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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윤 변호사 Aug 19. 2021

코로나 영접 일기(1)

그저 남의 일일 줄 알았는데... 충격의 확진까지.


충격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최 변호사님, 코로나 검사 한 번 받아봐야겠어요. 내가 최 변호사님 만나기 전에 만났던 분이 양성 나와서 저도 검사받아봤는데 양성이네요. 꼭 별일 없길 바라요."


광복절 대체휴일이 시작된 이른 아침,

6살, 3살 두 아이들과 이불속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차에 갑작스레 받은 전화였다.

갑자기 머리를 한대 빡! 얻어맞은 기분.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이 걱정되어 더더욱 바깥 만남을 줄이고 미팅도 화상으로 해 왔던 터였다.

그러다가 의뢰인과의 장시긴 대면 미팅에서 잠시잠깐 음료를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갔는데  코로나가 거기까지 비집고 들어온 것.


엄습하는 불안감 속에서 다급하게 마스크를 쓰고 남편과 가까운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내가 양성이라면 우리 가족, 특히 하루 종일 붙어사는 남편도 분명 양성일 터.


아... 생각할수록 문제가 복잡하다.

내가 의뢰인 확진자와 미팅한 이후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가 코로나 확진이라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봐주시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어떡하지?

이모님 확진이시면 이모님 남편분도 위험할 텐데.. 이모님 남편분 학원 운영하시는데 그것 때문에 학원 운영 타격 입으시면 어쩌지?

그다음 날 만났던 우리 법무법인 변호사들과 직원들까지 확진된다면.. 한동안 우리 법인 폐쇄하고, 업무에 큰 지장이 생길 텐데.. 또 그들의 가족들은?

내가 홍보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에 회의도 다녀왔는데..

같이 점심식사를 했던 임원분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했던 우리 팀원은 어쩌지?

나로 인해 협회에 코로나가 퍼져서 가뜩이나 중요한 시기에 업무 마비되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감염되어 큰 피해를 본다면...?

주말에 시댁에 가서 만났던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들은?

우리 시댁은 시아버지 네 형제분께서 단독주택 네 채에 나란히 사시면서 매일같이 왕래가 잦으신대, 생각해보니 남편이 첫째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우리 아버지는 셋째)까지 다 만나고 왔었네.

남편이 확진이면 더더욱 큰일인데.. 게다가 시누이(작은아버지 딸)랑은 우리 부부가 직접 만나 수다까지 떨었는데. 그 시누이는 아이가 둘이라서 평소 코로나에 대한 걱정으로 집 근처도 잘 안 나가는 분인데, 코로나 확진되고 아이와 검찰에서 일하시는 남편까지 확진되면 어쩌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더욱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두려워진다.

내 몸뚱이 아플 걱정은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 그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두려움 속에서 마음의 준비 중...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 심상치 않다. 마음의 준비 중...


정신을 차리고 체온을 재 보니 37.8도 미열이 나기 시작한다.

보통 확진자와 접촉 후 3~5일 정도 후에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데 딱 5일째다.

오늘 검사를 받았으니 내일 오전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알 수 없다.

허나 몸이 심상치 않다.


아...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나와 접촉한 지인들에게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알려야 한다.

내가 확진자와 접촉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검사를 기다리는 중이니 빨리 코로나 검사를 받고 최대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달라고.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드리겠다고. 너무나 죄송하다고.


시댁 분들 연락은 남편이 맡고, 나머지 나와 접촉한 분들께는 내가 일일이 연락을 드렸다.


그러면서, 그래도 확진 가능성은 내가 가장 높으니 나홀로 시부모님 댁 2층에 격리되어 있고, 시부모님과 남편, 두 아이들은 1층에 있었다. 나는 증상이 발현 중이니 일말의 기대감도 내려 놓았지만, 아직 남편과 아이들은 멀쩡하기에 약간의 기대감을 품으면서 2층에 고립되어 있었다.


1층에서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특히 엄마 껌딱지인 세 살배기 둘째가 엄마 보러 2층에 올라오려고 한다. 그걸 아빠가 막으니 서럽게 운다. 그 소리가 내 가슴을 파고든다. 소리는 들리는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시댁 2층에서 격리 중이던 날, 1층의 아들과 영상통화. 엄마를 보니 활짝 웃으며 사랑한단다. 아이고 이쁜 내 새끼.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참느라 혼났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두려움에 휩싸여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목이 따끔따끔해지고 기침이 심해진다. 그래, 이건 빼박 확진이야... 이미 베린 몸, 나만 확진되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제발...






드디어 코로나 검사 결과 날


드디어 검사 결과 시간이 임박했다.

음성일 경우 문자로 통보하고, 양성일 경우 보건소에서 전화가 온다고 한다.

휴대폰 진동이 한 번 오면 음성, 진동이 여러 번 오면 양성인 것.

그렇게 잠에서 깼음에도 눈을 감고 그저 누워있었다.


징... 징... 징...

역시나 진동이 여러번. 전화가 온다. 모르는 번호다. 분명 보건소에서 온 전화일 것.

"여보세요?"

"여기 보건소인데요. 최재윤 씨 맞으시죠? 코로나 양성 나오셨어요."


그럼 그렇지.

그 이후 동선 확인, 치료센터 입소, 소독 등을 이유로 수도 없이 전화가 왔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별 충격은 없었다.

관건은 남편이었다. 남편이라도 확진이 아니었으면...


그 사이 1층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음성이라고 문자 왔어"

오.. 신기하다. 우리 둘이 매일 붙어 다니고 엄청 친한 사이 맞는데... 다행이면서도 뭔가 살짝 민망(?)하다.

쇼윈도 부부 아니라궈...


어쨌든 한시름 놨다.

하루죙일 붙어있는 남편이 음성이라면 그 외에 접촉자들도 음성일 가능성이 높을 터!

허나 내가 확진된 사실을 빨리 알리고 더욱 조심하라고, 코로나 검사 안 받았으면 꼭 받으라고 당부해야 한다.

그렇게 또 접촉 지인들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당부의 연락을 돌렸다.

마음속으로 기도 또 기도를 하면서...


그리고 시부모님과 우리 아이들도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물론 나는 계속 2층에서 격리되어 있으면서 치료센터 입소를 기다리고 있었고, 음성 나온 남편이 아이들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선별 진료소에 다녀온 것.

그 쪼그만 것들이 코 저 뒤쪽까지 면봉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아플꼬... 생각만 해도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이 엄마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다, 고생이 많아.


니들이 고생이 많다....

 

생활치료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서 바로 입소는 어렵고 다음 날까지 자가 격리하며 기다려야 한단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2층에서 홀로 외로이 짱 박혀 있었다.


늘 카페에서 아이스라테를 마시는 것으로 일상이 시작되었는데, 그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간절해진다.

바로 내려가서 아이들을 껴안고 볼을 비벼대고 싶다. 아이들 냄새가 너무나 그립다.

남편과 주말마다 가까이 드라이브를 다녀왔었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남편과 커피 마시며 음악 들으며, 수다 떨면서 창밖으로 손 내밀며 느껴지는 바람결..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꿈만 같다.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금세 현실로 다시 돌아와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인다.

내 주위 확진자가 얼마나 생기려나..

나로 인해 사람들이 피해 입으면 안 되는데...


그러한 생각들로 밤을 지새우며 나와 접촉한 지인들의 검사 결과가 나오는, 그리고 내가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가는 날이 밝아왔다.






접촉자들의 검사 결과날&생활치료센터 입소날



아침 8시부터 두근두근... 시간이 너무 더디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몸에서 열감이 계속 있고 기침은 나는데 견딜만하다.

그저 나로 인해 또 다른 확진자가 얼마나 발생할지가 걱정일 뿐.


"애들이랑 부모님 모두 음성이래!"

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안도를 넘어서 기뻤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의아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옆에 끼고 살아왔는데도 음성이라니(참고로 잠복기에도 음성일 수 있다. 그렇기에 음성이었다가 며칠 후 양성으로 바뀔 수도 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는 계속 음성으로 아무런 증상이 없는 상태).

나는 의뢰인과의 미팅 중 음료섭취 하는 짧은 시간 동안 감염 것으로 추측되는데, 매일매일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음성이라니.


그 뒤로 베이비시터 이모님, 함께 근무하는 변호사님들과 직원분들, 대한변호사협회 임원들과 직원분들, 그리고 시댁 친지분들까지 모두 음성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아... 정말 불행 중에 얻은 큰 행운이었다.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정말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되는 상황까지 갔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코로나 확진자들도 아마 자신이 코로나 증상으로 몸이 힘든 것보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감염되어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에 더 큰 심적 고통을 느꼈으리라.

그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러한 고통에서 나는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말이다.


한동안은 '확진자' 최재윤으로 살아갈 예정



드디어 생활치료센터에서 나를 데리러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준비하고 있으란다.

생활치료센터에 가져가는 물품은 모두 폐기되기 때문에 폐기되어도 문제없을 물품만 가져가야 한다.

그렇게 2층에 계속 격리되면서 주섬주섬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KF94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장갑을 낀 상태에서 차에 타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렇게 내 몸뚱이는 위험물질(?)이 되어 밀폐 중 ㅠㅠ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2층에서 내려오니 아이들이 보인다.


6살이라서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한 첫째는 그저 멀뚱멀뚱 엄마를 쳐다보고 있지만, 엄마 껌딱지 세 살배기 둘째는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한테 달려들려고 한다. 그걸 아빠가 붙잡고 있으니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칭얼거린다. 눈물이 왈칵...


"엄마 금방 다녀올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엄마 다녀오면 신나게 놀자!"

웃으면서 얘기라도 해 주고 나가고 싶은데, 내가 말하면 또 전염 위험이 있을까 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저 멀찍이서 바라보며 손만 흔들어줄 뿐.


당시 상황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ㅠㅠ


난행 처음 응급차를 타보았다. 방호복을 입은 기사님(?) 문 열고 대기 중.


그 사이 집 앞에서 대기 중이던 응급차에 올랐다.

한여름에 방호복 입고 운전하시는 기사님도 참 고생이시다.

그렇게 응급차에 실려 생활보호센터로 이송되었다.


응급차 속에서 바라본 풍경.. 참으로 아름답구나. 당분간은 느낄 수 없어서 더욱 아름답구나.






당분간 내 주 신분은 '확진자'



이렇게 한동안 나는 엄마, 아내, 변호사 이전에 '확진자' 최재윤으로서 살아가게 될 예정이다.

일단 나로 인한 추가 확진자가 없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나와 접촉한 분들과 그분들의 가족들까지 수십명이 한동안 확진의 불안감을 안고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되었다는 것에 아직도 큰 죄책감이 있지만 말이다.

 

한편 코로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막상 확진되어 보니 그동안의 감기 증상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미열과 잔기침, 콧물과 코막힘 정도는 원래 감기 때마다 있었던 증상인데, 이번에도 동일하다. 그래서 오히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물론 앞으로 더욱 조심할 것이고, 예약해 둔 백신도 맞겠지만.


 내가 치료센터로 이송되는 사이 내가 격리되었던 2층 코로나 바이러스 박멸하러 오신 귀한 분



뭔가 '위험물질' 취급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살짝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어디 가서 무시 또는 소외당하며 살아본 적 없는 인생이었는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여러 이유로 타인의 편견과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이렇게 앞일은 참으로 모른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안타까운 마음만 가졌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생활치료센터 내에서도 내 본업을 소홀히 할 수는 없어서 폐기될 것을 감수하고 노트북을 챙겨간다.

당분간 재판은 못 나갈 테니, 밀린 집필 작업도 할 것이다.

그 사이 매일같이 비비대며 살아오던 남편과 아이들의 온기, 사랑스러운 눈빛과 웃음소리는 눈물 나게 그리울 예정이다. 그건 화상전화로 절대 대체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어떠한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발상을 전환하는 특기가 있다.

우리 가족이 생각나서 눈물이 턱 끝까지 차오르다가도, 육아와 재판에서 아무런 눈치 없이 온전히 해방(물론 서면 업무에서까지 해방될 수는 없지만)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미치자 눈물이 다시 쏙 들어간다.


그렇게 나는 '확진자'로서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게 되는데.........



코로나 영접일기 2편-생활치료센터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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