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이 수도권에 아파트를 사려면 총 얼마가 들까?

30살 빚쟁이 지방청년의 수도권 자가마련 이야기, 그 마지막 에피소드

by 재영

이 글은 집을 사고 나서야 비로소 정리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는 일도 쉽지 않지만, 막상 계약을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래서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실제로 얼마가 들었을까.


앞선 두 편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들에선 집을 사기 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했는지, 그리고 계약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지나왔는지를 기록했다. 이번 글은 그 흐름의 마지막이다. 계약이 끝나고, 대출이 실행되고, 잔금이 오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숫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말하는 ‘집값’이 아니라, 통장에서 실제로 빠져나간 돈들, 그리고 그 돈을 준비하기까지의 계산을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사회초년생이 수도권에서 집을 산다는 건 결코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집값만 맞추면 될 것 같았던 계산은, 세금과 수수료, 이사와 인테리어 비용을 거치며 전혀 다른 그림으로 바뀐다. 이 글에서는 내가 직접 겪은 사례를 기준으로, 집값 외에 어떤 돈들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의 현금을 준비해야 했는지를 차분히 정리해본다.


이 글은 집을 잘 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성공담도 아니다. 다만 집을 사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나가게 되는 현실적인 비용들을 한 번쯤 정리해두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쓰는 기록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회초년생의 시선에서 수도권 자가 마련에 들어간 진짜 숫자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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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자가 마련에 대하여


수도권에서 집을 산다는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울을 떠올린다. 하지만 막상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서울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현실의 문제’에 가깝다. 예를 들어 6억 원짜리 신축 아파트를 대출로 산다고 가정해보자. 규제를 감안하면 최소 2억 원 안팎의 현금이 필요하고, 나머지 4억 원에 대해 바로 이자와 원금 상환이 시작된다. 이자만 해도 상당한데, 원금 상환까지 포함하면 매달 감당해야 할 금액은 2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이 숫자는 생활비와는 별개다. 사회초년생에게는 선택이라기보다 리스크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서울은 제외했다. 대신 시선을 수도권으로 옮겼다. 신축 아파트도 욕심내지 않았다. 신축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가격은 한 단계 더 뛰고, 그 차이는 고스란히 대출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대신 20년 안팎의 구축 아파트, 생활 인프라가 이미 자리 잡은 동네를 기준으로 찾았다. 역세권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고, 대신 역까지 버스나 도보로 접근 가능한 거리, 서울까지 30분에서 길어도 1시간 안에 닿을 수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적당한 조건에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를 먼저 정한 셈이다.


그렇게 찾은 집이 3억 초반대, 흔히 말하는 국민평수의 아파트였다. 이 가격대는 수도권 안에서도 선택지가 분명히 갈린다. 새 아파트는 어렵지만, 오래된 대신 관리가 잘 된 단지, 이미 학교와 상권이 형성된 동네는 충분히 가능했다. 이 금액을 기준으로 이후의 모든 계산이 시작됐다. 대출은 얼마나 가능한지, 현금은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선택이 내 생활을 얼마나 압박할지까지 하나씩 따져볼 수 있었다.


다만 이 지점에서 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 금액이면 고향인 충청권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지가 열린다는 사실이다. 준신축 아파트는 물론이고, 조건에 따라서는 새 집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고향의 새 아파트는 당시 1억 8천만 원 정도였다. 지금 수도권에서는 저렴한 원룸 하나 매매가가 그 가격대에 형성돼 있다. 같은 돈이지만, 공간과 삶의 밀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간극이 숫자로 실감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서울과의 거리, 이미 갖춰진 인프라, 일과 연결된 기회들. 2030한테 이 선택은 생존을 위한 필수선택일 수 밖에 없다. 이 장점들은 가격 상승이라는 단점과 항상 함께 움직인다. 수도권의 집값은 단순히 집이라는 공간의 가격이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접근성과 기회의 가격에 가깝다. 그래서 이 선택은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집을 사는 것보다, 오래 감당할 수 있는 집을 고르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기준, 3억 초반의 수도권 아파트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이 숫자가 왜 현실적인 기준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 선택 뒤에 어떤 비용들이 따라왔는지를 하나씩 정리해보려 한다. 집을 산다는 건 단순히 가격표를 보는 일이 아니라, 살아갈 구조를 선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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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Photo_2026-01-26-23-03-00 009.jpeg 인테리어를 하면 조금 새집 느낌이난다.

집값 말고도 빠져나간 실제 비용들


집을 사기로 결정하고 나면, 계산은 더 이상 집값에서 끝나지 않는다. 계약서에 적힌 매매가만 보면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잔금일을 전후로 통장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빠져나간다. 나 역시 집값만 기준으로 자금을 맞춰두었다면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집값 외에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비용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취득세였다. 집을 취득하는 순간 한 번 내는 세금으로, 매매가와 주택 수, 생애최초 여부에 따라 세율이 달라진다. 내 경우에는 생애최초 조건에 해당돼 일정 부분 감면을 받을 수 있었고, 취득세와 교육세, 기타 부대세를 모두 합쳐 대략 3백만 원 정도가 들었다. 감면이 없었다면 4~5백만 원 선까지 올라갔을 금액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비용이기 때문에, 이 돈은 미리 현금으로 준비돼 있어야 했다.


여기에 수입인지와 채권 비용이 더해진다. 금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대출 약정과 등기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해주는 역할을 법무사가 맡는다. 등기 이전, 근저당 설정, 서류 처리까지 한 번에 진행해주기 때문에, 직접 하기보다는 법무사를 끼는 게 훨씬 수월했다. 비용은 매매가 3억 초반 기준으로 약 40만 원 전후였고, 복잡한 절차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비용이었다.


거래가 성사되면 공인중개사 수수료도 빠진다. 3억 1천만 원 기준으로 약 14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여기에 이사 비용까지 더해진다. 나는 이사를 최소 한 달 전부터 준비했고, 실제 비용은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였다. 이사비는 시기와 조건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이 정도 선은 미리 잡아두는 게 현실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을 ‘소유’하는 것과 ‘살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인테리어는 정말 최소한으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한다는 건, 이전 사람이 쓰던 컨디션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바닥 줄눈, 벽지 교체, 생활감이 많이 남은 부분들만 정리해도 집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이사 전에 인테리어를 하는 게 중요하다. 짐을 다 들인 뒤에 다시 손을 보려면, 가구를 전부 빼야 하고 공사 범위도 자연스럽게 제한된다. 결국 나중에 더 큰 비용과 번거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이사 전에 최소한의 보수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큰 구조 변경 없이도, 집 컨디션을 살리는 데 들어간 비용은 약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사이였다. 여기에 입주 청소 비용 약 50만 원 정도가 추가됐다. 이 비용은 집을 깨끗하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 앞으로 몇 년을 편하게 살기 위한 초기 투자에 가깝다고 느꼈다.


이렇게 정리해보면 분명해진다. 집을 사는 데 드는 돈은 집값 하나가 아니다. 세금, 수수료, 이사비, 그리고 집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비용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집을 얼마에 샀는지’보다, ‘집을 사기 위해 실제로 얼마가 나갔는지’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집값은 시작일 뿐이고, 그 뒤에 따라오는 비용들이 진짜 현실이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얼마가 들었는지를 정리해보면 계산은 훨씬 명확해진다.

나는 3억 초반대 아파트를 매입했고, 대출이 실행되면서 잔금으로 실제 준비해야 했던 현금은 약 9천만 원 정도였다. 여기까지가 흔히 말하는 “집값에서 대출 빼고 남은 돈”이다. 하지만 이 금액만 준비해서는 절대 거래를 마칠 수 없다.


여기에 바로 붙는 비용들이 있다. 생애최초 감면을 적용받은 취득세와 교육세가 약 3백만 원, 수입인지와 채권 비용, 법무사 비용까지 합쳐 약 4백만 원 수준이 추가로 들었다. 공인중개사 수수료는 약 140만 원, 이사 비용은 평균적으로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였다. 집을 바로 살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 진행한 최소한의 보수 인테리어 비용은 약 1,200만 원, 입주 청소 비용은 약 50만 원 정도였다.


이렇게 하나씩 더해보면, 집값 외로 실제 통장에서 빠져나간 부대비용만 해도 2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결국 잔금 9천만 원 + 부대비용 + 최소 인테리어 비용을 모두 합치면, 집을 사기 위해 현실적으로 준비돼 있어야 했던 현금은 대략 1억 2천만 원 전후였다. 흔히 말하는 “3억짜리 집은 1억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왜 위험한지, 이 숫자만 봐도 바로 체감된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요즘 주택담보대출은 거치 기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출이 실행되는 순간부터 바로 원금 상환이 시작된다. 나 역시 대출 실행과 동시에 매달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는 구조로 들어갔다. 즉, 집을 사고 나서도 몇 달간은 월 고정 지출이 늘어난 상태를 버틸 수 있는 여유 자금이 필요하다. 잔금과 부대비용으로 통장을 거의 비워버리면, 그 다음 달부터 바로 생활이 빠듯해질 수 있다.


그래서 집을 준비할 때는 “살 수 있는 돈”만 계산해서는 부족하다. 사고 난 뒤에도 버틸 수 있는 돈, 다시 말해 몇 달간의 대출 상환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씨드까지 포함해서 계산해야 한다. 집을 사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그날부터 새로운 고정비 구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걸 감안하지 않으면, 자가 마련은 성취가 아니라 부담으로 바뀌게 된다.


이 정도가, 내가 실제로 집을 사면서 체감한 ‘현실적인 숫자’였다.

이 숫자를 알고 나서야, 집을 샀다는 말이 조금 덜 가볍게 느껴졌다.


KakaoTalk_Photo_2026-01-26-23-02-40.jpeg 이사를 마친 필자의 첫 집


사회 초년생에게는 너무 어려운 수도권 자가마련


집을 마련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절차가 복잡해서가 아니다. 계산이 안 돼서도 아니다. 결국 가장 큰 이유는, 이 금액을 사회초년생 급여로 저축해 모으는 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3억 초반 아파트를 기준으로 잡아도, 실제로 필요한 현금은 1억이 훌쩍 넘는다. 이 돈을 월급만으로 모으려면, 몇 년이라는 시간이 아니라 한 사이클의 커리어가 필요하다.


특히 요즘 기준으로 보면 사회생활 시작 시점 자체가 늦다. 여자든 남자든, 커리어를 제대로 준비한다면 본격적인 소득이 생기는 시점은 보통 20대 중후반 이후다. 그때부터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면서 저축을 시작하면, 통장에 의미 있는 금액이 쌓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이라면 상황은 더 빠듯하다. 월세와 이동 비용이 기본으로 빠져나가고, 저축 속도는 자연스럽게 늦어진다. 그 상태에서 집을 사기 위한 자금을 마련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벽이다.


집을 준비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아주 단순했다. 큰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이미 어느 정도의 기반을 가지고 출발하고, 누군가는 그 기반을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 그 차이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선의 문제에 가깝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사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는 쪽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이 숫자들은 누군가를 자극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현실을 가늠하기 위한 참고점에 가깝다. 집은 목표로 세우고 달려가면 금방 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쌓이고, 생활이 안정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선택지로 올라온다. 이 글이 남기는 건 ‘지금 당장 사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이 정도가 현실적인 기준일 수 있다’는 기록이다.


KakaoTalk_Photo_2026-01-26-23-03-00 008.jpeg 미드센추리한 느낌을 좋아한다.


집을 사려면.


글의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조금만 덧붙이고 싶다. 나는 30살에 자가 마련을 했다. 그 이전에 대출을 끼고 마련한 작은 상가 두 개도 있고, 자차도 한 대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출발선에 서 있었던 건 아니다. 20살에 독립했고, 남들처럼 똑같이 대학을 다녔고, 알바를 매일같이 달고 살듯이 했으며, 집이나 자금에 있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시작한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나와 비슷한 조건에서 사회를 시작한 20대들이 꽤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돌이켜보면 20대에 돈을 모으기 위해 극단적으로 아끼며 살지는 않았다. 사고 싶은 건 어느 정도 다 사면서 지냈고,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크게 욕심나는 소비도 많지 않다. 대신 그 시간 동안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돈을 잘 버는 대표적 예시처럼 고연봉을 받는 대기업 직장인도 아니다. 오히려 안정적인 루트와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일을 이어왔다. 좋아하는 일을 중심에 두고 사업을 해왔고, 동시에 31살 나이에 박사과정 진학에 성공하여 학업도 병행하고 있다. 학사 졸업 역시 늦은 편이어서 27살에 마쳤다.


이 과정은 어느 하나를 과감히 선택했다기보다는, 커리어와 공부, 자산 중 무엇 하나도 쉽게 내려놓지 않으려 애써온 시간에 가까웠다. 늘 완벽하게 균형을 맞춘 건 아니었고, 때로는 한쪽이 다른 쪽을 밀어내기도 했다. 그래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계속 이어가 보자는 쪽을 택해왔다. 지금의 결과는 그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지점일 뿐이다. 이 이야기가 선례로 읽히기보다는,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누군가에게 “이런 경로도 가능하긴 하다” 정도로 닿았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대출은 많이 끼게 됐다. 아마 30살 기준으로 보면, 대출 규모는 적은 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대출을 무조건 두려워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물론 관리되지 않은 빚은 위험하지만,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구조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대출은 도약의 속도를 바꿔주기도 한다. 특히 자산을 만들어가는 초기 구간에서는, 시간과 자본을 맞바꾸는 선택이 불가피한 순간들이 있다. 나는 그 선택을 피하기보다는,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그 태도가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한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했던 건 ‘얼마를 벌었는가’보다 ‘무엇을 오래 붙잡을 수 있었는가’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장점이다. 억지로 버티는 구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 몰입은 시간의 총량을 바꾸고, 결국 결과의 밀도를 바꾼다. 밤낮없이 일한다는 말을 들으면 다들 고개를 젓지만, 일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그 상태는 고통보다는 안정에 가깝다. 게임보다 일이 더 재미있고, 일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을 많이 한다’는 건 악재라기보다 축복에 가까운 조건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초년생들이 ‘경험’을 이야기한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인턴십과 공모전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려 한다. 나 역시 경험에 대한 갈증이 컸다. 공모전 수상 경력만 따지면 50회를 훌쩍 넘길 정도로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다만 여행을 갈 만큼의 시간적 여유는 없었고, 대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는 쪽을 택했다. 돌아보면 그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고 느낀다.


직업 특성상 거래처 공장이나 생산 라인을 방문할 일이 잦았고, 단순히 결과물만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려 했다. 공정 과정을 이해해야 하는 디자인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현장을 보게 됐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친해졌다. 20대 중반에는 거래처 담당자들과 함께 공장을 둘러보고, 그 회사의 규율과 루틴을 곁에서 지켜보며 배우려 애썼다. 굳이 그 회사에 소속되지 않아도,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몸으로 익히는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이후 다른 거래처를 만날 때도 이해 속도가 빨랐고, 설명해야 할 언어 역시 훨씬 명확해졌다.


결국 경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경험은 막연히 많이 쌓는다고 해서 의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가려는 방향에 정말 필요한 경험을, 최대한 밀도 있게 가져가는 일이다. 애매하게 넓히는 경험보다, 목적이 분명한 경험이 훨씬 빠르게 다음 기회를 만든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은 커리어를 단단하게 만들고, 그 커리어는 다시 자산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사회초년생 시기에 집을 사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목표를 지탱하는 방식은 조금 달라야 한다. 무조건 1억을 모으겠다는 숫자 하나보다, 그 숫자를 가능하게 만드는 생활과 일이 먼저다. 쉽게 지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 단단해지는 일, 그리고 스스로를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 그런 일을 빠르게 찾고 선점하는 것이 결국 커리어와 자산을 함께 끌고 간다.


이번 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구분도 크게 의미가 없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결과가 갈리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판단했는지, 단기 목표보다 지속 가능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스스로를 오래 버틸 수 있는 방향으로 준비했는지의 차이다. 집을 샀다는 사실보다,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 글을 이렇게 길게 정리한 이유도 사실은 여기에 있다. 집을 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이제부터 감당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출 상환은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의 몇 년은 숫자와 책임이 동시에 따라다닌다. 그 무게를 막연히 느끼는 것과, 이렇게 글로 꺼내어 구조로 정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집을 마련했다는 건 끝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점에 가깝다. 이 선택 이후로 내 삶의 속도와 방향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고, 이전처럼 무작정 달릴 수는 없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의 선택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내가 무엇을 감당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납득할 필요가 있었다. 이 글은 그 납득의 과정이기도 했다.


동시에 이 기록은,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다짐에 가깝다. 대출이라는 현실을 안고 있다는 건 부담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책임 있는 선택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당해야 할 숫자들이 분명해졌다는 건, 그만큼 삶을 더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왔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불안보다는 자신감을, 막연함보다는 계획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에게 정답을 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지금의 선택을 이해하고 있다”는 확인에 가깝다. 그리고 혹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기록이 조급함을 부추기기보다 스스로의 상황을 차분히 정리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집을 산다는 건 결국 삶을 한 단계 더 책임지겠다는 선택이다. 그 선택을 감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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