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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 Yeong Jo Dec 13. 2021

할머니를 보내고 나서

#외할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2021년 12월4일 토요일 새벽, 다급하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몇 주전 영천에 계신 외할머니께서 위독하다는 연락이 있었고, 응급실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에, 새벽에 울리는 전화에 나는 알수 있었다. 


난 어릴적 몇달 동안 외할머니댁에서 자랐다. 아마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쯤이었던거 같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뒤로한채 할머니댁에서 매일아침 시장에서 사온 새 내복을 입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친가쪽 보다는 외가에 더 마음이 갔다. 할머니댁은 시장에서 수산 도매업을 하셨고, 항상 용돈과 식자재를 두둑하게 챙겨주시곤 했다. 2005년 고3,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어느날,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날 불렀고, 그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당시 처음으로 입관에서 누워있는 할어버지를 본 순간,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처음으로 몸소 느꼈다. 생로병사 라는 티비 프로그램처럼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매 순간 이를 잊는듯하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깐, 너무 슬퍼하지 말자. 나는 혼자 생로병사를 뒤내이면서 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뤘고, 16년 후, 할머니 장례식을 치뤘다. 


외조모상으로 회사에 경조금을 신청하고 휴가를 냈다. 상주가 아니기에 화환은 따로 없었지만, 만약 나중에 내가 관리자가 된다면, 재량껏 화환하나 정도는 해주고 싶다. 3일동안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손님들을 보면서 잔심부름으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입관은 차마 보지않았다. 아직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나 홀로 식장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었다. 발인 후에, 경주에 있는 하늘마루 화장터로 향했고, 영천 호국원으로 가서 할아버지 옆에 할머니를 묻고 나서 장례는 끝이 났다. 


입사 후에 여러가지 핑계로 할머니댁에 가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주말이나 공휴일만 되면 나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게으름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대학생 시절, 호주로 떠나기 전날 할머니댁에서 하룻밤 자고 갔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몇년이 지난 후에도 할머니는 그날에 비가 많이 왔었다며 이야기해주셨다. 비록 인생사 생로병사라지만, 어릴적 할머니가 나에게 줬던 삶의 온기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듯하다. 주변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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