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에서 이어지는 두 번째 글입니다. 제 경험과 생각을 담은 이 글이 또 다른 힘든 일을 겪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진심을 다해 씁니다.
생활치료센터에 도착하다.
구급차에서 내려 드디어 생활치료센터에 도착했다.
낯선 곳.. 난 이곳에서 10일 간 세상으로부터 격리될 예정이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체온과 혈압을 잰 후 엑스레이를 찍고 방을 배정받았다.
419호실.. 난 10일 간 '419호 최재윤'으로 살아간다.
10일 간 격리될 방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래, 이 것도 인연이다. 반갑게 맞아주마.
요즘 확진자가 많아서 생활치료센터가 2인 1실로 운영된다고 한다.
뭐, 다소 아쉽기는 하나 내 돈 내고 휴양 온 거 아니니까 이 정도에 만족하자.
들어가 보니 이미 같은 날 입소한 룸메이트가 자기 짐을 정리하고 있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나도 이불, 베개, 수건 등등 센터에서 받은 물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숙소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어떤 생각인지 룸메는 창문과 먼 쪽 침대를 먼저 맡았다. 저 창 가까이 좋은 자리를 두고 왜..? 나야 좋지. 그나마 창이 넓어서 다행이다.
이제부터는 방에서만 격리되어야 한다. 2인 1실이기 때문에 방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고, 전화나 대화는 삼가야 한다. 거의 묵언수행 수준의 격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그나마 큰 창이 있고, 베란다까지 있는 게 다행!
'오.. 바깥공기 마시고 싶으면 베란다 나가서 좀 킁킁거리다 들어와야겠군!' 생각하며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창문이 내 새끼손가락 길이만큼만 열릴 뿐 더 이상 안 열린다.
자세히 보니 창문을 못 열도록 바닥에 못을 박아놓은 것.
철저한 격리 방침으로 그나마 기대했던 베란다에서의 바깥바람 기대마저 바로 접어야 했다.
그저 말 그대로 '방콕' 라이프 시작.
생활치료센터의 루틴
'방콕'이지만 일반적인 '방콕'은 아니다.
격리되어 매일 정해진 시각에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를 체크해서 앱에 기록하고, 이를 통해서 의료지원실에서 각 방콕인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매일 두번 씩 건강체크. 휴대폰과 앱이 없던 시절이었다면 어땠을까. 각 방에 전화기를 두고 전화하라고 했을까. 종이쪽지에 적어서 현관문 밖에 놓으라고 했었을까. 참 편리한 시대다.
산소포화도와 혈압은 정상인데, 문제는 열이다.
사실 1년여 기간 동안 코로나 공포감에 철저하게 조심해 왔던 노력들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증세가 경미하기는 하다.
약간의 잔기침과 37.5~37.8도 정도의 미열, 코막힘과 콧물. 그러니까 일반 내가 감기 걸렸을 때 증상과 동일하다. 그런데 그것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긴 한가보다. 같은 방을 쓰는 분은 후각과 미각이 둔해졌다고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생활치료센터가 아니라 병원으로 가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고도 하고. 아무래도 평소의 건강상태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일반 감기 증상 외에 특별한 것은 없으니 평소의 내 체력이 뜬금없이 인증된 것 같다는 생각(사실 대부분의 확진자가 특별히 심한 증상이 없는 듯하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센터 들어온 지 6일 차, 코로나 확진된 지 7일 차, 그리고 퇴소 예정일은 3일 남은 상태.
퇴소 여부를 결정할 때, 해열 치료 없이 열이 나지 않아야 한단다. 열이 계속 나면 퇴소일이 늦춰진다고.
별다른 증상은 없는데, 미열이 계속되어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있어서 그게 좀 걱정이다.
이런 식으로 도시락을 매끼 먹는다.
매끼 도시락을 현관 앞에 올려준다.
도시락이나 물품을 올려주는 분들과 방 안의 확진자가 접촉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도시락을 각 방 앞에 놔두면 '도시락을 가지고 들어가라'는 방송이 나온다.
그러면 마스크 끼고 현관문 살짝 열어 도시락이나 물품만 슬쩍 가지고 들어오는 식이다.
확진자는 복도에도 절대 나오면 안 되고 그저 방 안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2주 있었던 때가 오버랩된다.
그때도 모든 재판을 미루고, 주는 밥만 먹으며,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비슷한 답답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때는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새 생명의 경이로움을 온전히 느끼는 감격스러운 순간순간이었던 반면, 지금은 주위 접촉자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게 하고 계속 불안하게 만든 민폐덩어리, 세상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위험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 물론 산후조리원 때보다 지금이 더 나은 것 한 가지는 있다. 3시간마다 "수유하시겠어요~?"라며 전화가 오지는 않는 것. 그 덕에 잠은 푹 자고 있다...
다행히 잠자리 가리지 않고, 미식가인 반면 또 주는 대로 군말 없이 잘 먹는 둔한 면 덕분에, 센터에서 주는 도시락도 감사히 먹고 있다.
물론 입맛이 별로 없어서 많이 남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매끼 고기반찬에 국물, 후식까지 챙겨주는 것이 어디냐 싶다. 이거 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 아니겠는가..
반면 같은 방에 계신 분은 도시락이 나올 때마다 투덜투덜하시면서 급기야는 반입 가능한 선에서 반찬까지 주문하셨다. 덕분에 나도 반찬 좀 얻어먹었다.
얼마만의 손빨래인가... 애들 옷도 손으로 안 빨아본 나다.
센터 격리기간 동안의 모든 물품은 일괄 폐기 처분된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에 올 때는 폐기해도 문제없을 옷과 속옷들만 몇 가지 챙겨 와야 하고, 집에 돌아갈 때 쓸 신용카드 한 장, 휴대폰, 노트북은 소독 후에 반납된다. 노트북은 소독 후 물이 새어 들어가서 고장 우려가 있음을 미리 경고받았기에, 10여 년 전 사법시험 합격 직후 샀던 이젠 골동품이 다 된 노트북을 들고 와 쓰는 중이다. 수감(?) 중에도 일을 놓을 수는 없기에.
그렇게 10일간의 수감 기간 동안 두세 벌의 옷과 속옷을 직접 손빨래하고 말려가며 입어야 한다.
실제로 빨랫비누와 고무장갑까지 주는데, 그렇게 정식으로 장비까지 갖추고 손빨래 해 본 기억이... 초등학교 때 실내화를 빨아본 것이 마지막인 듯하다. 집에서는 세탁기 버튼 조차 내가 누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데(베이비시터 이모님께서 감사하게도 빨래까지 도와주신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내가 편하게 내 일에 좀 더 집중하며 살 수 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물론 격리 해제 후 손빨래는 두 번 다시 할 일 없을 예정.
쓰레기통이라고 쓰고 의료폐기물 전용 용기라고 읽는다.
평소 일상에서 쓰레기 정리와 분리수거는 남편 담당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엄마를 더 찾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남편이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더 하게 된 것. 하나 격리 중에는 남편이 없다. 쓰레기 정리도 스스로 해야 한다. 생활폐기물을 통한 바이러스 감염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의료 폐기물 전용 용기에 쓰레기를 채우고, 밀봉한 후에 현관문 밖에 살포시 두면 매일 같은 시간에 수거해 가신다.
그렇게 쓰레기가 채워진 의료폐기물 전용 용기를 바깥으로 내보낼 때, 도시락이나 약을 받을 때만 마스크를 끼고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닫는다. 그마저도 각 방마다 도시락 등을 나눠주시는 분들, 복도를 지나 퇴소하시는 분들께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매일 두 번씩 정기적으로 복도 방역을 진행한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여........
지금은 나에게서 배출되는 모든 것이 바이러스로 인하여 폐기 대상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과 머리를 거쳐 나오는 글은 그렇지 않다는 게 위안을 준다. 그래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집에 격리해 있는 가족들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의 급작스런 확진으로 나와 함께 연휴 기간 생활했던 시부모님과 남편, 아이들 또한 자가격리를 2주 해야 한다. 나로 인해 고생할 가족들에 한없이 미안하고, 특히 답답해할 아이들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나마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라 다행. 층간소음 걱정 없어 그나마 눈치 볼 일 없으니 마음껏 집에서나마 뛰어놀아라.
게다가 갑작스러운 자가격리로 준비해 둔 식재료들이 얼마 없는 것이 큰 문제...
그러나 다행히도 경기도에서 상당한 양의 식료품을 5박스나 보내주었다.
확진자를 둔 가족들의 격리 중의 어려운 점을 잘 파악하고 꼭 필요한 복지혜택을 주는 것인데 이건 꽤나 감동이었다.
2주동안 격리 중 많이 답답할 아이들.. 사진만 보아도 답답함이 느껴져 참 미안해진다.
자가격리 중인 확진자의 가족들을 위해 보급되는 식료품. 배달도 바로 안 되어 걱정하던 가족들이 한 시름 놨다.
코로나 확진과 격리에 대처하는 나의 마음자세
'인생 뭐 하나 쉽게 가는 게 없구나'
'왜 하필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걸린 거지? 참 운도 없네'
'남들 다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 혼자 여기 처박혀서 뭐 하고 있는 거지...?'
확진되고 나서는 경황이 없다가, 센터에 감금(?)되어 짐 정리하고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한창 사람들 만나고 일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할 내가 비좁은 방에 낯선 또 다른 확진자와 부대끼며 손빨래나 하고 주는 밥이나 먹으며 격리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격리 해제되는 10일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
내가 없어도 세상은 참 잘 돌아가는구나.. 싶은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아.. 바이러스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같은 방 쓰는 분도 연신 '답답하다',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면서 계속 남편, 지인들과 통화하며 버티고 있다.
격리 중에 이런 것도 준다. 코로나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도 상당히 많은가보다.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의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던 중,
나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스스로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경험이라면, 대부분이 하지 못한 이 경험을 나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승화시키자.'
생각해보면 이 경험은 나에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물론 강제로 이런 상황에 처하기는 했지만, 그동안의 나의 일상을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와 맞는 방향으로 나는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루하루 나는 진심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와 웃음, 따스한 스킨십,
건강하게 숨 쉬고, 걷고, 움직이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해왔던 크고 작은 시도들,
그동안 당연하게만 느껴왔던 일상과 나, 우리 가족들의 건강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감사함에 목이 메어온다.
그래, 내가 가진 게 참 많았구나.
건강과 자유가 확보되어 있는 한 나는 못할 것이 없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간이었어.
부족해서 못하는 게 아니었어. 이미 나는 많은 것을 가졌고, 그저 가진 것으로 행하면 되는 거였어.
누가 더 가졌다고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그저 나 자신에 집중하고 충실하면 될 뿐이었어.
그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로 마음이 가득 채워지니, 이제 더 이상 격리생활이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고 소중하게,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내 삶에 꼭 필요한 시기에 만난 행운(?)일지도.
이제 남은 격리생활은 단 3일
위와 같은 생각에 다다르자 오히려 격리 해제일을 기다리기보다는 현재 시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이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약간 미안하게도 영상통화를 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어차피 나가면 또 지지고 볶고 할 텐데, 격리 중 육아 해방(?) 좀 즐겨보자.
내 자신에 좀 더 집중해보자.
실은 내가 코로나 확진되었다는 소식에 놀라고 걱정하는 지인들이 많았는데,
나의 시답잖은(?) 증세를 확인하고는 오히려 '진심 부럽다', '나도 격리되고 싶다'라고 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