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5)
그리스 여행을 갔다 온 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 그 중 2주를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지독한 몸살 감기를 앓았다. 왕복 40시간 가까이 되는 장시간의 비행, 막판의 열악한 숙소 등등이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리스에서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꽉 잡혀 살았기 때문이겠다. 그리스 고전과 철학에 대한 엄청난 깊이를 추구했던 과거의 모습이 여행 내내 내 머리 속을 갉아먹었다.
아테네를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8년의 대학생 신분 동안 탐닉했던 것 중 하나가 그리스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사회과학이었으니까.
철학에 대한 관심 단계를 나열해 보자.
(1단계) 가장 먼저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시중에 나와 있는 철학서들을 읽는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우울할 때 읽는 아리스토텔레스 등등.
(2단계) 그보다 더 깊이 있게 가려면 철학 원전서 중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들, 이를테면 천병희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책들 혹은 ‘번역가’ 분들께서 공역/중역하신 원전을 읽는다.
(3단계) 더 깊이 가면 특정 학자를 전공한 사람들의 번역서를 읽는다. 홉스로 박사를 받은 사람이 번역한 리바이어던, 아리스토텔레스 전공한 사람이 번역한 니코마코스 윤리학.
(4단계) 더 깊게 가면 철학사상연구소에서 발간한 고전 분석을 읽고 무료 대학 강의를 듣는다.
(5단계) 더욱 더욱 깊이 가면 이제 해외 논문들 및 인터넷 세계에 흩뿌려져 있는 고전 분석 책들을 읽는다.
학문은 저렇게 깊게 가는 게 맞다. 그런데 우리가 처한 사회는 굳이 저렇게 깊게 갈 필요가 없다. 매우 단순하게 말하면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중 ‘깊이’를 논할 것이 크게 많지는 않다. 누군가는 해양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도 해양수산부 장관이 될 수 있고, 반도체 산업에 관심이 없어도 반도체에 관한 일을 할 수 있다. 일이란 것은 결국 한정된 시간 동안 해당 조직이 기대하는 무엇인가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고, 그건 순간을 살아갔던 자들의 메뉴얼에 의지하면 된다. 연구와 공부의 깊이는 필요한 사람 외에는 별로 필요가 없다.
나는 무엇이든 깊게 가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얕고 넓게 하는 일에 매우 약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국영수와 같은 ‘주요 과목’ 성적은 매우 좋았으나 기술가정이나 미술 같이 억지로 보는 기말고사 암기 과목은 매우 약했다. 깊게 하지 않을 바에는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나은 거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깊이 있는 탐구, 특히 지난 20대 탐닉했던 인문학적 지식들에 대한 심화 학습을 하기에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이를 지도할 만한 사람이 없고 그걸 하다 보면 본업을 망친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을 접하기 두려웠던 것 같다. 접하면 뭐해? 어차피 깊지 않을 것인데.
아테네에 오니 그리스 고전에 빠졌던 나의 과거가 떠올라 관광을 하면서도 지식적 탐구를 미친듯이 했다. 고전에 대한 분석 글, 논문 등등. 숙소에 돌아오면 노트북을 키고 패드에 논문을 다운받아 책을 밤새 읽었다. 하지만 여행의 끝에 다다르니 다시 현실로 돌아왔어야 했다. 이제는 그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적당히 비정한 사회 속으로 다시 내 몸을 던져야 한다.
아.. 결국 나는 내가 관심을 가졌던 지식들에 대한 경지에는 이를 수 없겠구나 라는 탄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궁금해 하던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억지로 거두어야만 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매서운 현실이 상기되니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공부한 것들은 다 써먹을 곳이 있다는 어른들 말씀은 틀렸다. 적어도 기원전 늙은이들의 말싸움에 관심을 가진 것이 현실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 속에서 어머니와 전화를 했다. 그때 부모님이 전화기 너머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래도 너가 취직을 하니까 젊은 나이에 아테네를 2주나 가고 그런다.”
여행 경비가 거의 500 가까이 깨졌다. 만약 취직을 하지 않았다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와보지 않았을, 어찌 보면 죽을 때까지 오지 않았을 장소 같기도 하다.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아테네를 촬영한 적이 있다. 거기 나오는 지식인들도 여행 꽤나 많이 해보셨겠지만 아테네를 방문해보신 분들은 많이 없었다.
아테네라는 동네는 한국인들에게 썩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비행기도 장장 16시간 가까이 경유해서 와야 하고 막상 와봤자 크게 볼거리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아테네를 가고 싶다고 항상 얘기를 했다. 그냥 거기를 가면 막연하게 뭔가가 잘 풀리거나 위로를 받겠지 하는 생각들.
아테네는 관광 명소로 생각만큼 좋지는 않았다. 일단 도심 속 공기가 굉장히 별로다. 치안도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끔 관광객들한테 장난치는 양아치들, 그리고 관광지 구석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다가 깜짝 놀래키는 노숙인들이 꽤 많다. 길가다가 거지 아저씨가 손을 번쩍 들어서 돈 달라고 애걸복걸하기도 하고, 버스를 탔는데 표 감사원한테 표 없이 타다 걸려서 강제로 내리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좋았다. 길거리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 낙서들을 챗지피티로 해독하면서 동유럽의 정치 상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과 아소클레피오스 성소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며 의술로 몸을 치료하면, 극으로 마음을 치료한다는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이 녹아들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고려대학교의 입실렌티가 그리스 독립 전쟁의 영웅 입실렌티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밤에 맨 눈으로 그레피티 하는 아나키스트 활동가 같은 양반들을 보며 세상은 참 넓다고 생각했다.
기대가 충족된다는 것이 꼭 좋은 거라고는 볼 수 없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미래로 가는 우리는 과거의 기대를 방향 삼아 살지만 그때 조준했던 방향도 여러 고정관념에 씌어 있던 방향일 뿐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은 우리를 우리가 생각하고 바란대로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건 그런대로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식당에서 잘못 주문한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을 수 있는 것처럼.
글에 대해서도 조금 더 열린 자세를 갖게 되었다. 소설에서 상을 받는 사람들이 작법서 N권 읽는 독서 경진대회 수상자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보는 좋은 글들은 대체로 좋은 논문이 아니다. 비평은 쓰는 자의 것이지 연구하는 자의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쓰는 글도 대단한 깊이는 없다고 하더라도, 글인 이상 써졌기에 나에게는 가치가 있다. 글은 일단 쓰기로 마음먹고 그 다음 연구를 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정진하는 것이 아닌 정진하고 생각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제는 전처럼 인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탐닉을 자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해봤자 연구자들이 쓴 대중서들 가끔 읽는 수준. 하지만 그건 그런대로 괜찮다. 비록 지식에 대한 깊이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지언정, 나는 일상을 살면서 체득하면 다른 방면의 깊이가 생길 것이다. 인문학적 깊이가 얕다고 해서 불행한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수라와 같은 세상 속에서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식상해하지 않고, 한 줌의 감성으로 지식을 꾸준히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적인 삶이다.
일상과 사회를 살아가면서 나는 깊어졌다가 얕아졌다가를 반복하며 나름의 방향을 잡을 것이다. 어떨 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탐구했던 시절로 돌아가 미친듯이 싸우고, 어떤 때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잠시 벗어나서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그렇게 깊이 있을 필요가 없다. 때로는 얕게, 때로는 바보같이, 때로는 깊게 그렇게 그렇게 작별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안녕!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