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 : 하늘 위에 지은 집

그리스 여행 (2)

by 허자
메테오라 출발 전 라리사역 근처 버스

메테오라 1박 2일 투어를 신청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테네만 가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산토리니를 가기는 귀찮고. Klook 어플을 보니 메테오라라는 곳이 있단다. 숙소도 따로 예약해준다고 하니 편하게 생각했다.

고 생각했는데 초장부터 난관이었다. 메테오라를 가기 위해서는 라리사역에 있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그런데 버스기사들 리스트에 내 이름이 없는 것 아닌가? 나를 인솔할 여행사는 meteora thrones라는 업체였는데 리스트에 니 이름이 없으니 알 바 아나는 듯 손을 휙휙 저었다.

버스는 8시에 떠나는데 7시 48분까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온 메일을 보여주며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기사 아저씨를 다그쳤다. 그러더니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알고보니 Klook어플로 예약한 사람 명단이 전부 누락되어있었다.

그러더니 다른 여행 업체인 meteora visit의 버스를 타라고 말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런 경우가 너무 잦아서 품앗이 하듯이 자리 남으면 급하게 땜빵을 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혼란과 불안, 느슨하지만 어쨌든 착착 진행되는 업무처리능력에 감탄하며 메테오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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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비가 많이 왔다.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간 사람들의 독한 광기가 더 체감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 들어와서 살 생각을 했지? 지금은 계단도 있고 응급구조세트도 있지만 옛날에는 그물로 묶어서 올라갔다고 했다. 수도사들은 성경만 읽는 샌님들이라고 생각했는데 클라이밍도 잘 해야 했었구나.

24개의 수도원은 현재 6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비잔틴 교회의 휘황찬란한 그림들과 엄숙 절제의 상징인 수도원이 뭔지 모르게 대비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름이 자욱하게 낀 사이 위로 머리를 삐죽 내민 수도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같이 투어를 신청했던 사람들 중에 한국인 선배님이 한 분 계셨다. 회사를 26년 다니시고 은퇴하신 뒤 감명깊게 읽으신 '그리스인 조르바' 여행지를 찍고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크레타 섬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묘지를 들르고 오셨다고 한다. 덕분에 저녁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선배님의 말씀처럼 피레우스 항에서 주인공과 조르바가 만난 느낌이 들었다. 산전수전을 겪은 중년의 직장인은 보통 넘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증권사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 배우며 메테오라의 명물인 양갈비를 뜯고 우조를 삼켰다.(저녁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날 우조로 속이 메슥거리나 조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이 거의 없고 채찍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후드를 뒤집어 쓰고 슬렁슬렁 뛰었다. 동네를 뛰어다니다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여기는 산골로 치면 거의 삼척급 오지인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크게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세계구급 관광지는 클라스도 다르구나.

절이나 교회가 관광지로 유명해진 걸 볼 때 이질적인 감각이 든다. 분명 저 곳은 '검약, 절제'를 상징하기 위해 지어졌을 텐데 오는 사람들은 죄다 FLEX를 하며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게시한다.

메테오라에 있는 동안은 이어폰을 빼고 바람소리 풀소리 고양이 잉잉대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그리스가 오스만의 지배에 있었을 때에도 동방정교의 명맥은 유지되었다. 물론 절대 주류는 될 수 없었다. 그냥저냥 2등시민 차별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이어갔다.

신앙심이 쥐톨만큼 있는 나도 '종교는 취미의 영역과 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유럽사람들은 어떻게 그 오랜 시간 Christendom에 갇혀 있었을까. 내가 보기엔 그지같은 시절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을 것이다. 고된 노동과 존재하는 계급적 차별을 묵묵히 견디기 위해서는 처한 현실 이상의 뭔가를 추구해야 한다.

예전엔 수도원이 하는게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도사들은 밖에 나가서 계몽을 하지도 않고 대단한 설교도 안한다. 헌금을 모아오는 '수익 창출'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저기 콕 박혀서 단절과 인내를 거듭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많은 것을 한다. 세속의 인간들이 추구하는 많은 것들을 추구하지 않아도 웃으며 행복할 수 있다는 복잡하고 간단한 진실을 간단하고 복잡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엄숙함이 일상에 매몰된 상태를 잠시 내려놓게 해준다.

어제 억수같이 내린 비로 인해서 메테오라의 절경인 일몰을 보지 못하였다. 허나 그 덕분에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또렷하고 큰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폭우가 만든 다리가 하늘 위에 지은 집과 땅에 붙어다니는 인간을 잠깐 동안 이어주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