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원격진료 한시 허용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국내 코로나 19 확진자가 200명을 넘어서자 정부에서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전화 상담과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전화상담과 처방이 의료기관을 직접 다니면서 더 위험해질 수 있는 만성질환자의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참여를 원하는 의료기관은 의사의 판단에 따라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경우 전화상담만으로 의사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방전은 팩스나 이메일 등으로 환자가 지정한 약국에 전송되며 환자에게 유선 또는 서면으로 복약지도 후 의약품을 조제 및 교부하게 됩니다. 이때 수령 방식은 환자와 약사가 협의하여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택배나 대리수령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하여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에서는 정부가 사전 논의 없이 졸속으로 해당 방침을 추진했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상태입니다. 의협은 전화를 통한 처방은 환자의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특히 현재 코로나 19의 경우 폐렴을 단순 상기도 감염으로 오인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전염력이 있는 코로나 19 환자가 전화로 감기 처방을 받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주변으로 감염을 확산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거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의협은 “전화 처방에 따른 법적 책임, 의사의 재량권, 처방의 범위 등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함에도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발표해 국민과 의료인에게 큰 혼란을 초래했다”라고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의료계의 협조 속에 정부의 결정대로 진행되긴 할는지, 진행되더라도 당초 취지대로의 실효성은 있을지 의문이 들긴 합니다.
사실 원격의료 허용 여부에 대한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는데요.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원격의료 논쟁이 다시 불붙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을 하는 모양새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의 건강과 안전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죠.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문제이기에, 대략적인 내용은 알아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여, 최대한 간략하고 쉽게 원격의료 쟁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원격의료와 원격진료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용어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념적으로 원격진료는 원격의료의 부분집합에 해당됩니다.
원격의료는 '상호작용하는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원거리에 의료정보와 의료서비스를 전달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되고, 크게 원격지 의료진 간의 원격 자문, 원격검진에 의한 진료 및 처방, 원격교육, 원격 환자 모니터링, 원격수술, 원격 간호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중 의사가 정보통신망을 통해 전송받은 환자의 생체신호, 혈당, 혈압, 맥박 등 측정치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원격지의 환자에게 상담을 해주거나 처방을 해주는 것을 원격진료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이번 정부의 한시적 조치는 '전화라는 수단만으로 한정된 원격진료(의료인의 진단 및 처방)'라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물론 약사가 유선 및 서면으로 복약지도를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약사는 의료법상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원격의료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제33조(개설 등) ①의료인은 이 법에 따른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아니하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으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그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여야 한다.
제34조(원격의료) ①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만 해당한다)은 제33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컴퓨터ㆍ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이하 "원격의료"라 한다)를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의료법 제33조 제1항에서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는 의료행위를 업으로 할 수 없고, 그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행위를 하여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의사는 병원을 차려야만 의료행위로 돈을 벌 수 있고, 그 병원 내에서만 환자를 상대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즉, 의사와 환자가 병원 내에서 대면을 해야만 의료행위가 가능한 것이죠.
예외적으로 의료인끼리 의료지식이나 기술지원 목적으로 원격의료가 가능할 뿐입니다.
현행법상으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원격진료의 상위 개념입니다)는 전면 금지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에 대하여 의료법을 개정해서 원격의료를 가능하도록 하자는 입장과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각 입장별로 주된 이유를 알아볼까요?
* 의료서비스의 개선과 ‘의료 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해
지금 상황에선 무릎이 아픈 노인 환자도 약 처방을 받기 위해 직접 병원까지 가야 합니다. 한밤에 아이가 아플 때 어떤 증상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영상통화로 당직 의사에게 상담을 받을 수도 없죠. 외딴섬이나 산속, 원양선박 등 아예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는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원격의료가 전면 도입될 경우 120만 명의 의료 소외계층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요. 일반 환자들에 대한 의료서비스 개선 효과도 있습니다. 직장과 육아 탓에 시간 맞춰 병원을 찾기 어려운 사람은 물론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과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 노인도 편하게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의료 산업 부가가치 창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원격의료는 정보통신, 의료기기 등 관련 산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격의료 이용률이 인구의 20%로 확대되면 2조 원 규모의 신규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영리 병원 설립, 원격의료 허용 등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 경우 최대 37만 4000개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오진의 위험성 및 의료서비스 질 저하
의사 없이 환자 혼자 입력한 의료 정보가 잘못되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이루어질 수 없고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더하여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 또한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진료는 의사와 환자 간에 이뤄지는 인간관계이므로 IT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기술은 없기 때문에 그만큼 오진의 위험성 또한 커진다고 주장합니다.
*대형병원 쏠림현상 심화
우리나라에서는 가뜩이나 대형병원 선호 현상이 심한데,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한 1차 의료가 붕괴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원격의료가 시작되면 지방 환자들도 너도나도 수도권의 대학병원 전문의에게 진료받기를 원할 텐데 그렇게 되면 대형 병원 쏠림은 더욱 심화되고 동네병원은 설 땅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동네 병원이 도산하고 대형병원만 살아남게 됨으로써 국민의 의료 접근성이 크게 악화된다는 거죠.
*개인정보 유출 위험
환자의 건강정보가 정확한 규제나 보호 없이 공유될 경우 개인정보가 심각하게 유출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중국의 사례를 볼까요?
중국의 모바일 헬스케어 기업 DXY는 온라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체 의사의 70%에 달하는 200여만 명이 이 회사에 소속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유료로 환자를 상담해준다고 합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30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어마어마하죠.
중국 정부는 2016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했습니다. 이후 알리바바, 텐센트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이 뛰어들어 혁신적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내놓고 있죠. 알리바바 계열 앤트파이낸셜의 알리페이는 원격으로 약사와 상담하고 의약품을 배송받을 수 있는 온라인 약국인 ‘미래약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헬스케어업체 핑안하오이성이 2018년 6월 선보인 무인 진료소인 ‘1분 진료소’는 의료용 인공지능(AI)과 스마트 약품 자판기로 구성됐습니다. 3㎡ 넓이의 무인 진찰실에서 환자가 AI에게 증상을 말하면 원격지에 있는 의사가 추가 문진해 진단을 내리고 약을 추천합니다. 옆의 자판기에서 약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데 없는 약은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주문하면 1시간 안에 집으로 배송됩니다.
한편,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도시 폐쇄 결정이 내려진 후베이성 우한시에 5G 기반 원격 의료를 전면 도입했습니다. 베이징, 혹인 쓰촨 종합병원과 우한 시내 명원을 화상으로 연결해서 원격 진료, 상담, 의사 간 회의 등을 진행하도록 한 것인데요. 다른 도시의 의료 전문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 의료 진화 환자 접촉이 없어서 2차 감염 우려가 없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요?
일본은 2015년부터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했습니다. 그 전에는 섬이나 격오지에만 적용하다가 전국 어디서든 할 수 있도록 의료법 규제를 없앤 거죠.
한국에서 원격의료를 할 수 없었던 네이버가 일본 자회사 라인을 기반으로 원격의료 사업에 나섰습니다. 라인의 의료 전문 자회사 라인헬스케어가 작년 말 '라인 건강관리'라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죠. 환자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메신저 라인으로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피부과 의사와 상담할 수 있습니다.
원격의료가 가능한데 처방받은 약은 직접 약국에 가서 받아와야 한다면, 원격의료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데요(물론 처방이 필요 없는 원격의료서비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원격의료뿐만 아니라 약 배송 서비스 모두 불법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어왔어요.
그럼 약사법상 근거 조항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볼까요?
제50조(의약품 판매) ①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4조(의무 및 준수 사항) ④약사는 의약품을 조제하면 환자 또는 환자보호자에게 필요한 복약지도(服藥指導)를 구두 또는 복약지도서(복약지도에 관한 내용을 환자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설명한 서면 또는 전자문서를 말한다)로 하여야 한다. 이 경우 복약지도서의 양식 등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위 조항과 같이 약국에서만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고, 약사는 의약품을 조제하면 복약지도를 하여야 하는데 이는 약사와 환자의 대면 거래를 원칙으로 하는 규정입니다.
위 조항에 근거해서 의약품 온라인 판매 또는 약 배송 서비스가 금지되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도 개정을 통하여 약 배송 서비스를 허용하자는 입장과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섭니다. 원격진료(약 처방을 하는)를 허용하자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로서 약 배송 서비스를 허용하자고 주장하는데요.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편리함 뿐만 아니라 도서, 산간지역처럼 의약품 접근성이 낮은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약 배송 서비스가 필요할 것입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의약품의 관리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어렵고, 약사로부터 직접적인 복약지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약사를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사의 자격을 증명할 수 없다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눈앞에서 증명할 수 없는 약사가 과연 정품 의약품을 제공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고,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처방전이 위조되지는 않았는지 의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의약품 불법거래와 오남용 문제 또한 큽니다.
일본을 볼까요?
도쿄에 있는 미나컬러(mina color) 약국은 ‘약 처방 시 약사와의 대면 설명을 받아야 한다’는 법 조항 규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렇다면 약사가 직접 환자 집을 방문해 대면 복약지도와 처방약 전달을 하면 되지 않겠나’.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약사가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환자 집을 찾아가는 ‘약 택배 서비스’입니다.
사실 약사에 의한 택배 서비스는 인력 활용 면에서 한계가 있는데요. 일본 정부는 온라인으로 약사에게 복용지도를 받고 처방약을 집에서 택배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후생노동성은 빠르면 2020년까지 온라인 약국을 전면 허용할 방침이라고 하네요.
중국은 어떨까요?
알리바바 산하 환자 중심 의료 플랫폼인 알리 건강이 약국 유통망 및 택배 플랫폼과 협력해서 24시간 온라인 의약품 배달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주말에 갑자기 아이가 열이 나는데 약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굴러본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우리나라는 약을 반드시 약국(편의점 상비약 제외)에서 구입해야 하는 법이 있기 때문에 약국이 문을 닫는 저녁이나 주말에는 약을 구입할 수 없죠.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24시간 언제든지 약국에 갈 필요 없이 약을 구입하고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질병의 치료, 예방, 건강관리 전반에 IT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여는 사업을 말합니다. 위에서 본 원격의료와 온라인 약 배송 서비스도 디지털 헬스케어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의료법과 약사법 등의 규제로 인해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사업 시도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위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보면서, '아니 이 좋은 것을 왜 우리나라만 못하게 막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사실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와 환경이 다른 나라들과 다르고, 여러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체계 재정비 및 안전장치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원격의료를 허용한다면 국민의 생명 및 건강과 직결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 모두 모바일,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해 가는 시대의 물결 속에서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막을 수만은 없을 듯합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서 다시 원격의료 쟁점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요.
찬반이 극명히 갈리는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논의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