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커리어가 쌓인 뒤에 찾아온 묘한 공백에 대하여

Form & Ground, 작은 디자인회사 대표의 2025년 회고록

by 재영

생각해 보면, 올해는 내 인생에서 꽤 특이한 해였다. 서른이 되었고, 처음으로 ‘학교’라는 울타리가 완전히 사라진 해이기도 했다. 스무 살에 대학에 들어가 학사와 석사를 거치고, 중간중간 휴학까지 겹치며 거의 10년을 학교라는 구조 안에서 살아왔다. 일과 병행하며 스물아홉에 졸업을 했고,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떤 제도에도 속하지 않은 채 혼자 그라운드에 서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나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 소속은 보호막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대신 설명해 주는 장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나 혼자 노를 저으며 방향을 잡아야 하는 시기였다. 소속감과 모호한 커리큘럼도 없고, 공동의 목표도 없으며, 평가 기준조차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상태.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것은 분명 나였지만,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나에게 돌아오는 시기였다.


2024년은 유난히 성장치가 컸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기회가 왔고, 결과 역시 좋았다. 예상하지 못한 확장과 성과가 연달아 찾아왔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한 해를 통과했다. 그래서 올해를 시작하며 나는 욕심을 크게 내지 않았다.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하기보다는, 작년의 성장에 걸맞은 성과만 유지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 넓히기보다는 줄여나가자, 더 많이 하기보다는 정리하자고 마음먹은 해였다. 확장이 아닌 조정의 시기, 가속이 아닌 균형의 시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출발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을 덜어냈고, 균형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하나씩 메꿔 나갔다. 회사를 성장시킨다는 것이 어떤 고통을 동반하는 일인지 몸으로 겪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결정 하나가 관계를 바꾸고, 선택 하나가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체감했다. 그 고통은 분명 무척 힘들었지만,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감내하려 애썼고, 그렇게 시작된 시간들은 결국 나에게 많은 것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과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계속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올해의 나는 욕심이 많지 않았다. 작년에는 작가로도, 대학 강사로도, 여러 프로젝트와 재미 요소가 섞인 일들을 동시에 해왔다면, 올해는 오롯이 하나의 일만 다루었다. 아침 7시에 눈을 떠 밤 2시까지, 그 일 하나를 붙잡고 사고하고 구성하고 가다듬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같은 질문과 함께 보내며, 같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일상.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밀도가 높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무척 많이 들었다. 무언가를 더 배우겠다는 생각은 일부러 1년 미뤘고, 누군가를 가르치겠다는 마음도 잠시 내려놓았다. 그래서 2학기에는 출강도 나가지 않았다. 지금의 나에게는 누군가 앞에 서서 말하기보다, 나를 감싸오는 일들을 충분히 받아들이는 시기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리도 필요했고, 구조와 체계를 잡는 일도 분명 중요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은 사고할 수 있는 충분한 재료였다.


지반을 다지려면 흙과 원자재가 충분해야 하듯, 나는 일단 날것의 무언가를 최대한 많이 깔아 두고 싶었다. 정제되지 않은 채로, 판단하지 않은 채로,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축적하는 시기였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고, 그 혼란 속에서 나만의 언어와 기준이 서서히 드러나기를 기다렸다. 그 날것을 마주하며 알게 된 나의 단점들, 그리고 분명히 내세워야 할 장점들. 디자인학과를 나와 어도비를 다루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취업이라는 각박한 범위가 아닌 창업이라는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온 나의 선택들. 그 선택은 언제나 불안정했지만, 동시에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차별성을 앞으로 어떻게 강화해야 하는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엮여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었다. 그 질문의 과정에서 나와 함께해 준 많은 사람들과 상황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배웠고, 나의 부족한 도전이 생각보다 많은 운을 동반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체감하게 되었다.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들조차, 돌아보면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2025년은, 솔직히 말하면 화려한 성과의 해였다. 큰 기업들과의 프로젝트가 이어졌고, 여러 업체들로부터 협업 제안이 들어왔으며 늘 그렇듯 새로운 일들을 도맡아 즐거이 달렸다. 그러는 과정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다루며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매출은 분명히 성장했고, 그에 비례해 감당해야 할 책임과 부담 역시 커졌다. 팀은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진 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고, 나는 그 중심에서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는 위치에 서 있었다. 또래보다 두세 배 많은 시간을 일에 투여한 대신, 결과 또한 분명했다. 또래 평균과 비교하면 다섯 배, 많게는 일곱 배에 달하는 연봉을 자랑하며, 스무 살의 내가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성과와 역할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단순한 보상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로 조직을 이끌며 누군가의 생계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큰 무게로 다가왔다.


성과는 분명 눈에 보였지만, 그만큼 결과에 기대어 안주할 수 없는 시기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높은 성과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책임들이 생겨났고, 그 책임은 나를 한 단계 더 깊은 사고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 하나의 깨달음이 나는 무엇보다 소중했고, 이 글을 쓰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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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텨온 시간은 언제 정리되는가


돌아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버텨왔다. 커리어를 위해 살았고,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애썼으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반복해 왔다. 그 시간들은 분명 의미 있었고,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재료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버틴다’는 말이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한 언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직은 정리할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으로 쌓아둔 것들을 그대로 둔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버텨온 시간은 점점 축적되었고, 축적된 만큼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무게로 돌아온다. 버팀은 분명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힘이었지만, 그 자체로 계속해서 유효한 방식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그동안 누적되어 온 것들을 한 번 뒤집고, 정말 필요한 것만 챙겨 나가야 하는 시기라는 감각이 분명해졌다. 모든 경험을 다 안고 갈 수는 없고, 모든 선택을 끝까지 유지할 필요도 없다. 버텨온 시간 속에는 여전히 유효한 기준과 태도도 있지만, 동시에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관성처럼 붙들고 있던 습관과 판단 역시 섞여 있다. 정리는 과거를 부정하거나 지워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통과한 사람이 비로소 할 수 있는 선택에 가깝다. 나는 무엇을 더 쌓을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내려놓지 않으면 다음으로 갈 수 없는지를 먼저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은 분명 불편했고, 스스로를 다시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이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만들었다. 버텨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머무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이제는 정리된 상태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버팀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면, 정리는 나를 다음 단계로 보내기 위한 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더 쌓기 위한 삶이 아니라 선택하며 가볍게 나아가기 위한 삶을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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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orm은 남았고, Ground는 비어 있었다


그동안의 시간은 분명히 형태를 남겼다. 프로젝트와 결과물, 이력과 관계, 경험과 성과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온 사람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멈추지 않고 형태(Form)를 만들어왔다. 생존을 위해, 방향을 찾기 위해, 그리고 다음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늘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태들은 어느새 나를 설명해 주는 외피가 되었고, 일정 부분은 나를 보호해 주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형태들이 나를 대신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이 형태들을 무엇이 지탱하고 있는가.

결과는 있었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낸 판단의 기준과 선택의 축은 충분히 정리되어 있었을까. 나는 종종 다음 형태를 만드는 일에만 집중한 채, 그 아래에서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어야 할 지반(Ground)을 점검하는 일을 미뤄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체계가 아직 없어서, 지금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서, 나중에 정리해도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넘어갔던 순간들이 쌓여 있었고, 그 공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Form은 분명 남아 있었지만, 그 Form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Ground는 생각보다 허술한 상태였다.


형태를 만드는 일은 비교적 즉각적인 성취감을 준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 다음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외부의 반응까지. 하지만 지반을 다지는 일은 그와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고, 속도는 느리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형태를 만드는 쪽에 더 익숙해져 있었고, 지반을 점검하는 일은 뒤로 미뤄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해졌다. 아무리 많은 형태를 만들어도, 그것을 지탱할 기준과 구조가 없다면 언젠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결과를 늘리는 것보다, 그 결과들이 어떤 기준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Form을 계속 만들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 Ground 없이 만들어진 Form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이미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형태는 이미 충분히 남아 있다. 이제는 그 형태들이 오래 서 있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다시 설계해야 할 시기다. Form을 만들던 시기에서, Ground를 점검해야 하는 시기로 넘어왔다는 감각은 분명했고, 나는 그 전환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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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확장은 성장이었을까, 유예였을까


나는 오랫동안 확장을 성장이라고 믿어왔다. 더 많은 일을 경험하고, 더 다양한 역할을 맡고, 더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앞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선택들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고,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관계, 새로운 역할들은 늘 나를 바쁘게 만들었고, 바쁘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작동했다. 그래서 확장을 멈추는 일은 곧 뒤처지는 일처럼 느껴졌고, 멈춤보다는 다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확장은 정말 성장이었을까, 아니면 정리해야 할 시기를 미루기 위한 유예였을까.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더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중요한 질문들을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확장은 가능했고, 기준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도 성과는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성과들이 쌓일수록, 정리되지 않은 판단과 선택들 역시 함께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확장은 때로 불안을 가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된다. 다음 일을 붙잡고 있으면 지금의 질문을 잠시 잊을 수 있고, 새로운 역할에 몰입하면 기존의 불편함을 뒤로 미룰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방식으로 시간을 통과해 온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장이 더 이상 나를 앞으로 보내주지 않는다는 감각이 분명해졌다. 방향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확장은 속도를 높일 뿐이고, 속도가 높아질수록 기준 없는 선택의 결과는 더 크게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확장을 멈추고, 정리를 선택했다. 줄이는 선택이 물러남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정직한 판단처럼 느껴졌다.


성장은 늘 바깥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멈추고,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더 깊어지기도 한다. 확장을 통해 얻은 경험들은 이미 충분히 내 안에 쌓여 있었고, 이제는 그 경험들을 어떤 기준으로 엮어낼 것인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왜 그 일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확장을 성장으로 착각하던 시기를 지나, 정리를 통해 다음 성장을 준비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 선택이 당장의 성과를 줄일지는 몰라도, 더 오래가기 위한 조건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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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형태를 만드는 사람에서, 지반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디자이너로 일한 지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났다. 그동안의 나는 늘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결과를 만들고, 형태를 만들고, 눈에 보이는 성취를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빠른 방법은 또 하나의 결과를 내놓는 것이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들은 나를 설명해 주는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방식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에서, 디자인을 다루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플레이는 계속되지만, 그 플레이가 어떤 태도와 책임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감각이다. 결과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결과만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대신 어떤 판단을 반복해 왔는지, 어떤 선택을 쉽게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을 끝까지 지켜왔는지가 더 또렷하게 드러나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지반을 설계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일을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

당장의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고민을 감내해야 하고, 속도를 늦추는 선택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이 전환은 화려하지 않고, 때로는 외부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구조 위에서 다시 쌓아 올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미 충분히 겪어본 지금의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지반의 중요성을 더 이상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나는 더 많은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보다,

그 형태들이 오래 서 있을 수 있도록 받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커리어를 늘리는 것보다 태도를 정리하고, 역할을 확장하는 것보다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이 선택이 단기간에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앞으로의 선택들이 덜 흔들리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형태를 만들던 시기에서, 지반을 설계하는 시기로 넘어왔다는 감각은 선언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변화에 가깝다.



5. 방향을 증명해야 하는 시기


생존을 위해, 그리고 방향성을 잡기 위해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그 시기에는 실수가 있어도,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도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다. 아직 체계가 없어서, 아직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거라고, 지금은 과정 중이니까 조금 느슨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런 말들은 그때의 나에게는 분명 유효했고, 실제로 나를 버티게 해주는 언어이기도 했다.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는 완성보다 시도가 중요했고, 완벽보다 지속이 더 가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방향을 잡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해졌고,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실수와 부족함을 체계의 부재로 덮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의 나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의 이유와 판단의 근거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더 꼼꼼해져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빠진 부분을 메워 나가야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지금 이 정도면 괜찮다는 판단으로 넘어가던 선택들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이 시기의 성장은 속도가 아니라 정밀함에 가깝다.

조금 느려지더라도 구조를 점검하고, 불편하더라도 기준을 세우는 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완성도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설명 가능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 방향은 이미 충분히 잡혀 있다. 이제는 그 방향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체계와 기록, 그리고 판단의 일관성을 쌓아가야 한다. 핑계로 보호받던 시기는 끝났고, 이제는 기준과 구조로 나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단계에 서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더 잘해 보이기보다 더 정확해지려 한다.

더 많이 만들기보다, 만든 것들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점검하려 한다. 이 선택은 이전보다 훨씬 어렵고, 때로는 나 자신을 더 엄격하게 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느껴진다. 생존을 위한 시간이 끝났다면, 이제는 방향을 증명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증명은 말이 아니라, 쌓여가는 체계와 반복되는 선택들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글은 잘해왔다는 말을 남기기 위해 쓰인 회고가 아니다. 오히려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하고, 이제부터 무엇을 더는 미루지 않겠다는 태도를 정리하기 위해 적어 내려간 기록에 가깝다. 버텨온 시간, 만들어온 형태, 반복해 온 확장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질문들을 다시 꺼내어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지금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잘하고 있지 않다는 감각 때문에 스스로를 과하게 몰아붙이고 있다면, 이 회고가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버텨온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지금 느끼는 불편함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형태를 충분히 만들어왔다면, 이제 지반을 고민해도 되는 시기라는 것을. 내년의 나는 더 많은 것을 이루겠다고 다짐하기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정확하게 판단하며, 더 오래갈 수 있는 구조를 갈구하고 싶다. 속도보다는 정밀함을, 확장보다는 일관성을, 결과보다는 기준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잘 보이기 위한 선택보다, 스스로에게 설명 가능한 선택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한 해는 나에게 분명한 질문을 남겼다. 그리고 그 질문 덕분에,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조금은 더 차분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형태는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그 위에 어떤 지반을 설계할 것인지가 남아 있다. 이 글을 마치며, 나는 그 질문을 품은 채 또 한 해를 향해 노를 저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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