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3)
과거 군복무 시절 운전직군 원사님과 당직을 섰던 적이 있다. 그 분은 궁금한 건 무엇이든 물어보라며 너그럽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부사관 아조씨들이 다 거기서 거기였던 지라 나는 내가 할 일만 묵묵히 했다. 그런데 그 분은 물어볼 것 없냐고 계속 물어봤다. 나중에는 제발 뭣 좀 물어보라는 식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았다. 인류학자의 자세가 되어 그 분의 출생, 결혼, 자녀, 노후 계획 등등을 쉼 없이 물어보곤 했다. 물어보고 물어보고 물어보다가 문득 궁금해서 이걸 물어보았다.
“당직사관님.. 질문 받는 걸 되게 좋아하시나 보네요.“
”아 그게.. 내가 사실 트라우마가 좀 있어.“
말인 즉슨, 본인이 부사관이 되기 전 공고를 나오고 카센터에서 소위 ‘기름밥‘을 먹으며 일을 했다고 한다. 몸으로 떼우는 대부분의 일은 굉장히 위험한데 가르쳐주지 않는 이상한 전통이 있다고 한다.
”사실 타이어에 바람 넣는 것도 배우지 않으면 못해. 그런데 그때는 물어보면 때리고 말해줬어. 가르쳐주지 않은 것도 가르쳐줬다고 우기면서 때리고. 그러다가 나 혼자 직접 골몰히 궁금해 해서 일을 하잖아? 그러면 왜 안 물어봤냐고 때렸어. 그 뒤에 나는 나보다 어린 애들이 사소한 걸 물어보더라도 친절히 대답해주자고 생각했지.“
누군가의 이상행동이 과거의 폭력 때문인 경우가 있다. 저 분의 경우 ’대답 집착증‘이 과거의 무지막지한 폭력 때문이라면 저건 충분히 사회에서 감내해야 할 수 있는 집착 증세라고 생각한다.
원사 아조씨의 말처럼, 질문이라는 것은 폭력을 부른다. 오늘날처럼 질문에 대한 대답이 편한 사회가 드물다. 콜센터에 물어볼 수도 있고, 몇년 전 까지만해도 지식IN이 그걸 대체했고 이제는 AI까지 대답을 친절하게 해준다. 하지만 위에서 말하는 ’질문‘은 그저 궁금한 것을 남에게 물어보는 행위이다. 인간 사회에서 질문은 ‘공격’의 역할을 한다.
질문을 하게 되면 질문을 받는 사람은 ‘대답할 의무’를 가진다. 부채(debt)의 정의는 ‘과거거래 및 사건의 결과로 미래의 자산을 이전 또는 용역을 제공해야 하는 기업에 부과된 현재의 의무와 책임’이다. 질문은 결국 한 마디로 타인에게 무형의 의무를 부과하는 행위이다.
상사가 부하 직원의 보고를 받을 때 질문을 한다. 국정 감사에서 국회의원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질의를 한다. 이 질문은 결국 공격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의 표면적인 의미는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아 더 나은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겠으나 내재적 의미는 상대의 빈틈을 찾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어른이 될수록 호기심이 없어지는 이유는 순수한 의미의 ‘질문’이 여러 사람들에게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근무시간 내에 나의 순수한 궁금증에 대응할 이유는 하등 없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을 가지게 될수록 적이 많아진다. 따라서 사회에 융화되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적당히 제어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AI가 발달되어 적당한 수준의 궁금증은 거기다가 풀어 버리면 된다.
AI도, 웹서핑도 개발되기 전의 고대 사회에 질문성애자 소크라테스 선생이 아테네에 살았다. 플라톤의 변명에 따르면 그는 아테네의 ‘민주적인’ 표결 절차에 따라 다음과 같은 죄명에 의해 사형이 선고되었다.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은 죄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
하지만 그의 이러한 죄명의 근원은 딱 하나다.
질문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질문한 죄
청년들은 자기 힘으로 획득한 것이 없고 혈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꼰대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젊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자들이 내는 갈무리되지 않은 질문은 소음 공해로 들린다. 기성 세대는 청년들에게 ”철없다“라는 단어로 모든 질문을 일축해버린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daimon에 따라 극도의 앎을 추구하였고 넘쳐나는 광기로 물어보고 물어보고 물어보고 물어봐서 당대에 존경받는 자들을 발가벗겨버렸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사약을 마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첫 구절 ‘모든 인간은 앎을 추구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자연인이 아닌 법인은 앎을 그닥 추구하지 않는다. 수익이 우선이니까. 자연인으로 살아야 하나, 법인으로 살아야 하나.
순수한 궁금증도 세상은 악의로 받아줄 수 있다. ‘몰랐다’고 인정하기 싫은 게 어른들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순수하게 세상을 독해하고 싶다.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