


"제품/서비스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제품이 속한 그 시장의 크기를 봐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과 팀이 있어도, 시장 자체가 작고 고객이 지불할 능력이 없다면 비즈니스는 지속될 수 없다.


마케터로서, 다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는 '제품의 매력'보다 '시장의 매력'을 먼저 냉정하게 따져볼 줄도 알아야겠다.



Photo credit to UnsplashKatelyn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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