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카와사키ルポ 川崎' 이소베 료 (磯部涼, 2017년)
※머리 아픈 책만 읽던 생활에 조금은 질려, 이제부터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가벼운 책을 읽고 소감을 올려볼까 합니다. 되도록이면 한국어로 번역이 안된 일본어 책을 중심으로 쓸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을 전하는 논픽션을 좋아합니다. 픽션 중에는 미스테리/추리물을 좋아합니다만 최근엔 거의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 올리는 책은 카나가와현 카와사키시를 주제로 한 르포입니다.
카와사키는 현재 살고 있는 데서도 그닥 떨어지지 않은 동네다. 거주지에서 JR난부선(南武線)을 타고 10-20분이면 도쿄 경계를 넘어 카나가와현에 도착한다. 그 관문이 카와사키시다.
카와사키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다. 도쿄 생활권과 대체로 겹치고 남쪽은 요코하마(동일한 카나가와현) 생활권이다. 바다에 접해있어 오랫동안 공업지역으로 성장해왔다. 도쿄 타마지구를 관통해 흐르는 타마가와(多摩川) 를 따라 성장한 도시다. 지도 중간을 흐르는 강이 타마가와다.
도쿄/요코하마 관계를 서울/인천 관계로 보자면 안산이나 부천 정도 느낌이 나는 동네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 카와사키도 상당한 대도시(인구 150만)지만 두 도시의 존재감이 워낙 크다보니 묘하게 '변두리감'이 나는 점이 닮았다. 공항(하네다/김포)이 가깝다는 점도 유사하다.
'르포 카와사키'를 신문 서평으로 접하고 오래간 아마존북 카트에 방치해왔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아마도 삭제해버릴 것 같은 기분에 충동 구매를 해버렸는데 예상 외로 신선한 내용에 작은 감동마저 받았다. 일본 르포를 읽는 맛을 모처럼 느꼈다.
아래가 책 표지. 공업도시를 상징하는 굴뚝과 함께 띠지에는 '여기는 지옥인가?'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담았다. 물론 책 내용은 '여긴 꼭 지옥만은 아니다'라는 데 맞춰져 있다. 시작은 청소년 살인사건과 일용 노동자가 많은 모텔촌 방화사건이지만 내용은 '사람이 산다'는 게 중심이다.
저자는 이소베 료라는 사람으로 원래는 음악관련 프리랜서 저술가라고 한다. 이 책을 쓴 계기도 지역성에 천착하기보다는 카와사키에서 활동하는 랩퍼들(BAD HOP 등등) 때문이었다고. 취재를 이어나가면서 랩퍼들의 감수성이 카와사키가 갖는 변두리성, 어두운 치안과 맞물려 있어 결국은 지역을 전면에 내세우게 됐다고 한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20-30대 랩퍼들은 모두 적지 않은 일탈을 겪은 이들이다. 범죄(주로 청소년 폭력)나 마약에 손댄 이들도 있다. 미국에서 힙합이 동일한 문화적 감수성에서 자라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갱생의 계기(?)로 삼는 것도 힙합 음악이었다. 몇몇은 지역 대회의 우승이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힙합 음악에서 마이너리티가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한다. 공업도시 카와사키에는 예전부터 일손이 많이 필요했다. 그랬기에 적지않은 재일교포(자이니치 코리안)들도 카와사키에 모여 살았다. 차별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카와사키에서는 자이니치 코리안의 존재가 당연했기에 이들도 카와사키 문화의 하나다.
한국에서도 인기 많은 단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에도 카와사키는 몇 차례 등장한다. 카와사키 음식은 하나같이 '육식계'다. 야키니쿠(焼肉)다.
아래가 해당편이다. 츠루야라는 곳은 실제 자이니치 타운 근처에 있는 곳이다. 카와사키의 소울푸드야말로 야키니쿠라 할 수도 있겠다.
책에는 적지않은 자이니치 랩퍼들이 등장한다.
인상 깊었던 건 'FUNI'라는 랩퍼였다. 아버지는 자이니치(계속 일본에 거주)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온 분이라 한다. 한국이름(곽정훈, 일본에서 F는 한국어로 ㅎ발음 표기할 때도 쓰임)을 쓰고 국적도 한국이지만 고향은 카와사키. 카와사키에서 활동하는 랩퍼들은 국적이나 민족에 관계없이 카와사키 감수성으로 가사를 짓고 음을 붙인다. 결국 모두가 제 나름대로의 곤경을 겪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지점이었다.
아래는 카와사키 1세대 랩퍼 bay4k와 다음 세대인 FUNI의 작년 대담 장면이다. bay4k도 자이니치인데 한국은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FUNI를 알게 된 것도 책이 계기였다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한일관계에 대한 얘기도 한다. 한창 수출규제니 뭐니로 시끄러웠을 때다.
지난해초반 뇌졸중으로 쓰러져 재활중이라고(그래서 움직임이나 말에서 다소 부자유스러움이 느껴지지만 회복중이라 한다). 아쉽게도 자막이 없어서 일본어 가능하신 분은 참고하시길.
한편으로 카와사키의 이런 특수성 때문에 '헤이트 스피치', 이른바 인종차별 데모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이기도 했다. 몇몇 랩퍼들은 여기에 맞서고 각지에서 온 반차별활동가(카운터)들이 합류한다. 카와사키 정체성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다. 그 덕에 카와사키는 헤이트 스피치 데모를 막는 조례가 일본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다.
이런 카와사키의 상징이 자이니치 타운에 있는 '교류관(ふれあい館)'이다. 과거에는 자이니치나 중국계가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남미계, 동남아계 주민들 교류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FUNI 역시 이곳에서 전 여친(브라질계)을 만났다는 내용이 책에 등장한다.
물론 이른바 '다문화'를 미화만 하는 책은 아니다. 인간 개인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다보니 다소 미담으로 흘러가는 것도 부정할 순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가 책의 써내려가는 방식이다. 어쩌면 이게 이 책 최대의 미덕이고 르포의 장점이기도 하겠다.
카와사키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강하게 묻어나 번역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듯 싶다. 다만 이런 식의 지역성을 살려내는 서술 방식은 일본 르포나 미스터리 소설의 장점이다.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히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