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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윤 변호사 Mar 29. 2020

당신은 당신만의 색으로 삶을 채워가고 있나요?

우리가 잊었던 우리 각자만의 '색'을 찾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보수적인 법조계에서 변호사로 일한 지도 꽤 됐다.


이제 어느 정도 일도 익숙해져서 아직도 어렵긴 하지만 초반의 그 어설픈 단계는 넘긴 듯하다. 

다양한 사건을 경험해 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이 해 왔던 기존 업무의 틀에서 벗어나, 일하는 나도 더욱 즐겁고 사람들에게도 더욱 이로울 뭔가 다른 방식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나 정도 연차 이상 되면 송무가 지겨워져서 정치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는데 난 그렇지 않아서 천만다행. 물론 그전에 자질도, 인격도, 돈도 부족하다만!).


의뢰인들의 다양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다양한 책도 보면서 ‘이래볼까?’, ‘저래 볼까?’싶은 여러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중 일부는 업무에 적용해 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의뢰인과 상담할 때, 일단 의뢰인이 가장 원하는 목적(승소, 패소가 아닌 진심으로 원하는 구체적인 것)부터 확실히 한 다음 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주변의 관계와 상황, 의뢰인의 심리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들으면서 화이트보드에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심리적, 상황적, 법적 대처방안에 대해 함께 구체화한다. 

의뢰인은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용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될 뿐만 아니라 그저 막막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불안감이 조금씩 해소되며 '이렇게 하면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힘을 얻는다. 깜깜했던 동굴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느낌이다.


사실 이건 내가 뭐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의뢰인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 구체적으로 묻고, 또 물으며 정리하다 보면 그 내용 속에 길이 있게 마련이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단지 나는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변호사로서 법률상담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을 본인 스스로 명확히 파악하도록 돕고, 자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정리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찾아가는 것. 그 해결의 실마리는 '법'이 아닌 경우도 상당하다.


변호사로서 '법'의 테두리에서 상담을 하던 기존 방식을 깨고 더욱 능동적으로 의뢰인의 말을 듣고 이끌어내는 과정은 나도 더욱 뿌듯하고, 의뢰인에게도 더욱 도움이 된다(상담 후 진이 빠지긴 한다. 홍삼을 먹어야겠다).


뭐 이렇게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으며 살고 있던 중 초중고 동창이었던 30년 지기 친구와의 간만의 카톡.


나는 그저 지금을 사는데, 30년 지기 친구는 나에게서 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모두 겹쳐져 보이나 보다. 


친구에게 나의 요즘 그런 생각과 시도들에 대해 말했더니,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랬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랬었나?

아, 내가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 

문득 무모하리만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던 그 시절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줄다리기 1등'이라는 훈장


학창 시절 나에게 가장 뿌듯하고 자랑거리였던 일은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어떤 큰 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바로 고등학교 1, 2, 3학년 내내 내가 반장이었던 우리 반이 체육대회 줄다리기 1등을 차지했던 것!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 배운 줄다리기 필승 노하우는 이렇다. 

일단 반 친구들이 모두 다닥다닥 최대한 일렬로 붙어선 다음 줄을 겨드랑이 사이에 단단히 끼우고 두 손으로 줄을 꽉 움켜잡은 후 시작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바로 드러눕듯 몸을 뒤로 젖히는 것이다. 

‘영차영차’하면서 힘을 줬다 뺐다 하는 상대방 팀은 속수무책이다.

바로 드러누워 하늘 보고 그대로 뒤로 계속 힘을 주면 서서히 뒤로 뒤로 걷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상대팀이 줄을 놔버렸나? 싶을 정도로 줄이 쉽게 끌려온다.

상대팀은 앞으로 끌려가다 못해 고꾸라지고 줄을 놔버린 것이다!


내가 반장이었던 1,2,3학년 우리 반은 위와 같은 내 전략을 믿고 최선을 다해 따라줬던 것이다. 

다른 반도 이 방법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반에 있는 얌전하고 소극적인 친구들부터 '날라리'라고 불리던 친구들까지 우리 반 전원에게 ‘우리 같이 해서 꼭 1등 만들어보자!!’며 열심히 바람을 불어넣었더니, 이게 웬일인가. 

정말 자기 일들처럼 여기며 간절한 맘으로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 각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떨려하면서도 서로 다독이며 집중하고, 또 이겼을 때 함께 부둥켜안고 기뻐하던 그 모습! 

내 마음이 모두에게 통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마음으로 함께 해냈다는 그 성취감은 직접 느껴봐야 알 수 있다. 


고 3의 만우절    


고3에 올라간 첫 달인 3월. 

‘고3’이라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시작될 그 시기에 나에게는 공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막 학창 시절 잊지 못할 '만우절' 추억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3월 내내 수업시간에도, 수업 끝나고도 마음 맞는 반장들,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입시공부의 고통’이 아닌 ‘창작의 고통’을 느껴가며 각종 만우절 아이디어를 만들어갔다. 

점차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각 학년 반장들을 모아서 만우절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방법을 전달한 후 3월 31일 마지막 리허설을 끝냈다. 그날 밤 긴장감과 기대감에 잠을 설쳤던 것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4월 1일 만우절 당일. 

비밀리에 방송을 통하여 별안간 수업시간에 울려 퍼지는 신호와 함께 전 학년 학생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미리 섭외한 똘끼 충만한 끼쟁이 친구를 교주로 세우고 모든 전 학년 학생들이 그 교주에게 홀린 듯 절을 하는 진풍경. 교주가 “믿쉽니까!” 하면 전교생이 “믿쉽니다!” 소리치며 교주를 찬양한다. 

교주의 주위에는 고3 각반 반장들이 각 반에서 뜯어온 커튼을 머리에 두르고 마치 교주를 지키는 사도인 양 근엄하게 서있다.


대략 이런 골 때리는 내용이었는데 뒷부분은 기억이 잘 안 난다. 

허나 갑자기 학생들이 빠져나가버린 텅 빈 교실에서 창밖으로 어이없는 상황을 낄낄거리며 바라보던 선생님들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창 중요한 시기에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짓거리나 한다고 혼낼 법도 한데, “제대로 준비했네! 이런 건 정말 처음 본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던 선생님.

지금도 고등학교 찾아가서 선생님들께 그때 그 만우절 말씀드리면 “아! 네가 그때였구나! 그 학년이 진짜 유별났지!”하면서 기억하신다. 


모르겠다. 

그 당시 3월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난 더 좋은 학교를 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아마 난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소박한 내란 선동(?)    


아뿔싸, 지각을 했다. 

나 말고도 지각을 한 친구들이 열댓 명이 되어 선생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 

운동장 끝에서 반대편 대각선 끝 농구골대까지 돌고 오는데 선착순 5명 안에 들면 안 맞고 교실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면서 "시작!"을 외치신다. 


열댓 명의 지각생들이 사력을 다해 뛴다. 

나도 생각 없이 선생님께서 하라는 대로 농구골대를 향하여 달리다가 문득 든 생각, ‘아니, 내가 5명 안에 들면 내가 안 맞는 대신 누군가는 맞을 거 아냐? 에이 그냥 맞고 말자!’ 

그리고는 함께 달리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야야! 그냥 뛰지 말자. 그냥 맘 편하게 맞자고!” 


내 뜻에 동조한 친구들과 함께 농구골대를 조깅하듯 쉬엄쉬엄 뛰어 들어오니 이미 전력질주를 하고 들어온 친구들이 헉헉대며 서있다(물론 그 친구들도 잘못은 없다. 그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을 뿐).

이 과정을 지켜본 선생님께 내란을 주도(?)한 죄로 몇 대를 더 맞았다. 어우.. 마이 아팠다.

엉덩이는 따끔따끔하지만 친구들이랑 낄낄대며 교실로 들어갔다. 


그때의 나는 납득할 수 없는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보다, 차라리 더 맞을지언정 친구 간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니, 

나는 혼자 무엇을 하는 것보다 친구들을 움직여 함께 이뤄나가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납득이 안 가면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반장으로서 내가 조금 희생하거나 손해 보더라도 앞장서 친구들을 돕는 것을 즐기며, 

평범한 일상을 깨고 뭔가 색다른 걸 찾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더 골 때리는 일도 많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미화한 표현이다. 흠..)


그렇다. 특별한 이해관계나 책임져야 할 것이 없던 그 시절, 

나는 다행히 크게 엇나가지 않고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내용으로 채워왔다.

      

이후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거리가 먼 ‘법대’에 진학하고,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지나 변호사로서 업무를 익혀가는 동안 나는 나의 어릴 적부터 지녀 온 그 기질을 내 안 저 깊은 곳에 묻어 두고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 일을 배워가는 방식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밟아 온 평평한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변호사 연차가 쌓이고, 가정을 꾸려 남편과 두 아이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어느새부턴가 '내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그 물음을 통해 내 마음을 한 커플 한 커플 벗겨내다 보니 나만의 색을 가진 투명하고 반짝이는 보석들이 보인다.

오래 감추고 감추다 끝내 잊고 있었던 그것들.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많기에 어렸을 때처럼 무모하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내 맘에 끌리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내 선택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운신의 폭이 좁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타이틀은 같을지언정 나만의 색을 가미한 조금은 다른 시도들을 이어가려고 한다. 

남들 다 하는 것은 잘 안 하려는 삐딱함, 

내가 납득 안 되는 일은 거부하려는 고집스러움,

사소한 일상에서 뭔가 특별함을 이끌어내고 싶은 욕망, 

사람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돕고자 하는 그 선의.


내가 가진 그것들을 남들이 살아왔던 방식을 따라온 평범했던 일상에 조금씩 섞어보려고 한다.   

이미 남들이 수없이 걸어간 그 길과 멀리 떨어지지는 않지만,

조금은 다른 궤적의 나만의 길을 만들어보려 한다.

  

그렇게 일상에 나만의 색을 더해가며 남과 다른 내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당신도 비록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잘 보이지 않지만 당신만의 기질이 분명 있을 것이다.

세월과 부담들로 많이 덮이고 오래돼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지만 당신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자.

당신이 기억하는 추억들 속에 당신만이 가진 색깔의 투명하고 빛나는 보석이 촘촘히 박혀있다.


그 보석의 색을 유심히 살펴보자.

그것이 당신의 삶을 타인과는 다른 ‘당신만의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생각 드는가?     

하루하루 쳇바퀴 굴리는 삶을 산다고 생각되는가?

그저 무언가에 끌려가듯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는가?


당신이 잊고 있던 당신 안의 기질을 찾아보자.

그리고 당신의 그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당신의 그 기질을 조금씩 섞어보자.

취미생활이 될 수도, 일을 하는 사소한 방식이 될 수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좋다. 

그저 별 의미 없이, 또는 남들 하는 대로 해오던 무채색의 일상에 당신만의 색을 조금씩 입혀보자.

그렇게 일상에 '당신'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보자.


당신의 삶은 점차 당신 본연의 색에 가까워질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당신의 인생은 비로소 당신만의 깊은 향과 색을 뽐내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어린 시절  당신은, 

무엇에 그렇게 시간 가는 것을 잊고 몰두했었나?

무엇에 그렇게 깔깔거리며 즐거워했었나?

무엇이 그렇게 소중했었나?


오랜만에 마주한 당신만의 색이 당신의 삶 전체에 물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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