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1)
회사생활을 한 지 어언 3년, 나에게 매우 큰 변화가 있었다.
수입이 생겼고 내 돈으로 자취를 해보고 돈도 모으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살이 20kg 가까이 쪘다는 무시할 수 없는 부정적인 변화가 생겨 버렸다.
이러한 변화를 나는 그동안 계속 무시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나한테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지니까. 거울도 애써 안보고 사진도 잘 안 찍었다. 하지만 이번 아테네 여행을 하면서 근처 관광객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난 뒤 너무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나와 사진에 찍혔던 내가 너무 다르게 나왔기 때문이다. 볼살은 통통하다 못해 뚱뚱해졌고 뱃살과 등살은 축 늘어졌으며 턱선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여행을 와놓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행지는 나에게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 SNS에 올릴 사진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니지만, 나도 멋진 여행 사진 하나는 건지고 싶었다. 정작 근데 모델이 별로니까 어떤 풍경 사진을 찍어도 내 기준에는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운동은 꾸준히 했는데 식단 조절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주기적으로 자행한 음주, 흡연 그리고 고칼로리 음식들을 드문드문 섭취하다 보니 살이 불어났고 타인이 보았던 나는 이런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니 몹시 부끄러웠다. 여행지에서 ‘진정한 나’를 마주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이딴 느낌인지는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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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 온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 때문이었다. 왜 아리스토텔레스 라는 철학자를 그토록 손에서 떼놓지 않았는지 굳이 추론해보자면 20대 때의 ‘대상애착’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너져가는 집구석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방구석에서 책을 읽는 것 뿐이었는데 그때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수사학/시학의 구절들이 엄청난 울림을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책의 특징은 대단한 느낌의 구절들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널려 있다는 점이다. 굉장히 중요한 문화 유산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아테네랑 비슷하다. 후대에 엄청나게 많이 인용된 중요한 문장들이 아무렇지 않게 서술되어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아리스토텔레스 책의 대부분은 혼자 보기 위한 강의 준비용 노트였기 때문에 딱딱하고 불친절하게 써 있다. 그러나 그런 불친절함이 읽는 자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준다.
과외가 잘렸을 때, 여자한테 차였을 때, 아버지가 아플 때, 어머니가 울 때, 군대에서 가혹행위 당했을 때, 취업에 실패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항상 옆에 있었다. 짧으면 5분 하루에 30분씩은 거의 매일 읽었던 것 같다. 그것이 일상 루틴으로 잡혀 있었으나 취업을 하고 난 뒤 어느새 손에서 놓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니 내가 기대어 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철학은 그저 개똥 철학처럼 느껴졌다. 너무 오바하며 살았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1년, 2년을 지내다 보니 몸이 변했다. 수면부족에 의하여 잠을 자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일상적인 짜증은 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지적 호기심의 말소‘ 였다. 과거에는 하나 하나 관심있는 것들이 많았다. 뉴스를 보더라도 책을 읽더라도 그런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다. 요즘에는 그냥 퇴근하고 방에 들어가서 쇼츠를 휙휙 넘기는 것만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테네에 충동적으로 왔다. 많은 사람들이 갈 거면 산토리니도 가고 터키도 들르지 그러냐는 말을 많이 하였다. 물론 그들의 의도는 이해하나, 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보기 위해 아테네를 들른 것일 뿐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굉장히 긴 휴가를 내었고 16시간 30분, 경유를 포함하면 20시간 30분을 걸려 아테네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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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아크로폴리스를 의례적으로 들린 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리케이온에 갔다.
...?
아무것도 없다. 그냥 빈 공터만 존재할 뿐. 그 이상 이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도 없다. 길고양이나 청소하시는 직원분들만 돌아다닌다. 모든 철학의 스승격이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자취가 이런 취급을 받는다니. 실망감과 허탈함이 감돌았다. 리케이온은 터만 있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정말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벤치에 혼자 앉아있었다. 날씨는 참 좋아서 멍하게 있었다. 11월 아테네 날씨는 10월 초 선선한 한국 가을 날씨와 같다. 안내 표지판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러던 중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리케이온이 아리스토텔레스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공간이라는 사실과 토론장 및 체육관으로 쓰였다는 정보가 혼재되어 있었다.
조사해 보니 체육관으로 리케이온이 먼저 쓰였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카데미아에서 쫓겨 난 뒤 리케이온에 들어갔다고 한다.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학원가 1타강사가 대표이사 선임이 불발되자 궁여지책으로 헬스장을 비롯한 복합상가 귀퉁이에 임대했다고 보는 걸로 생각해 보았다.
리케이온은 아카데미아와는 다르게 학생들과 산책을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소요 학파‘라고 불렸다고 한다. 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토론과 논쟁을 했는지도 이해가 좀 되었다. 주변 공간의 소음 때문에 드럽게 시끄러웠던 것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리케이온이 오늘날의 복합상가와 유사하다면 레슬링하면서 패대기치고 함성지르고 옆에서는 이상한 주제로 떠들고 있는 등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벽간/층간소음을 해결하고자 밖에 나와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의 애처로운 노력이 철학을 하는 새로운 방법을 우연히 개발시킨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원래는 아테네에서도 해당 부지에 큰 박물관을 지을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발굴 결과 리케이온의 흔적임을 알게 되자 계획을 취소하고 빈 공터로 지속시키는 것으로 확정시켰다고 한다. 신타그마 광장 옆의 개꿀 부지를 텅 빈 공간으로 결정시킨 것만으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가 오히려 상당하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리케이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향한 치열한 자세를 보여준다. 그는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긍정하며 플라톤과 대척점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플라톤은 철학을 수학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아무리 대단한 기하학자이더라도 일상 속의 지혜를 전부 깨달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플라톤이 시인들을 혹세무민하는 자들이라며 매섭게 비난하였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때로 시는 일반 대중의 아픔을 덜어내어 고통을 배출시키는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고 하여 최초의 작법서인 ’시학’을 쓰기도 했다.
리케이온은 철학을 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였는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는 그곳을 자신이 철학을 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바꾸었을 뿐이다. 사람들에 섞여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말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장소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장소에 들어가냐 보다는,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장소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인간에게 환경은 몹시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 만큼이나 불완전한 환경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그 환경을 자신에게 알맞게, 적절하게 설정할 수 있는 태도를 의지를 가지고 구성하는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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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들렀다. 엄청나게 대단한 전시물들이 귀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솔직히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거기서 거기인 것들이 많았다.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아테네 문명이 태어났고 이후에 어떤 어떤 고대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그걸 담을 만큼의 식견이 부족했다.
복슬복슬 털이 난 비슷비슷하게 생긴 그리스 아저씨들의 조각상들을 보며 언제 나가지 싶은 시간들만 보냈다. 문득 어떤 방에 들어 왔다.
그때 갑자기 너무도 특별한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다 지나치나 나한테는 특별한. 바로 한국에 있는 수많은 책표지에 인쇄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두상이었다.
사실 이 두상은 실존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로마 시대에 전승된 구절을 근거로 가장 비슷하게 만들어 낸 동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와 그를 잇게 해주었던 시각적 매개체이기 때문에 멍때리며 같은 자리를 빙빙 돌았다.
카메라를 들고 수줍게 셀카를 동상과 찍어봤다. 살이 불어난 뒤로 잘 찍지도 않았지만 꼭 한 번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미국 초딩 남자애한테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마주하는 사진을 찍었다. 깎이고 깎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두상과 퉁퉁해진 내가 더욱 크게 대비가 되었다.
집에 돌아온 뒤 사진을 보았다. 3년간의 노화와 비대해진 몸땡이는 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기간을 살아냈기에 얻은 증표(pistis)다. 가끔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우울감이 밀려올 때가 있었다. 나는 이제 대학생 때의 생기 넘치고 짱짱한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운동을 하고 몸을 가꿔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아카데미아에서 나온 아리스토텔레스가 리케이온을 임대받아 학원을 차렸다. 나도 대학교에서 나와 직장에 들어가 생계를 꾸리고 있다.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전지전능해 보였던 올림포스 신들도 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미래로 간다. 불완전한 몸을 이끌고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 최고의 좋음을 추구하기 위해.
현재의 내 모습이 밉지 않게 느껴졌을 때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구절이 떠올랐다. 아테네까지 큰 돈과 오랜 시간을 들여 왔기 때문에 지금은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께서 그 말을 직접 귀에 대고 했다고 믿는다.
“각자는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는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9권 1176b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