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연인이었던 여행에게
https://www.youtube.com/watch?v=0tkgGcnRNTE
여행이 끝나던 날은 유난히 따뜻한 날이었다. 11월이면 춥다는 이유로 가을 대신 겨울이라는 딱지를 붙여주고 살아왔기 때문에 얇은 옷차림으로 한국 땅을 밟을 걸 두려워했지만, 평년보다 훨씬 따뜻한 날씨에 내 긴장은 민망함으로 변했다. 피곤함의 표정을 지은 밤 10시의 공항철도는 순식간에 서울에 도착했고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새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늦잠을 자도, 오후가 되어 일어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한국에서의 첫 아침. 구름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은 이미 떨어진 붉은 잎을 조명하고 있었다. 나무는 많이 앙상해졌고, 그것은 곧 겨울이 오고 한 단계 더 늙어간다는 뜻이다. 내 여행은, 불과 어제까지는 항상 여름이었고 푸르고 뜨거웠는데. 아직 눈이 오는 계절은 아니지만, 내 여행은 이미 어제 내린 눈이 되었다. 떨어진 붉고 노란 잎들이 슬펐다. 왜 슬펐을까? 여행 후의 미래를 예상이라도 한 걸까? 장기여행자들이 흔히 겪는 현실에 대한 부적응이 이제 내 차례라는 게 두려웠던 걸까? 세계여행을 오랜 꿈으로 삼아온 만큼 내 주위엔 세계여행을 갔던 사람이 여럿 있다. 그들 모두 계절이 변하고 연도의 숫자가 커진 그들의 모국을 어색해했다. 우울에 빠지는 이도 있었다. 그건 마치 축제에서 춤을 출 준비를 마친 사람이 매일매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원하지 않는 몸의 흔들림을 겪는 것과 비슷한 걸까? 여행자의 생경한 눈은 모든 걸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 앞에서 보는 능력을 잃어가는 걸까? 이유를 깨닫기에 해는 얼마 남지 않았고, 여행의 후폭풍이고 뒷감당이자 꿈을 다 소진해버린 삶은 이제 내 차례였다.
남들 취업 준비할 시기에 놀고 온 청년은 귀국하자마자 바로 취업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이게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사회적 인식이다. 누가 입 밖으로 직접 꺼내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취업 준비를 미루고 세계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그 인식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 싶지만, 벅찬 꿈으로 온몸을 가득 채웠던 그 시절과 다르게 내겐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지위도, 핑계도,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손가락을 날릴 깡도 없었다. 내가 해야 할 건 남들과 똑같이, 회사에 들어가 하루하루 기계처럼 일하며 집을 사기엔 어림도 없는 돈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오랜만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다행히 세계여행 경험 덕분에 이전보다 쓸 내용은 풍족해졌지만, 인사담당자들이 이걸 좋게 볼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 년을 여행하면서 놀던 사람인데, 과연 우리 회사에 오랫동안 다닐 수 있을까? 또 여행 가겠다며 금방 그만두지는 않을까? 그런 인식이 벌써 그려져도 어쩔 수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첫 서류 합격을 경험했다. 뭐지? 왜 날? 지금까지 놀기만 한 29살의 이야기가 궁금했나? 기대하지 않았던 합격 소식에 급히 면접을 준비한다. 이야기할 것들은 많은데, 뭘 꺼내야 할까? 예상되는 질문을 만들어 그에 맞는 경험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처음으로 입어본 정장은 어색하기만 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우울했다. 그건 세상에서 제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축제에 가야만 하는 모습이었다. 아직은 여행자 시절에 입던 헐거운 옷이 더 익숙한 시기. 첫 면접은 생각보다 더 분위기가 무거웠고, 업계에 최소 30년은 종사한 것 같은 지적인 두 중년 남자가 진행했다. 첫인상에 기가 눌렸다. 혹시 내 경력을 젊은이의 치기로 여기고 미천하게 보진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삶의 경력이 길어서 그런지 나조차도 허투루 보지 않았고, 흥미를 가지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준비해온 답변들과 적절한 임기응변을 섞어 면접을 잘 마쳤다. 첫 면접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크게 망치지도 않았고, 너무 긴장해 어리숙한 인상을 심어주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첫 탈락이 아쉬웠다. 어떻게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마는, 첫술치고는 좋은 맛이었기에 계속 도전하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처음에 운을 다 쓴 건지 이후로 실패의 경험만 쌓여갔다. 단순히 불합격하기만 했으면 좋은데, 나와 내 경험을 깎아내리는 면접만 기억에 있었다. 처음 겪었던 점잖고 격식 있는 면접이 특이한 경우고 원래 업계의 평균은 겨우 이런 거라는 걸 보여주려는 걸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가 채용해야 할 이유를 잘 못 느끼겠거든요. 그래요? 인성검사 결과에 적힌 재우 씨는 이런 사람이라는데요, 여기서는 다른 이야기만 하시네요. 그냥 간단하게, 지금까지 놀기만 해오셨던 건데 이제 돈이 필요하다, 뭐 그런 건가요? 원래 세상이 이런 건지, 여행을 준비하고 갔던 내 20대 동안 세상이 변한 건지 면접장을 빠져나오면서, 넥타이를 풀면서 생각했다. 씨발새끼들…이라고 욕하며 털어내기엔 그들이 뱉은 말은 내 젊음에 너무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계절이 두 번 변하고 옷이 다시 가벼워질 즈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토요일에 급하게 부산으로 가야 해서 10만 원을 주고 비행기를 타고 갔다. 낮에는 이미 여름인 서울과 다르게 부산은 아직 봄을 간직하고 있었다. 친가 쪽 친척들은 다들 안 본 지 최소 10년은 넘었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 어색함이 무슨 의미라도 있을까? 어색함과 세월은 장례식 앞에서 뒷전이었다. 내가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어도 모두가 내 여행을 알고 있었다. 사촌들 중에서 가장 큰형이 가장 관심이 많았다. 국내 최고 대기업에 다니고 세계 이곳저곳으로 출장을 많이 다녀봐서 외국의 다른 도시들 이야기가 궁금했나 보다.
“재우야, 어디가 제일 좋았어?” (백 번은 넘게 들은 질문)
“나는 콜롬비아의 보고타(Bogotá). 물가도 싸고, 날씨도 시원하고, 사람들도 제일 친절했고.”
“의외네. 나도 거기 출장으로 가본 적 있는데, 워낙 무서운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실제로 털렸다는 분도 주위에 있어서 난 밖에 잘 안 나갔는데.”
“내가 운이 좋았던 걸지도.”
당연하게도 그다음 이어지는 이야기는 요즘 뭐하면서 지내는지. 나는 다른 사람들의 근황에는 관심이 없어서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는 편인데, 내가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질문까지는 차단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답한다. 그냥 취업 준비하는데, 잘 안 되고 있어… 그러자 형이 말했다.
“야 그러면 취업하지 말고 그냥 여행해~ 일 년을 여행하고 왔는데 취업이 눈에 들어오겠어?”
국내 최고 대기업에 이십 년 가까이 재직 중에, 중학생 딸을 둔 40대 가장이 하는 말은 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라고 부추기는 걸까? 아니면 정말 그래도 괜찮다는 걸까? 장례식에서 다른 건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만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다시 계절이 두 번 변하고 나는 30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20대가 아직 많이 남아있을 때는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스물아홉이나 서른이나 겨우 한 살 차이인데 외모도 건강도 마음가짐도 생활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물론 지금도 같은 생각이긴 하다. 며칠 후 30대가 되자마자 얼굴이 늙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아플 것도 아니고, 지금과 똑같은 생각으로 생활할 것을 안다. 찬바람에 후드의 모자를 뒤집어쓰며 나지막이 말한다. 그건 아는데…
내 20대는 철저하게 여행과 그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스물두 살,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한 시내 누나의 책을 읽고 여행이란 게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고 삶을 뒤바꿀 파괴력을 가졌는지 느끼며 꿈을 만들었다. 틈틈이 모은 돈으로 호주로, 미국으로, 러시아로 여행가며 ‘시간이 더 많았다면 일정을 짜지 않고 내가 원하는 곳에서 며칠이고 머물면서 이 시간을 즐길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며 여행 중에도 여행을 꿈꿨다. 연인에게도 거리낌 없이 언젠가 나는 길게 세계여행을 갈 거라고 했다. 전염병이 돌던 시절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이것 말고도 20대에 내가 보고 겪은 건 많지만, 20대의 마지막에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내게 남아있던 건 여행뿐이었다. 내 과거는 여행과 그를 위한 준비 과정뿐이었다. 학업도, 성취도, 사랑도, 재력도, 삶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성인이 될 때, 성공적인 입시를 마치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이라도 했을까? 이제야 나는 감히 고백한다. 과거를 믿고 싶지 않다. 내 청춘이 단 한 가지의 색으로 짙게 칠해졌다고 인정하기 두렵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수만 개의 색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는데, 여전히 내 세상은 단색일 뿐이었다. 그걸 바라보기 싫었다.
곧 서른이 될 나는 이제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 여행이 싫어졌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음이 변했다. 이제 나는 집 밖에서 자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피곤한 게 싫어졌고, 이것저것 잴 게 많아진 여행에 싫증이 났다. 항상 최저가의 숙소를 지향하고, 택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타지 않고, 버스와 내 두 다리만을 이용하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항상 영양소가 불충분하거나 편중됐지만 저렴한 것만 먹어 왔지만, 이제는 그게 힘들고 배고프고 싫어졌다. 나는 한 번도 내 사랑이 식어서 이별을 겪어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게 생기면 그 마음이 비는 걸 경험한 적이 없다. 그게 사람이든, 취미든. 그리고 이제 나는 처음 느끼는 내 감정을 마주하고 있다. 마음이 다한다는 게 이렇게 비참한 일이구나. 싫증 난다는 게 이렇게 졸렬한 일이구나. 그것도 내 젊음을 다 바쳐온 것에. 장기연애를 끝낸 이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나는 오랜 연인이었던 여행 앞에서 비겁해졌다. 나를 여행의 길로 이끌어준 시내 누나가 이젠 여행이 싫어지고 와식 생활이 너무 좋다는 말에 한때는 안타까움과 거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누나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누나가 여행이 싫어진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와 같았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이것마저도 누나를 따라가는구나. 어쩌면 이게 여행자의 숙명인 걸까? 평생 여행하면서 살고 싶다는 건, 여행처럼 삶을 살자는 건 먼저 여행했던 이들의 달콤한 속임수. 내 마음은 그들도 결국 긴 여행의 끝은 한국에서의 안주라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사탕발림으로 아직 순수하게 남은 영혼들을 유혹하는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여행 중 만난 둘뿐인 한국인 중 한 명인 소정이 여행기를 썼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가 기억하는 소정은 항상 숙소에서 영상 편집과 프로그램 제작을 논의하는 모습뿐이라 글까지, 그것도 책을 만들 정도로 많이 써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한시라도 빨리 읽고 싶어서 퇴근길에 가장 가까운 서점에 가서 바로 샀다. 그녀에게서 직접 들었던 이야기도 있어서 술술 읽히기도 했고 며칠 만에는 알 수 없던 소정의 모습도 그리며 읽었다. 시내 누나는 내가 누나를 몰랐던 시절에 글을 접하고 나중에 알게 된 사이지만, 이미 알던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소정의 결혼과 남편 이야기, 안나푸르나 트레킹 이야기… 그러나 오늘은 그녀의 여행 자체를 생각하고 싶다. 푸짐한 이유 없는 욕과 비난을 받아도 그녀가 여행을 계속한 이유(소정은 아마 2022년 제일 많은 욕을 먹은 여행자일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나만의 이야기를 가진 내가 되고 싶어서’. 이전에 키토(Quito)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책을 덮고 생각했다. 이게 소정의 20대이자 그녀의 근원이구나. 먼저 서른을 겪은 소정은 자신의 과거를 아직 사랑하고, 혹은 부정하지 않는다. 둘 중 뭐가 진실이든, 나는 그게 부러웠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미리 말하자면, 내 마지막 여행지는 알래스카(Alaska)다. 여행 직후 읽은 책에 이런 글이 있었다. 알래스카에는 절대 녹지 않는 눈이 있다고. 그건 만년설 같은 게 아니고,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지구가 생길 때부터 녹지 않고 지금까지 있는 거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맑은 순백의 무언가가 정말 세상에 실존할까? 그걸 읽은 이후 난 참을 수 없어졌다. 그리고 여행이 싫어지고 세상이 단색이라고 여겨온 지금, 순백의 눈으로 한 가지 색이었던 내 20대를 다시 하얗게 덮고 처음 여행을 꿈꾸던 시절의 생경한 눈을 다시 뜨고 싶다. 계속 외면하기만 하면 달라지는 건 없다. 아무리 싫어하고 부정해도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몇 년 뒤에는 스물아홉의 반항도 귀엽게 여기리라. 오랜만에 여행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