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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윤 Oct 07. 2024

흑백요리사로 본 팀십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팀은 왜 실패하는가?

요즘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리즈가 인기다. 한국 최고의 셰프들이 심사위원이 아닌 백수저 참가자로 나와서 요리 실력을 겨루는 모습이 마치 과거 [나는 가수다]를 보는 것 같아서 긴장되면서도, 재야의 고수들인 흑수저 셰프들이 이들에 도전하며 반전을 만들어내는 모습들이 흥미로워서 나도 재밌게 보는 중이다. 평소에는 부담스러워서 시리즈물을 볼 엄두를 쉽게 못 내는데 마침 징검다리 공휴일이 많아서 도전해보았다:)


그러던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경연이 펼쳐졌다. 백수저 요리사들과 흑수저 요리사들이 팀을 이루어서 요리 경연을 하게 된 것이다. 경연을 펼치는 두 팀 모두 최고의 실력을 가진 셰프들이 모여 드림팀을 이루었지만, 어떤 팀은 삐그덕 대고 어떤 팀은 훌륭한 단합력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처음 경연을 펼친 두 팀이 팀십에 대한 인사이트를 보여준 것 같아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만약 안 보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하시거나 감안하고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우선, 영상을 통해 파악한 셰프들의 특징은 자신의 요리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있고, 그에 걸맞은 엄청난 실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요리를 알아주지 않는 심사위원이나 동료를 무시하거나 고집을 부릴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객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들의 맛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피드백을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맛에 문외한인 고객들의 말은 잘 듣지만, 오히려 전문가인 동료 셰프들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고의 셰프들을 모아서 드림팀을 구성하면 어떨까?


이번 경연은 이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뭔가 굉장히 맛있는 요리가 나올 것 같은데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특히 첫 번째 경연의 백수저 팀에서 조리법에 대한 의견이 대립하는 바람에 조리법을 계속 바꾸었고, 이 때문에 시간을 버리고 헛수고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백수저 셰프들은 다들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정상급 셰프가 되기까지 주방에서 무수한 팀십을 경험했을 텐데 왜 경연에서는 그러한 팀십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신뢰

백수저 팀은 중간중간 이게 맞아? 라며 의견 대립을 하고 조리법을 바꾸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반면, 흑수저 팀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하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많이 담겼다. 그래서인지 분량은 백수저 팀이 훨씬 많았다(역시 싸움 구경이 재밌다). 이 장면들에서 알 수 있었던 건, 흑수저 팀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지만 백수저 팀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의심했고, 급기야 요리를 중단하고 대립하는 일이 잦았다. 이렇듯 신뢰가 부족하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증가해서 일을 할 시간과 체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효율이 낮아진다. 반면에 팀원들이 서로를 신뢰한다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감소해서 효율이 증가하게 된다.

불신에서 나오는 금기어: 이걸 왜 이렇게 해요?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들이 있을 때 팀십이 발휘된다.


리더십과 팔로워십

경연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리더십과 팔로워십에 대한 내용도 등장한다. 씬의 초반에 백수저 팀의 팀원이 된 최강록 셰프가 팀장 말을 잘 들으면 된다는 말을 한다. 반면 흑수저 팀의 리더가 된 트리플스타 셰프는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팀원들이 융합되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런데 팀원은 팀장 말을 잘 듣고 팀장은 팀원 말을 잘 듣는 건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흑수저 팀의 팀십이 더 좋았기 때문에 트리플스타 셰프의 말이 좀 더 정답에 가까울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목표 얼라인먼트

팀에서 같은 팀원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표 얼라인먼트(한 방향을 보는 것)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수저 팀은 무슨 요리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목표 얼라인먼트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팀원들을 서로 믿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리더가 해야 할 일은 팀원들이 하나의 목표에 얼라인되도록 하는 일이다. 목표에 대한 의견은 리더에게서 나올 수도 있고 팀원에게서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많은 의견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팀원들이 그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만약 얼라인먼트에 실패하고 의견이 대립하게 되면 목표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엇갈리는 업무 지시를 하게 되고, 묵묵히 일하는 팀원들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된다.

얼라인먼트가 되지 않으면 새우등 터지는 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팀원들이다.


목표 얼라인먼트가 어려운 이유

목표 얼라인먼트가 문제라면, 리더가 목표 하나를 잡아서 밀고 나가면 될 것 같은데 왜 어려울까? 만약 누구나 아는 요리를 만들고자 했다면 팀원들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때문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얼라인먼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승리할 수 없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게 필요하다. 하지만 이 새로움 때문에 각 팀원의 이해와 설득의 정도가 달라져서 얼라인먼트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이 새로움을 비전이라고 부른다. 비전은 당연히 더 새로울수록 더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어려워진다.


백수저 팀에서 결국 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은 최강록 셰프였다. 아무도 먹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요리(일본식 동파육에 오래된 조리법으로 만든 감자 소스를 이용한 요리)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 때문에 백수저 팀은 쉽게 얼라인되지 못했고, 의견 대립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반면에 흑수저 팀은 누구나 아는 요리인 육전을 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에 쉽게 얼라인될 수 있었다. 또한, 육전을 한번 만들고 나서 테이스팅(피드백)을 해봄으로써 더 나은 방향으로 새로움을 더했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

흑수저 팀은 처음부터 고추잡채 스타일의 볶음이 올라간 육전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양파와 피망의 수분 때문에 간이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철가방 요리사가 처음에 이를 거부했다가 테이스팅 후 사과하고 어떻게든 간이 맞는 볶음을 만들어왔다. 철가방 요리사가 처음에 이를 거부했던 이유는 자신이 팀의 요리를 망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해냈고, 팀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이처럼 경험한 적 없는 새로움에 도전할 때는 두려움이 앞설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 해내는 것까지가 목표 얼라인먼트이다. 새로움은 안 되는 걸 되게 할 때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나!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조직문화 행동강령 중 하나이다. 이 말처럼 만약 목표 얼라인먼트를 맞출 자신이 없다면, 팀을 떠나는 게 맞다. 다음 라운드에서 스테이크 하우스를 운영 중인 에드워드 리 셰프가 고기에서 생선 팀으로 넘어가면서 다급하게 '무, 물코기, 씨뿌드'를 외치는 모습이 밈이 되었는데, 이분처럼 처음부터 얼라인먼트가 맞지 않을 것 같다면 맞는 곳으로 가는 게 매우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실제로 에드워드 리 셰프는 리더가 된 최현석 셰프와 잠깐 의견 대립을 하지만 그의 비전을 신뢰하고 팔로워십을 보여줌으로써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평소에 팀십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인기 프로그램에서 좋은 예시를 보게 되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글에서 작성한 내용들은 온전한 내 생각이라기보다 팀십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보고 요점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컨텐츠에서 예시를 뽑아 짜깁기를 하고 내 생각을 살짝 첨가한 것이다. (따라서 신뢰해도 된다)

셰프님들이 다들 평생을 요리에 바친 엄청난 실력자에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해서 모아놓든, 떨어트려놓든, 무엇을 시키든 독특한 서사와 교훈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결과에 승복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다짐하는 모습들이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주관적으로 보이던 '맛'에 대한 평가가 이토록 객관적일 수도 있구나라는 것도 느꼈다. 이제 종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 리 셰프님의 귀여운 짤을 남기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핫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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