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꼭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내가 글을 그동안 못 쓴 이유 중에 이런 이유가 있다. 어떤 글을 쓰든 뻔한 이야기만 나와서. 누구나 조금만 생각한다면 다 알 법한 이야기를 써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마음에 글쓰기를 주저했다. 최근 일 년간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이면서 여러 사람의 글을 읽었다. 저자는 글을 통해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나와 공감하며, 나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했다. 잘 써진 글에는 매력이 있다. 내 머릿속에 주제를 던지고, 자신의 주장과 근거로 나를 설득한다. 내가 설득을 당하든 말든 내가 그 주제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써서 남의 생각을 통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글을 멋있게 쓰고 싶다. 술술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동시에 내 생각을 정확하게 상대에게 전달하고 싶다. 그런 멋진 글은 남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이나 신선한 감명을 줘야 한다. 그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글에는 꼭 새로운 정보나 아이디어가 있을 필요는 없다. 어떻게 세상 모든 글이 새로움을 줄 수 있겠는가.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꼭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논리를 잘 활용하여 앞에 놓인 문제를 잘 풀어내고, 사람들에게 그 풀이를 인정받으면 된다. "내가 여태껏 배운 지식과 명제들로, 내 생각과 주장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게 되자." 내 목표를 그렇게 잡으니 내가 글을 잘 쓰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였다. 세상에 있는 지식과 명제, 논리를 얻으려면 다양한 책과 글을 읽어야 한다.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내 생각을 잘 표현하려면 글을 많이 써봐야 한다. 이렇게 아주 당연한 결론,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 한다"가 도출되었다. 추가로 글을 잘 쓰는 방법을 공부하면 더 좋겠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는 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그 필요한 것은 어떻게 얻어야 할지를 직접 생각하고, '뻔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이 과정을 통해, 진부해 보였던 문장이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더욱 친근한 문장이 되었다.
내가 수학에 재미를 느끼던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세상에 널려있는 흔하디 흔한 수학 공식들을 내 손으로 직접 유도했었다. 내가 아는 식으로 천천히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며 복잡해 보이기만 하던 공식과 친해졌다. 고등학생 때 익혔던 근의 공식부터 대학에서 배운 수많은 분포의 식까지 내 손에서 다시 한번 증명됐다. 이 과정의 장점이 '공식을 잘 이해한다'에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그 공식이 어느 상황에 쓰일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 공식을 달달 외워도 이 공식을 어떤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모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 된다. 오히려 수학 시험을 보다가 공식을 까먹었을 때, 그 공식을 유도할 줄 알면 그 자리에서 공식을 '소환'해 낼 수 있다. 경직되어 있던 공식이 내 안에서 다시 탄생하고 회복된다. 뻔한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생각과 주장을 '내 생각과 주장'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세상의 아이디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내 생각을 쌓는다. 그래야 비로소 나만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뻔한 결론이 나오더라도 내 생각과 문장으로 글을 쓰자.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일지라도, 쓰나 마나 한 글은 아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뻔한 결론'을 '내 결론'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