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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열 Feb 20. 2023

어설프게 미니멀리스트 되려다 강박 행동만 늘었다

생각

몇 년 전에 찍었던 우리 집 거실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면 제법 깔끔하게,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완전 컨셉이다. 이렇게만 두고 살려니 너무 불편하다.

언제 한 내담자가 자신이 가진 소지품을 전부 엑셀 파일에 기록해 놓았다며 보여준 적이 있다.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단 한 번도 내가 가진 소지품을 전부 기록한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니멀리즘 (minimalism) 이 유행처럼 번지고,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평소에 정리벽이 있던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불교의 무소유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없애고,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얼마 후부터 쓰지도 않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가지고만 있었던, 마음의 짐 같았던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도 오늘부터 미니멀리스트.


여기까지는 좋았다. 


한차례 정리를 하고 나서는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직도 짐이 너무 많아’. 그리고 정리를 하면 할수록 눈에 보이는 집안의 물건들이 점점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더 두드러지게 거슬렸고, 습관처럼 집에 불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또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면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텅 빈 집 사진을 보면서 부럽다고 느끼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들만을 가지고, 군더더기 짐 없이 산다는 의미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난 '꼭 필요한 것'들 너무 많았다. 책상 서랍이나 책장, 욕실 서랍장에 빼곡히 들어있는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짜증이 났다. 어쩌면 집에 물건들이 줄어드고 한산해질수록, 주변의 환경에 불필요할 정도로 민감해졌고, 짐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과감히 물건들을 버렸다가 막상 필요할 때 없어서 공교로운 상황에 놓인 적도 많았다. 빨래 건조대를 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셨습니다.  


미니멀리즘을 받아들이면서 어떤 삶을 상상하고 있었던 걸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탁 트인 공간에 최소한의 가구, 그리고 텅 빈 옷장에 가지런히 정돈된 몇 가지의 옷들, 호텔 뺨치는 수준의 깔끔한 화장실, 그리고 마치 갓 이사 온 듯 한 새 집의 부엌...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좀 더 마음 챙김 (mindfulness)을 실천할 수 있는 생활을 하리라 막연히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도달한 미니멀리즘은 강박적으로 짐을 줄이는데 집착하고, 막상 필요한 것들이 급할 때 없어서 다시 사야 하거나 난감해하는 상황들이었다. 아 그래도 꽤 잡지에 나올 듯 한 사진들 좀 건졌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과연 미니멀리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튜브나 블로거들은 저런 텅 빈 집에서 홀가분하게 생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물론 이것들이 정답은 아니지만, 내가 도출해 낸 나름대로의 답은 이와 같다. (경고: 반은 웃자고 하는 소리다) 


1.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물건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 무척 많다: 자주 쓰는 물건이 아니라도 언젠가 필요할 때, 구입을 하기에는 애매한 것들은 (역시나 짐이 늘어날 테니) 누군가에게 쉽게 빌릴 수 있다. 또는 무슨 렌털 서비스를 사용하거나. 대표적인 것들이 식기, 공구, 청소도구. 컵케잌이 땡긴다고 베이킹, 이런 거는 꿈도 못 꾼다. 

2. 미칠 듯이 부지런한 사람이다: 식기도 딱 필요한 만큼만, 옷도 딱 필요한 만큼만, 매번 쓸 때마다 매번 설거지하고 세탁한다. 세탁 타이밍을 놓치면 과감하게 뒤집어 입는다. 패션의 재창조 


3. 돈도 제법 있는 사람이다: 없는 식기구로 매번 음식을 차리자니 만들 수 있는 메뉴도 적어지고, 그때그때 만들고 치우는 것도 일이다. 가끔 뭔가를 먹고 싶을 때는 그냥 사 먹는다. 아니면 스님처럼 먹던가, 친구 찬스를 자주 사용한다. 

4. 맨손체조, 요가같이 장비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다: 장비가 많이 필요한 취미를 가지면 짐이 한아름이 되는 것이 순식간이다 (예: 낚시). 또 취미는 계절을 타는 것들이 많다. 한철에만 사용하는 장비들을 짐처럼 가지고 있을 바에야 과감하게 그런 취미들은 배제한다. 


5. 대부분의 것들을 디지털 기기, 스마트 폰으로 해결하는 사람이다: 짐을 줄이면서 한 가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디지털 기기의 의존이었다. 일상생활의 많은 것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대체될 수 있다 보니 (텔레비전, 라디오, 전축만 해도 그렇고 요즘은 모바일 기기나 태블릿으로 eBook을 읽는 경우도 많으니) 굳이 필요한 것이 아니면 대부분 정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스크린타임의 증가로 이어진다. 마음 챙김은커녕 도파민 중독만 더 심해진 것 같다. 



미니멀리즘에 관련된 유튜브나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서, 그리고 곤도 마리에 책을 읽으면서 동기부여도 되었고,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 쓸데없는 물건들을 많이 정리했다. 누구나 짐 정리를 하다 보면 '아니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고, 덕분에 이유 없이 가지고 있던, 쓰지 않는 물건들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미니멀리스트는 어떤 공간에서 생활할까?라는 상상은, 그리고 그 상상에서 그린 잘못된 이미지는 나에게 강박적인 사고만 더 부추기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것 중 하나는 불필요한 요소를 줄여서 나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착해서, 오히려 본질,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나 마음 챙김을 실천하려는 목적에서는 점점 더 멀어졌다. 내가 미니멀리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았네. 단편적으로 비치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보며 우리 집과 비교하고,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생활이 본질에서 멀어지는데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름대로 내린 미니멀리스트의 정의는 미니멀한, 최소의 물건의 소유가 아닌, 가진 양과 상관없이 (오히려 정리해야 한다는 집착을 과감히 버리고) 마음 챙김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물건을 버려야 한다는 집착은, 결국은 집착이고, 잉여 짐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정신적으로 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사를 자주 다니거나 방랑자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난 지금 사는 집에서 10년 넘게 살았고, 앞으로도 한동안 떠날 계획은 없다. 


집안의 물건 개수에 연연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짐이 얼마가 되나와 상관없이, 내 현재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진정한 미니멀리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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