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그리스 여행 (4)

by 허자
피레우스항에 놓여 있는 테미스토클레스 비석

피레우스 항에 도착하니 산토리니가 가고 싶어 졌다. 엄청나게 큰 페리들이 관광객들을 이리 싣고 저리 싣고 있었다. 후회하면 밑도 끝도 없으니 볼만한 곳을 지도에서 슥 보았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무덤, 무덤이라기보다는 비석이 있었다.

그의 비석을 모셔놓은 공원에는 이 지역 주민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은 큰 공원이 있었다. 한적한 공원에서 시간이나 뻐기려고 사놓고 읽지도 않은 '플루타르크 영웅전' 테미스토클레스 부분을 읽으며 나무위키와 구글링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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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회사는 해외 사업과 국내 사업으로 노선이 갈린다. 아무래도 인력을 동원하는 방법, 접촉하는 사람들의 스타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런 전통은 꽤 오래되었다.

국제 정치도 해양 세력과 육지 세력으로 나뉜다. 흔히 해양 세력을 미국 및 서방 국가, 육지 세력을 소련과 중국의 구 공산국가로 나눈다.

뿐만 아니라 근대화 시기 일본과 중국도 해군이랑 육군이 파벌을 만들어 겁나게 싸워댔다. 바다와 육지는 인류 파벌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아테네는 대표적인 해양 세력으로 분류된다. 차후에 육지 세력의 대표주자인 스파르타랑 피터지게 싸웠다. 당시 아테네의 해군을 강화하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격퇴한 이가 바로 테미스토클레스이다.

그를 소개하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는 영예를 뒷받침해 주기에는 너무나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지방에서 올라온 흙수저 집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분 상승 스토리는 예나 지금이나 민중의 마음을 끌기에 제격이다.
그의 미천한 신분은 성공을 향한 열정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어렸을 때부터 정치를 하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싶어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아버지는 그의 호승심을 일찌감치 눈치 챘다. 그래서 바닷가에 버려진 난파된 선박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가는 민중이 한 번 버리면 저 꼴이 된단다."

아버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컸다. 그 결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수준의 공적을 냈다.

먼저, 아테네를 해양 강국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당시의 아테네 군대는 육군 위주의 병법과 체계가 우세했다. 그는 일찌감치 해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육군 병사들을 수병으로 만들어 당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군대를 개편했다.

이후 위와 같은 행보 덕에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제국 페르시아를 이길 수 있었다.
사분오열된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들을 규합하고 수적 열세에도 불구, 크세르크세스의 함대를 격파하였다.

또한 아테네가 민주정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전쟁 이후 도시와 항구를 묶어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이 나라의 실권을 갖게 고안했다. 그 결과 내륙국가의 최고봉인 스파르타가 전제군주제를 표방했던 것과 대비되게 아테네는 민주정의 대표 국가가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빛나는 것에만 집중한 채, 빛나는 자신의 모습이 타인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을 몰랐다. 커리어의 정점을 찍을 무렵 온갖 억까와 험담에 시달린다. 아버지께서 예언했듯이 쓸모가 없어진 거대 전함은 점차 부식되어 난파되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바친 아테네로부터 도편추방제 결과로 인해 추방되어 적국 페르시아로 도망간다. 자국의 영웅은 적국의 원수인 바, 크세르크세스 사후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테미스토클레스에 엄청난 금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런 나라에 그는 당당히 들어가 투항한다. 왕은 몇 마디 나눠보고 호승심에 반해 그에게 걸었던 현상금을 그에게 쾌척한다 ;; 어찌 보면 주인을 잘 찾아간 현상금인지도.

그 뒤로 페르시아 황제 앞에 바짝 엎드려 본전도 잘 챙기고 도지사급 직위도 받아 잘 산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는 아테네 공격의 명을 거절해서 진탕 마시고 자살했다 하는데 정사는 아니라고 한다. 원래 폐선도 고철값은 꽤 나간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비록 아테네 시민이 버린 전함이었으나 고철값을 톡톡히 쳐서 나쁘지 않은 여생을 보냈다.

피레우스 항에는 테미스토클레스 동상과 무명의 용사 기념비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무명의 용사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민중이 배를 움직이며, 그 민중이 국가에 힘을 부여한다."
크세노폰 '아테네인을 위한 정치체제' 1권 2절

아테네가 사랑하고 증오한 애증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다행히 그는 당한 억까보단 받은 사랑을 더 기억했다. 지금도 그는 피레우스 항에서 출항을 나가는 아테네의 무명 용사들과 민주 시민을 묵묵히 바라보며 지켜주고 있다.


피레우스항 무명의 용사 기념비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