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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쉐어 Nov 08. 2020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나를 망치는 한 가지. 괜찮아병.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며칠 전 살아생전에 너무너무 사람이 좋아보였던 분이 스스로 눈을 감았다. 평소에 그녀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비이상적으로 좋은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어제는 또 다른 가까운 지인이 펑펑 울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며 고통을 내게 호소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과거의 나를 만났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너무도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다. 가만히 듣다가, 그를 돕고 싶어 감히 몇 가지 질문을 했다.  


Q. 만약 너가 1년 전 너를 우연히 만난다면, 그 친구 옆에 선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

음... 좀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Q. 그래 잘했어. 그럼 5년 전이면 몇 살이야? 그때 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

생각을 좀 그만하고, 마음 편히 하고 싶은 마음껏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Q. 잘했어. 그 말이 지금 2020년의 너에게도 유효해?

음.. 네.. 지금도 유효해요. 좀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생각도 그만하고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왜 그렇게 해주지 못했을까요? 주변에도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친구들은 너 정도면 괜찮은 상황이라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Q.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또 자기도 힘드니까 그렇게 말했을 거야. 하지만 스스를 그렇게 생각하지는 마. 내가 안 괜찮은데 뭐. 그거를 어쩌라고? 세상에 나 말고 나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 다른 사람 말은 그러려니 하고, 너한테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잘해줘.


정말 좋은 말이네요. 그럴게요. 그런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잘해줘요??





사실은 안 괜찮은 사람들


2017년 2월부터 라이프쉐를 프로젝트를 한국 사람들과 시작했다. 라이프쉐어는 삶에 주요한 인생 질문을 가지고, 상대와 깊고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는 행위이다. 나의 취약점, 그리고 상대 본연의 모습을 편안하게 나누게 해 준다. 2020년 11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의 수가 수천 명이다.



그들 중 일부는 당장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은 수준의 사람도 있었지만, 80%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소 '괜찮은 척'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우리는 라이프쉐어를 통해 몇 가지 공통점들을 알게 되었다.


김국진님의 명언


1. 속 괜찮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티 내지 않는다.

(이를 알게 되면, 세상에 별로 부러운 사람이 없어진다) 다만 괜찮은 척하고 산지가 오래돼서, 무엇이 내 모습인지 헷갈려한다. 가면(mask) 아래로 가끔 자의적 타의적으로 발견되는 우울감, 무력감, 분노, 외로움 등의 돌발 감정 등을 볼 때면 당황해했다. 그럴 때는 자기를 채찍질하거나 '자기 비난'을 했다. 스스로에게 참 가혹하다. 아니 애당초 좀 안 괜찮으면 어떤가? 다른 사람에게는 다 참을만한 상황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죽을 병일 수도 있다. 하지만 티 내지 않는다.


아니 왜 좀 안 괜찮으면, 왜 안된단 말인가?


2. 속마음을 털어놓는 법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서로 괜찮다고만 말하고 산지가 오래되어서, 가까운 사람에게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굳이 들춰내서 그들이 나를 떠나가거나, 서로가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가면은 점차 두꺼워지고, 덮어둔 감정은 유통기한 없이 무의식으로 가라앉는다.


3. 스스로의 대한 기준이 높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렇게 "잠시 덮어둠"이 문제가 된다. 감정을 돌보지 않고,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높은 목표를 향해가다가 결국 '틀'에 갇히게 된다. 이는 세상이 정해놓은 '좋은 사람'과도 비슷하다.


가령 맏딸로서는 믿음직스러워야 하고, 어릴 때 괜찮은 곳에는 취직해야 할 것 같고, 이때는 결혼은 해야 할 것 같고, 몇 살에는 얼마 정도는 모아야 할 것 같고, 애인에게는 결점이 없어야 하고, 실수로 엎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고, 한 번에 잘되야하고, 좋은 놈까지 돼야 한다.


보통 주말에는 아프거나, 일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자기에게 맞지 않을지도 모르는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은 거의 Role model이다.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인 좋은 사람의 기준의 후폭풍은 무섭다. 살면서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 기준에 부합되지 안될 때 좌절감이 들고, 분노가 치밀고, 외로워하고, 좌절한다. 무의식에 가라앉은 것들이 어느 순간 틔어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다시 덮어두고, 버티고, 노력해서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 순환은 감옥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왜 꼭 완벽해야 하는가?




너무 완벽하면 비정상이다.  


사람은 탱크가 아니다. 너무 몰아붙이고, 너무 버티면 죽는다. (아니 애당초 왜 좋은 사람, 도덕적인 사람, 멋진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탱크는 찌그러지면 수리하거나, 버릴 수라도 있지 사람은 그게 안된다. 나는 왜 망가지면 안 되고, 무언가 못하거나, 부족하면 안 되는 것인가?


세상에 너무 비이상적으로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냥 비이상적인 것이다. 우리가 너무 사랑했던 많은 멋진고 좋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들도 아마 자신의 썩어가는 마음을 말할 곳, 영혼의 위로를 받을 곳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떤 부분이 부족하거나, 찌그러져있다면 그건 내가 매우 정상이라는 근거이다. 나의 부족한 면을 그대로 수용해보자. 마음이 편하다.


필자는 최근 똑똑하기를 포기했다. 스타트업 대표인데, 거의 4년을 회사를 운영하고 깨닫게 됐다. '..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구나'  이후로 엄청나게 복잡한 리더십 강의를 듣는  내려놓았다. 마음이 편했다. 물론 다른 잘하는 것을  잘해볼 참이다.




사람들은 웬만하면 별로다.


게다가 사람들은 나 말고도 대부분이 별로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내가 어떤 부분에서 별로라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자기 비난에도 빠질 필요가 없다. 게다가 내가 괜찮지 않은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부끄러울 일이 하나 있다면, 아팠을 과거의 나를 위해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다. 내 안에 아이는 울고 있는데, 힘들어하는데 버티라고만 채찍질했던 것을 부끄러워야 해야 한다. 우린 잘살려고 한 거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살려고 하던 와중에 생긴 상처들이다. 그들을 가혹하게 대하기보다는 같이 울어주고, 위로해주고, 다독여줘야 한다.


세계적인 명상센터에 가면 사람들이 미치기 위해 돈을 수백만 원씩 낸다. 예전에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 지를 뒤늦게 깨닫고,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고, 침묵하고, 미친 듯이 웃고, 춤추며 과거의 나를 위로한다.


그땐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이제라도 사과한다. 또한 전문가와 함께 트라우마 치료를 하고, 각종 테라피와 건강한 음식들로 이제라도 나를 위하려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마음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 참고 : https://brunch.co.kr/@jaewonchoikate/96




나는 정말 really 괜찮은가?


만약 사실 내가 괜찮지 않았다고 대답했다면,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잘한 일이다. 적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내가 갑자기 이상 행동을 하거나, 이상 감정을 표출했을 때 자기비판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럴 때는 내가 그동안 너무 고생했구나. 아팠구나. 다정하게 대해주면 된다.  


여기서 나에게 다정하게 잘해주는 방법은  사람마다 여러 가지가 있을  있다. 나의 경우 힘들었던 사춘기에는 음악에 위로를  많이 받았다. 어렵게  콘서트장에서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토록 위로를 받았던 적은 없었다. 이후 처음 겪는 사회 초년  삶의 팍팍함을 느꼈던 20  혼자 내면으로 들어가 무작정 깊은  끄적였. 글이 꼬리를 물고,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다가 결국  고민의 바닥에 닿곤 했다.  토해내고 메모장을 덮으면  살만했다. 


30,  삶에 처방전은 라이프쉐어였다. 삶의 정수가 담긴 질문을 주고 받으며 상대와 나의 취약점, 수치, 그래도 지키고 싶은 철학 등을 대화 나누 것이다. 사람은 깊게 들어가면 모두 보편성이 있다. 그래서 라이프쉐어 끝에는 대화 상대와 깊은 공감과 연결감 느낄  있었다. 덕분에  속에 많은 것들이 해소되었고, 삶의 색도 많이 밝아졌다. 



지금에 와서는 나의 처방전은 움직임 명상이다. 현대에 와서 치유와 정신 건강에 맞게 변형된 무용, 치유적-소메틱 적인 움직임들이 참 많다. 아직 한국에서는 대중들이 만날 기회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지만, 세계적인 트렌드 덕분에 서서히 국내에서 움직임 씬이 형성되고 있다.


라이프쉐어_컨택 즉흥 워크샵


몸을 통해 나의 무의식을 위로하고, 열심히 에너지적 소통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언어적/논리적으로 풀 수 없었던 수많은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텅 비고 개운해진 마음에는 엄청나게 맑은 에너지가 들어온다. 이후에는 왠지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된다.


이외에도 무작정 걷는 사람이 있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외부와 연락을 차단하는 사람이 있고, 아로마 같이 좋은 향을 맡는 사람이 있고, 땀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이 있다. 꼭 엄청난 돈을 쓰거나,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모두 다행히도 일상 근처에서 매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의 찌거기는 오늘 1/n 비운다


조금씩 조금씩 버티며 쌓아왔던  안에 '가스' 필연적으로 가까운 내일에 터진다. 그러니 오늘 내게 어떤 것들이 쌓였는지를 확인하고 1/n 해서 매일 조금씩 풀어줘야 한다.


안부를 묻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일을  것이며,  나아가 적극적인 행동으로 조금씩 해소해주면 정말 좋다.


어른스럽다는  약해지면  된다고 무조건 나를 몰아붙이 것이 아니다. 찌그러진 나를 수용하고, 그런 모습 그대로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다.


때로는 이런 작업들을 사람들과 '함께' 해보는 것도 좋다. 세계적으로 명상, 요가, 각종 리트릿 커뮤니티 등의 열풍 안에는 이러한 함께의 가치 '공명'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뤄보겠다.



어제 지인과의 통화가 너무  닿고, 안타까워서 글을 안쓸 수가 없었다. 이런   요즘 시대에 누가 좋아하겠냐만은 누군가에게는 해소구가 되길 바란다. 오늘 밤은 자기 전에   읽는 사람은 모두  안에 안부를 물어보길. 그리고 댓글도 남겨보길. 진짜 멀쩡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




글 | 최재원

참고 | 취약하다는 것의 힘_브레네 브라운 TED 강연, 문학동네 <걷는 사람 하정우>, 라이프쉐어 <컨택 즉흥> 워크숍

추천 | 라이프쉐어 <다이빙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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