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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Oct 18. 2015

내읽책_유일한규칙(唯一的规则)

손자의 투쟁철학을 정면으로 바라보다.

리링은 중국의 철학을 공부한 교수이다. 그는 6,000자에 불과한 손자병법을 자신의 관점을 담아 500페이지가 넘는 거대한 책으로 엮어냈다. 직업이 철학과 교수이므로 그는 아마도 다른 중국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겠지만 그 가운데 손자에 대한 자신의 깊은 관심을 숨김없이 처음부터 드러내고 있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이미 자신이 '금역신편 손자병법', '십일가주손자', '손자집교'로부터 이책에서 계속 인용되고 있는 인췌산(銀雀山)에서 출토된 죽간본의 손자까지 많은 손자의 책들을 읽어보고 정리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리링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죽간본의 목차순서에 대해서 큰 의심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리링과 중국 사상의 깊이


이책의 시작은 제자백가와 그 많은 철학 사상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정리한 두 명의 중국 철학자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리링의 책은 첫문단부터 논어, 노자, 손자, 주역을 이야기하며 중국철학의 굵은 선을 그린다. 이후 장자와 순자 그리고 한비자 등을 이야기 한다. 손자의 책을 이야기하기 전에 중국철학사에 대한 짧은 그리고 그만의 생각을 담아 전한다. (각각의 학문들과 그 제자들에 대한 설명 중 리링이 추론하는 몇 가지 의견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본문 만큼이나 흥미로운 펑유란(馮友蘭)과 후스(胡適)에 대한 비교 부분이 뒤따라온다. 펑유란과 후스는 둘 모두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부를 한 중국의 철학자이며 서로 비슷한 시대를 약간의 앞뒤로 살아가며 중국철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리링은 이 둘의 사상적 차이를 크게 3가지로 설명하며 중국 철학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내가 씁쓸한 것은 우리나라 역시 반만년의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사서삼경이나 이외에도 손자나 노자에 버금가는 우리나라만의 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첫번째였고 그 철학을 후대에 서로의 관점에 따라 정의하여 토론할 수 있는 펑유란과 후스와 같은 인물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한국철학사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아직 읽어보지는 못하였다.) 또한 리링의 메시지도 의견도 아니지만 자국의 철학을 외국에서 배우는 부분은 우리나라의 도올선생님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쟁에 대한 내용만 다룬다


자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책의 색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리링은 '손자는 사업비결을 전하는 책이 아니다. 병법에서 상업의 지혜를 구하려 하는 사람은 이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라는 상남자의 메시지를 통해서 자신의 독자층을 명확하게 제한하였다.

어느 순간 이후 손자의 책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각색한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해왔었다. 그것은 사업방향, 전략수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져왔다.  나 역시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과 같은 손자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나도 몇 권의 책을 읽으며 느낀점이지만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 식으로 손자는 지나치게 남용되어왔다. 논어나 맹자가 겪지 못했던 이종교배를 손자는 지나치게 심하게 당해온 것이다. 손자는 당연히 현 시대의 사람이 아니므로 그가 상업을 비롯하여 현대사회에서 도움이 될만한 메시지들을 책에 적어놓았을리는 만무하다. 그걸 자신의 영역으로 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사람들의 자유지만 어느 선을 넘어가는 남용에 대하여 리링이 일침을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은 '손자'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마치 실용과 철학사이에 대한 구분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현재적 관점과의 차이


과거 전쟁을 바라보는 전략의 관점은 미신과 과학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다. 우리가 어릴적에 과학시간 중 배운 원소기호별 불꽃반응 등을 보여준다면 (나트륨은 노란색 불꽃, 바륨은 녹색 불꽃) 아마 과거의 사람들은 귀신이 관련되어 색상이 변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현상은 있지만 그 원인을 명백하게 알기 어려운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손자의 시대를 비롯하여 현대과학이 정착할때까지 많은 부분이 미신과 당시 수준의 과학의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해석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제갈량이 만들어낸 동남풍의 경우 제갈량에게는 과학이고 주유에게는 미신이었을 것이다.  


한편 유일한 규칙을 읽으며 느끼게 된 또 하나의 현재적 관점과의 차이는 바로 무기의 발전 이외의 부분들에 대한 차이이다. 사실 전쟁은 무기들이 부딪힘으로 인해 발생하고 손자의 시대에 비하여 현대의 무기들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였지만 현대시대에 그보다 더 많은 수준으로 발전한 것들은 오히려 무기 외적인 부분들이 아닌가 싶다. 바로 물류 수송이나 식량 관리에 대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책의 곳곳에는 구우대거와 치중거와 같은 물류 수송 장비에 대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일명 마차 혹은 우마차 유형의 수송방식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동거리를 기준으로 군수품과 식량을 옮기는 부분에 대하여 손자가 기술한 내용들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결국 수십만의 병력을 이동하려면 수천의 구우대거가 필요하다는 식의 분석이 매우 많다. 물론 현대전에서도 전쟁이 있을시에는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동원된다. 엄청난 크기의 수송기로부터 트럭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군수물자에 대한 수송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과거의 수송방식과 가장 큰 차이는 군수물자에 쓰이는 이동방식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군과 민의 완벽한 분리를 통해 전쟁을 위한 징발의 개념이 사라지고 군수물자는 군 수송자원으로 이동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손자의 시대에는 수송의 형태가 말이나 소였고 말과 소는 당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큰 자원이었다. 즉 전쟁을 위해 삶의 자원을 강제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징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국가 경제가 흔들리기 때문에 손자는 식량의 부분에 있어서도 '군량미를 세번 보내지 않는다.' 라는 문구를 통해 전장과 민간의 삶을 분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결국 손자병법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닮고 있지만 동시에 현재와는 다분히 다른 사회시스템의 요소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인명의 가치


2008년 개봉되었던 중국영화 '명장'에서 유덕화가 역할을 맡았던 '조이호'가 혈혈단신으로 소주성에 들어간다. 소주성을 지키고 있던 황장군이 자신의 병사들의 목숨을 꼭 지켜달라는 말하고 조이호는 이를 약속한다. 하지만 소주성이 함락되고 황장군의 병사들은 모두 몰살당한다. 그 이유 역시 바로 부족한 식량에 있었다. 이연결이 맡은 방청운의 부하들이 쏘아올리는 화살 속에서 죽어가는 소주성 병사들의 광경은 전투가 아닌 전쟁속의 죽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남을 먹이면 내가 죽는다는 흑백 논리의 전쟁 환경에서 인명의 가치가 매우 낮아졌던 것이다. 적지에서 전쟁을 하며 군량을 충당하라는 손자의 메시지 안에도 이와 유사한 흑백의 논리를 통해서 수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승리라는 유일한 규칙 앞에서 인명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다.


영화 '명장' 속의 조이호(유덕화)


하지만 '유일한 규칙'을 잘 읽어보면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 인명의 가치와 반대로 다른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유익한 규칙의 가장 마지막 장은 '용간'이라는 장이다. 이 장은 '간첩을 쓰지 않으면 이기지 못한다' 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 장안에서는 큰 간첩과 작은 간첩 그리고 나의 간첩과 남의 간첩 등 다양한 간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간첩의 매수에 대한 비용을 부분이나 역사상 훌륭한 간첩 등을 기술하고 있기도 한다. 또한 간첩행동이 세가지 원칙이라는 장에서는 세번째 원칙으로 '우리지역에서 활동하는 적의 간첩은 필히 찾아내 이익으로 포합하고 잘 인해도 은덕을 베풀고 풀어놓아야 반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 라는 문구가 있기도 하다. 간첩을 전쟁 상에서 무척 중요한 자원으로 판단하고 그들의 총명함을 없애기보다는 어떻게든 활용하기는 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라면 적의 간첩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텐데 오히려 한 명의 값어치가 전쟁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었던 과거였기 때문에 아마 가능했던 논리였을 것이다. (현대전에서는 전쟁의 승패를 혼자 가를 수 있을 정도의 간첩은 있기 어렵지 않나 싶다. 현대전은 사람의 능력 이외에도 너무 많은 요소들이 전쟁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투쟁철학에 대한 재고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나의 9월을 모두 보냈다. 하지만 그 9월이 아깝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워낙 많은 한문 원서의 내용이 동반되어 나오기에 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한자 실력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많은 한자도 함께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사실 한 번으로 이 책의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시간이 날때쯤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의 제목과 부제를 다시 돌아보았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전쟁의 유일한 규칙은 '승리를 제외하곤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승리는 규칙이라기 보다는 결과인데 리링은 아마도 승리에 관여할 수 있는 규칙이라면 무엇이든지 전쟁의 규칙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의미는 책의 부제인 '손자의 투쟁철학'이라는 부분에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6,000자에 불과한 손자병법을 자신의 머리 속에서 수도 없이 재구성하며 그 의미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 놓은 리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일 것이다. 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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