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윤 변호사 Apr 05. 2020

'고난'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자세

어쩌면 고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일지도.

사업을 하시던 엄마.

자금난에 시달리는 사업체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집 담보로 대출도 받고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메꾸고 메꾸던 시기, 나는 사법시험을 최종 합격했다.


그리고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신용대출로 한도 꽉 채워 마이너스 통장을 만든 것.

더 이상 엄마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엄마 사업하는데 급한 채무가 있다면 어느 정도 돕기 위해서였다.


딸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는 것을 안 엄마는 마음이 많이 조급했는지 통장을 달라 하셨다.

“급하게 조금 쓸 일이 있어서 그러니 쓰고 엄마가 바로 넣어줄게. 넌 공부만 열심히 해.”라며.

‘이제 사시도 합격하고 엄마에게 이렇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딸이 되었구나’ 생각하며 흔쾌히 드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사법연수원 들어간 첫 달, 은행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대출이자를 안 내고 있다고 빨리 내라는 독촉 전화였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엄마께 전화했더니,

“급하게 쓸 일 있어서 엄마가 썼어. 금밤 메꿔줄 거야. 공부만 열심히 해, 걱정하지 말고”라신다.

불안했지만 엄마 말을 믿고 그렇게 연수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엄마의 사업체는 완전히 무너졌고, 결국 마이너스 통장 대출은 한도를 꽉 채우고 이를 메꾸지 못한 상태에서 딸이 걱정할까 봐 대출 이자만 겨우겨우 내고 있는 상황이었음을 뒤늦게 연수원 1학기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경매 진행으로 인해 내 학창 시절과 돌아가신 아빠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20년을 넘게 살아온 아파트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다.


연수원 1학기가 끝나고 다른 연수생들 2학기 예습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집을 처분하고 수중에 남은 단돈 500만 원을 가지고 내가 고시공부를 하던 신림동 고시촌 곳곳을 뒤지며 엄마와 나, 내 동생이 살 곳을 찾았다.  

이렇게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수백 개는 뒤졌던 것 같다. 하아 ㅠㅠ


500만 원에서 첫 달 월세를 내고 대출이자도 내야 했기에, 고시촌 꼭대기 버스 종점 부근에 3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짜리 살 공간을 다행히 마련했다.


고시 공부할 때는 고시촌 아랫동네는 시설 좋고 비싼 원룸이 많고, 위로 올라갈수록 부모님께 손 벌리기 민망해진 장수생들이 주로 사는 저렴한 원룸이 많다고만 단순히 알고 있었다.

다행히 위로는 안 올라가고 시험에 합격했는데, 사법연수생이 되어 오히려 장수생들이 산다는 원룸보다 더 높은 곳에 살게 되었다.


고시생이 아닌,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겨우 방한칸 얻은 사람이 되어 바라본 고시촌 윗동네는 또 달랐다.

1층인 우리 방 바로 밑 지하 더 좁은 방에 두 꼬마 아이와 부부가 월세로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고 겪어왔던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달동네 그곳에 있었다.


그때부터 엄마와 나, 내 동생은 매달 내야 하는 월세와 대출이자를 어떻게든 마련해내는 게 급선무였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빚 독촉하러 채권자들이 올 때면 사람 없는 척 불을 끄고 쥐 죽은 듯이 웅크려있었다.

한 번은 연수원 수업을 마치고 어두워진 저녁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촛불을 켜고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라면을 끓여 바닥에 쪼그려 앉아 드시고 계셨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서 전기와 가스가 모두 끊어진 것이다.

엄마가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고 하는데, 도저히 같이 먹을 수 없었다.

이불 덮고 자는 척하며 그 좁은 방에서 소리 안 들리게 애를 쓰며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나는 당시 그 상황 자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엄마에 대한 원망 또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급하게 쓰고 메꿔준대서 믿고 흔쾌히 드렸던 마이너스 통장을 결국 다 써버려, 아직 연수원 수료도 하지 못한 딸을 큰 금액의 '채무자'로 만들어버린 큰 족쇄를 채웠다는 원망.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딸에게 어떤 동의도 없이 다 써버리고는 계속 "잘될 거다 곧 메꿔줄 거다"란 희망고문만 주었다는 원망.

아빠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의 오랜 보금자리를 엄마 사업에 필요하다고 엄마 임의로 담보 잡아 다 날려버렸다는 원망.


그 가파른 월세집까지 올라갈 때마다,

대출이자 납입 독촉 문자나 전화가 올 때마다,

채권자들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엄마에 대한 원망을 주체 못 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어떡할 거냐고, 엄마가 우리 가족 모두 망가뜨렸다고 울부짖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항상 똑같은 말이었다.

“잘 될 거야. 일이 잘 해결돼가고 있어. 좀만 기다려보자.”     


당시 나의 그런 사정을 누구에게도 알리기 싫었다.

특히 연수원 동기들에게는 더더욱.

유복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가족이 있는 동기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와 같은 그런 사정이 있는 동기는 없어 보였다.

집 주소를 적어낼 일 있으면 이전에 살던 아파트 주소를 적어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증오와 원망, 수치심으로 가득 찬 어두운 실제 내 모습과 연수원에서 이를 티 내지 않기 위해서 애써 밝아 보이기 위해 애쓰던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감 또한 큰 고통이었다.

연수원 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내가 제일 못난 것 같아 위축됐다.

다 놓고 도망치고 싶었다.     




어찌어찌 연수원을 수료했다.

그리고는 바로 시작된 변호사 생활.

월급의 4분의 3이 집 월세와 대출 이자로 나갔다.

대출이자 연체가 누적되어 이자가 처음 내던 금액의 거의 3배 가까이 늘었던 것.   

  

그래도 이제 월급을 받으니 다행히 돈을 구할 걱정까지 할 상황에서는 벗어났다.

조금은 숨통이 틔었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증오와 원망, 내 사정에 대한 수치심 등으로 뒤엉킨 마음을 숨기기 위해 밖에서는 더욱 밝게 웃고 행동했는데 그 괴리감이 크니 내 맘은 점점 괴로워져 갔다.

삶의 의욕이 점점 사라져 갔다.

     

그 시기 보게 된 책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뺏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즉, 환경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지만, 그 환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아, 내 상황은 내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내가 하기 나름이구나.


그동안 나는 내 상황을 엄마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고 남한테 드러내기 부끄러워 애써 숨기고 살아왔다.

그로 인해 마음이 더욱 피폐해지고 계속 그 안 좋은 감정에만 매몰될 수밖에.      


좀 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일단 엄마.

의지할 남편도 없는 상태에서 유일한 가족인 딸들의 원망을 받고 채권자들의 독촉을 받으며 지내온 그녀.

이를 오롯이 홀로 감내하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오랜 기간 자기 자신의 분신인양 여기며 일궈온 사업체를 정리하는 것은 자신의 지난 삶을 부정당하는 것과 같았으리라.

게다가 자기 자신의 최고 자랑거리로 여기는 큰 딸의 발목을 잡았다는 죄책감.

그렇게 자존심 셌던 그녀가 그간 느꼈을 것들을 생각해보니 나의 고통이 별거 아니게 느껴졌다.


누추한 월세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안 그래도 왜소한 체구가 더 작아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그 모든 고통을 안고도 이렇게 버티고 살아준 것만으로 감사하다.”


어느새 내 맘 속 원망과 증오심이 서서히 사라졌다.

내가 겪은 고통들과 가진 빚들 모두 없애준다고 해도 지금 내 곁의 엄마와는 절대 바꿀 수 없지 않은가.

고난을 통해 엄마의 존재 자체를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달동네 월세방에 살고 있는 내 처지. 이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내 마음.

생각해보면 이는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사람들에게 좀 더 있어 보이고 싶어서 내 실제 모습을 꽁꽁 숨기고 애써 만들어낸 모습만 드러내려고 한 내 생각을 부끄러워할 일이었다.


‘있어 보이고 싶은 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는 남들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구나.

그렇다면, 달동네 월세방에 사는 것이 남들보다 뒤처진 것인가?

경제적으로는 뒤처질지 몰라도,

나는 그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통해 깨닫고 배웠다.

내가 그동안 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소외된 곳에 관심을 가지며 '연대'의 가치에 대하여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오히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더없이 값진 것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내가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면에서 좀 뒤처진들 어떤가.

온전히 내 삶을 진심을 다해 살아내면 될 뿐 누군가와 비교를 할 필요가 있을까?

세상에 하나뿐인 나 자신을 누구와 어떤 잣대로 비교를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자, 어느새 수치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냥 소중한 내 경험 중 하나가 되었다.


의뢰인과 상담할 때 오히려 나도 비슷한 일 겪었다고 지금도 빚 갚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러면 “변호사님은 고생 안 하셨을 것 같은데 정말 그랬어요?”라며 더 나를 가까이 여긴다.  

   

그렇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바꿔보니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지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도 더 걸어 올라가야 했던 그 월세방,

촛불 켜놓고 엄마와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함께 먹었던 라면,

문을 세차게 두드리던 채권자들(물론 그들의 마음 또한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죄송할 일이다.),

매달 밀리는 월세와 대출이자,

그리고 내 온 정신을 휘감았던 부정적인 마음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나는 그때 잃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 시간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나는 내 인생에 또다시 올 ‘고난’을 마주하는 법을 깨닫고,

소외된 사람들까지 볼 수 있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다),

고난을 감내할 내 인내심의 그릇 또한 넓힐 수 있었으니

오히려 앞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자산을 얻은 것이다.      


그때의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선물이 된 셈이다.




아무래도 변호사이다 보니 삶의 어려운 고비에 있는 사람과 상담하는 일이 많다.

남부끄럽다며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못하는 걸 처음 털어놓는다는 사람도 있고, 울먹이는 사람, 오열하는 사람, 분에 못 이겨 얼굴이 시뻘게지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다 보면 이번 일로 잃는 것도 있지만 분명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보이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아갈 방향 또한 보인다(물론 너무나 심각해서 평생 치유할 수나 있을까 싶는 사건은 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고통스러울 때가 가끔은 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경청은 하되 그들의 감정에 맞춰 나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지는 않는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내 표정에서 ‘괜찮아요. 힘들겠지만 충분히 같이 해결해나갈 수 있어요’라는 나의 무언의 메시지를 느꼈으면 하기에.        


그리고 상담이 끝날 무렵 웃으면서 이런 말을 건넨다.

“그래도 이런 일 안 일어났으면 어쩔뻔했어요. 오히려 이번이 기회일 수 있으니 잘 해결하고 앞으로 이런 일 안 생기게 잘 준비해보자고요!”

지금 상황이 최악이라고 느끼고 그 생각에 매몰된 그들에게 다른 관점으로 눈을 조금 돌릴 수 있도록 이끌어본다. 이런 방식으로 누군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 이 또한 내가 그 고난을 통해 얻은 귀중한 자산이다.          




예고 없이 닥친 고난에 원망스럽고, 앞이 막막해 주저앉고 싶다.

손 내밀고 싶지만 남부끄러워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일어난 일이라면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힘들지만 자신의 상황을 좀 더 멀리 떨어져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기회로 만든다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한발 한발 힘내어 걸어갈 수밖에.


분명 극복할 수 있다. 당신은 그리 약한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반드시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잊지 말고, 내가 잃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에게서 희망을 찾아보자.     


나는 누구와 비교 불가능한 세상 유일한 존재다.

누군가에 뒤쳐져있다고 느껴질 때,

위축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

그 누군가를 바라보지 말고 시선을 나에게 돌려 나 자신을 바라보자.


내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거나 부족한 것이 있을 때,

이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해가며 이겨나가는 나만의 스토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분명히 이전보다 더 지혜로워질 것이며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비슷한 힘든 일을 겪은 누군가에게 당신의 그 스토리는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가진 지금의 관점을 바꿈으로써 가능해진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어떤 어려움 속에 있을 당신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길,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시간을 보내는 삶을 살지는 말길, 온전한 '당신의 삶'을 살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이 글을 쓰며, 내가 어렵게 얻은 소중한 자산을 다시는 잃지 않도록 되새기고 또 되새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당신만의 색으로 삶을 채워가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