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에서
류현진의 야구를 봅니다. 텅 빈 관중석엔 사람들의 확대 사진이 의자에 걸려있습니다. 안타를 치면 경기장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관중의 녹음된 환호가 울려 퍼집니다. 중계하는 아나운서나 해설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6회에 류현진은 아쉬운 안타를 내주고, 연이어 수비 실책으로 일이 꼬입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덤덤합니다. 물론 예전에도 덤덤했지만, 코로나로 관중이 사라진 경기장은 투수에겐 평정심을 던져줄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는 내야 땅볼을 내줍니다. 그러나 내야수는 일로 송구하면서 삑 살을 냅니다. 졸지에 두 점을 줍니다. 저는 순간 블루제이는 역시 아니야.. 이런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LA 다졌어 라면 저런 실책은 안 나올 것입니다. 코로나로 하지 못한 경기를 한꺼번에 치른다는 세인트루이스는 덕분에 늘 웃는 스마일 KK에게 기회를 줍니다. 김광현은 아마 영어가 잘 안 통해서 바보처럼 웃고만 있는지도 모릅니다. 손흥민도 관중 없이 경기를 하고, 이제 우리는 경기장에 관중이 있었던 먼 과거의 바이러스를 모르던 시절이 원시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도시 숨 먼 자들이 도시로 나가고 있습니다.
# 봉쇄할 것은 코
숨 먼 자들의 도시에선 특히 코를 봉쇄해야 합니다. 코는 가장 흉한 구조물입니다. 그 모양이 문제가 아니라 콧속의 세포들이 바이러스와 잘 결탁한다는 현대 과학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턱시도를 입던 신사들이나 턱스 크를 쓰는 멋쟁이들은 옛날 사람이 되고, 이들은 코를 가려야 문명인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숨 먼 자들의 도시에선 이렇게 서로 코를 가급적 멀리하는 코 거리두기가 에치켓입니다. 예전의 원시인들이 하던 코를 서로 비빈다거나 코에 근접하여 볼을 입술로 톡 치는 것 같은 행위는 절대 금지입니다.
# 아름다운 눈
숨 먼 자들의 도시에선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코를 내보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코와 입을 가린 채로 웃어야 하기 때문에 눈웃음이 필수인데, 이것 때문에 눈가 주름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게 됩니다. 성형은 대부분 눈가 주름을 어떻게 멋지게 파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게 됩니다. 눈가에 주름을 펴고도 아름다운 웃음을 보이는 눈은 최고의 미인의 상징입니다.
# 박물관이 된 도시
숨 먼 자들의 도시에서 이제 예전 원시인들이 모여 침을 튀기며 얼싸안았던 모든 시설은 박물관으로 변합니다. 펍도 사라지고, 가페도 사라집니다. 다만 사람들은 실물의 코를 안 만나기 위해 숨어서 네트워크에 접속하고는 옷을 안차려 입어도 된다는 편리함을 자랑하며, 거추장스럽게 바지까지 입고 돌아다닌 옛 원시적 삶을 신기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